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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화초등학교로 들어가는 선생님들. 사전 답사한 날 찍은 사진이다.
 충화초등학교로 들어가는 선생님들. 사전 답사한 날 찍은 사진이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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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충남 부여의 하늘은 참 맑았다. 방금 막 충화초등학교 앞에 도착한 차창 밖으로는 무리지어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3박4일간 함께 과학 체험을 하게 될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마음도 하늘처럼 맑고 순수할까? 내 옆에 앉아있던 한나희(24)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애들아, 안녕!"

하지만 목소리가 충분히 컸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생각만큼 아이들은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들과 만나기 위해 2주 동안 열심히 준비했건만, 아이들을 보는 순간 내 심장은 돌발 상황에 맞닥뜨린 것처럼 긴장으로 요동쳤다. 그리고 그것은 어색했던 첫 만남을 뒤로 하고 학교 관사에 짐을 풀 때까지 계속됐다.

전교생 32명, 충화초등학교 아이들과의 만남

교육과학기술부 주최,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과학공감활동 '과활마당'
 교육과학기술부 주최,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과학공감활동 '과활마당'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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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화초등학교는 전교생이 32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다. 시끌벅적한 다목적실로 들어서자, 그 중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한 24명의 시선이 일제히 선생님들을 향했다. 호기심 어린 눈빛에는 초등학생 특유의 순수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선생님 소개는 안병식(25) 선생님이 맡았다.

"저희가 충화초등학교 여러분들과 과학 수업을 하려고 내려왔어요. 앞으로 3박4일 동안 과학 실험과 과학 마술, 영화 감상 등 재미있는 활동 많이 기대해주세요."

다목적실 위에 걸린 현수막에는 '과활마당'이라는 커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과활은 '과학 공감 활동'의 줄임말로, 교육과학기술부 주최, 한국과학창의재단 주관으로 진행되는 과학 봉사활동이다. 올해 처음으로 시행되는 프로그램인데, 선발된 대학생들이 안동, 울산 등 전국 각 지역으로 흩어져 아이들과 다양한 과학 체험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애정을 심어주는 것이다.

비밀 편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이민준(9) 어린이.
 비밀 편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이민준(9) 어린이.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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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대학생 6명으로 구성된 부여 팀은 충화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과활마당을 하게 됐다. 과활마당 프로그램의 첫 시작은 어색한 분위기를 깰 수 있는 과학 놀이로, 놀이 진행은 대학생 중 유일한 인문계 학생이었던 내가 맡았다.

놀이 중에서도 아이들의 호응이 가장 좋았던 것은 OX 퀴즈였다. 과학과 관련된 여러 가지 상식으로 1등을 가리는 것이었다.

"곤충은 머리, 가슴, 엉덩이로 나뉜다?"
"소리 나지 않는 방귀가 소리 나는 방귀보다 독하다?"

문제가 주어지면 아이들은 곧 O와 X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지만 두 갈래로 나뉘게 된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성향에 따라 무작정 찍기론, 교과서론, 눈치론 등을 내세웠는데 대세는 '눈치론'이었다. 마지막 5초를 셀 때쯤이면 전 참가자가 반대편으로 대(大)이동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퀴즈는 '지구는 태양을 정확히 365일 돈다'는 문제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미처 O로 가지 못한 학생의 단독 우승으로 끝나고 말았다.

'솔직담백' 비밀 편지와 '위험천만' 과학 마술

두 번째 과학 실험은 비밀 편지였다. 페놀프탈레인 용액이 염기성을 만나면 붉게 변한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만든 실험이었다. 아이들은 각자 붓을 들고 흰 종이에 페놀프탈레인 용액으로 투명한 글씨를 써나갔다. 무엇을 쓰는지 물어보면 아이들은 그저 '비밀'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수산화나트륨을 뿌리자, 글씨는 순식간에 붉은 색으로 바뀌어 비밀스러웠던 내용이 모두 공개됐다. 주제가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여서, 내용은 옆 사람을 칭찬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는 등 다양하고 솔직했다.

"안녕? 나 OOO언니... 넌! 공부를 너무 잘해!"
"OOO 진짜 치사다. 우리한테 과자도 안 주고."

아이들이 만든 비밀 편지.
 아이들이 만든 비밀 편지.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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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 든 안병식(25) 선생님.
 아이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 든 안병식(25)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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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비밀 편지를 읽느라 선생님과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비밀 편지가 끝났을 즈음에는 벌써 해가 지고 창밖은 어두컴컴하게 변해있었다. 선생님들은 곧바로 다음 프로그램인 과학 마술을 진행했다. 진행은 양혜정(22) 선생님과 신동호(21) 선생님이 맡았다.

그런데 문득 보니 신동호 선생님의 머리 스타일이 '2대 8' 가르마로 바뀌어 있었다. 이유인 즉, 마술 시간 직전 불을 이용한 마술 연습을 하다가 실수로 앞머리를 태워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몇 가지 마술은 위험했지만,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마술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의심의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선생님들은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마술 쇼를 선보였다. 반지는 고무줄 사이에서 저절로 올라가고, 까만색 액체가 담겨있던 컵은 순식간에 초록색, 초록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수조에 든 물에 불이 붙기도 했다.

마술이 펼쳐질 때마다 아이들은 커다랗게 탄성을 질렀다. 원리를 알고 보는 선생님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어떻게 했는지 가르쳐 달라고 말했고, 일부 짓궂은 아이들은 '순 사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앞머리를 태워버린 선생님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과학 마술은 아이들에게 이날의 하이라이트로 꼽혔다.

과학 마술이 끝나고 나니, 얄미운 시계는 어느새 7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들의 통학거리가 꽤 긴 편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늦게까지 실험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내일을 약속하며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남은 3일, 앞으로 더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줘!

실험보고서 작성 시간에 아이들을 도와주는 한나희(24) 선생님.
 실험보고서 작성 시간에 아이들을 도와주는 한나희(24) 선생님.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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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은 곧바로 관사로 들어가 다음 날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떠드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큰 소리를 냈더니 목도 아팠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밤 아이들에게 보여줄 동영상을 편집하느라 일찍 잠들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동영상에서 아이들의 익살스런 표정을 보다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오고 피로도 말끔히 가시는 것 같았다.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아이들은 정이 많고 따뜻했다. 내일은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영상 제작을 마치고 시계를 봤을 때는 새벽 3시가 지나있었다. 나는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몇 시간 뒤 다시 만날 아이들을 생각하며.

"얘들아, 안녕? 지금은 다 자고 있겠지? 선생님은 너희들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깨어있는데,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실험이 좀 지루하고 재미가 없더라도 앞으로 남은 3일 동안 잘 따라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너네 재밌는 실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화이팅!"


태그:#과활마당, #과활, #부여, #충화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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