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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xx 이게 뭐야!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뒷골목으로 들어서자 누군가 큰 소리로 떠드는 소리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허름한 옷차림의 50세 전후로 보이는 남자다. 그는 술에 취한 듯했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누구긴 누구겠어요? 죽은 사람들이랑 같은 사람이지...”

 

누구시냐고 물으니 남자는 화를 벌컥 내며 돌아서 휘적휘적 걸어간다. 대상도 분명치 않은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다가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중년남자의 모습에서 찬 겨울의 한기가 시리게 퍼져나간다. 주변은 온통 철거중인 건물들과 이미 철거되어 쓰레기더미만 쌓여 있는 풍경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1월 22일 오후 4시경  여섯 사람이 생명을 잃은 용산 철거민참사 현장을 찾았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니 도로변이 온통 경찰버스로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다. 경찰차량 앞에 서있는 전경에게 현장을 물으니 길을 따라 쭈욱 가라며 심드렁한 표정이다.

 

참사현장은 어수선한 풍경이었다. 골목길로 들어가는 입구를 경찰버스가 가로막고 있었고, 참사가 빚어진 건물 옆에는 “진압이 아닌 구조였다면 살릴 수도 있었다”는 리본이 달린 대형 조화가 세워져 있었다. 그 조화 옆에서 철거민으로 보이는 노인이 주변을 싸리비로 쓸고 있는 모습이 허탈해 보인다.

 

도로 쪽은 경찰버스가 늘어서 산성을 이루고 있었고, 그 안쪽에 허술한 승용차들과 방송국 보도차량 몇 대가 세워져 있는 모습이었다. 건물 앞에는 이번 참사로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는 초라한 빈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전철연’이라고 쓰인 윗옷을 입은 여인들 세 사람이 그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처연하다.

 

 

건물 앞에는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회)에서 세운 역시 초라한 천막 안에 몇 사람의 회원들이 앉아 있었다. 시민들은 참혹한 주변 풍경에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간다.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철거민들과 전철연 회원들, 그리고 경찰들이어서 물에 기름이 돌듯 서로 서먹한 표정들이다.

 

문제의 건물과 바로 옆 건물이 철거된 듯한 공터 가림막에는 진압책임자와 대통령, 당국을 비난하는 펼침막과 대자보들이 즐비하게 붙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자들이었지만 일반 시민들도 몇 사람 보였다.

 

뒷골목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골목입구가 모두 막혀 있어서 한강 쪽으로 큰길을 따라 걸었다. 길가에는 여전히 경찰버스가 연이어 진을 치고 있었다.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입구 4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이촌동으로 가는 길가에까지 경찰버스들은 이어지고 있었다.

 

건너편 중대부속병원을 바라보는 곳에서 왼쪽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참사 현장 건물의 옆모습이 나타났다. 그 골목에도 경찰버스 몇 대가 세워져 있고 경찰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철거되었거나 철거중인 건물잔해로 어수선한 풍경이다.

 

처참하게 부셔지고 쓰레기더미가 수북한 폐허 너머로 높다랗게 우뚝 솟은 건물 몇 개가 신기루처럼 다가온다. 이 지역의 재개발로 근래에 세워진 빌딩들이었다. 일대가 모두 폐허가 되어서인지 지나는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조금 앞으로 나아가 옛 국제빌딩이 저만큼 보이는 곳으로 다가갔다. 이 지역은 전에 지붕과 벽을 천으로 엉성하게 덮은 30여개의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 많던 노점상들이 거의 다 철거당하고 몇 개가 남아 있었지만 파는 물건들이 모두 천막 천으로 덮여 있는 모습이었다.

 

노점상 양쪽 옆은 2~3층짜리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1층은 노점상들과 마주보고 있던 점포들이었지만, 역시 모두 철거당하고 휑뎅그렁하게 쓰레기만 쌓여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을씨년스런 풍경 속에서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철가당하고 몇 개 안 남은 노점상 가게들 속에 앉아 있는 할머니였다. 주변이 온통 철거당한 쓰레기더미로 뒤덮여 있는 황량한 곳에 1평 남짓한 작은 노점상 가게를 지키는 할머니라니. 깜짝 놀랐다.

 

“아니, 할머니 이런 곳에 혼자 나와 계십니까? 장사 하시려고요?”

 

놀라운 마음에 툭 던진 질문이었다.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도 살아야지요.”

 

막연한 질문에 막연한 대답이었다. 올해 71세인 할머니는 이곳에서 41년째 장사를 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역이 재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암담한 지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었다.

 

 

“엊그제 참사로 죽은 사람들은 세입자들이에요. 그 사람들은 그래도 싸울 힘이라도 있지만 우리 같은 노점상들은 그럴 힘이나 있나요? 그냥 당하는 거지요.”

 

함께 장사하던 노점상들은 몇 백만 원씩의 보상금을 받고 물러났지만 할머니는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당장 무언가 장사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는데 몇 백만으로야 어디 가서 무얼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가끔 개발회사 용역이라는 건장한 사람들이 나타나 협박을 해요. 더 눈물 짜기 전에 나가라느니. 그냥 밀어버리겠다느니, 그래서 늙은이 죽일 테면 죽여보라고 버티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요.”

 

할머니는 말을 하면서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처연한 표정이다. 주변이 모두 폐허로 변해버린 처참한 풍경인데 그 황량한 곳에 계란 몇 판과 건어물 몇 봉지, 채소 몇 개를 펼쳐놓고 파는 할머니의 노점 가게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글픈 표정의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서 나오며 바라본 폐허 뒤쪽으로 바라보이는 고층 빌딩이 정말 신기루처럼 다가온다. 거대한 도시는 그렇게 개발이라는 이름과 명분으로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과 눈물을 먹으며 괴물처럼 진화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용산참사현장, #전철연, #경찰버스, #이승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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