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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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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 부상 vs. 6명 사망과 23명 부상

2005년 6월 경기 오산시 세교지구와 2009년 1월 서울 용산 재개발구역의 철거민 농성 진압의 결과다. 농성 방법과 진압 과정은 닮았지만, 결과는 극명하게 갈린다.

두 곳 모두 철거민들이 적절한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건물에 망루를 짓고 농성했다. 또한, 이들이 밀어붙이기식 철거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고, 결국 대형 크레인을 통해 투입된 경찰특공대에게 진압된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2005년 오산에서는 1명의 부상자가 나오는 데 그친 것에 반해, 2009년 용산에서는 6명이 죽고 23명이 다쳤다. 이 결과를 가른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오산 세교지구] 계속된 설득과 협상... 54일만의 진압

2005년 6월 8일 오산 세교택지 개발지구의 한 빌라에서 54일째 농성을 벌여온 철거민과 관계자 29명이 8일 오전부터 경찰에 맞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저항했으나, 오후 1시경 대형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에 실려 진입한 경찰특공대에 의해 진압됐다.
 2005년 6월 8일 오산 세교택지 개발지구의 한 빌라에서 54일째 농성을 벌여온 철거민과 관계자 29명이 8일 오전부터 경찰에 맞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저항했으나, 오후 1시경 대형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에 실려 진입한 경찰특공대에 의해 진압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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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8일 오산 세교택지 개발지구의 한 빌라에서 54일째 농성을 벌여온 철거민들이 화염병으로 불을 붙인 건물 아래쪽으로 인화물질을 붇자 불길이 거세게 치솟고 있다.
 2005년 6월 8일 오산 세교택지 개발지구의 한 빌라에서 54일째 농성을 벌여온 철거민들이 화염병으로 불을 붙인 건물 아래쪽으로 인화물질을 붇자 불길이 거세게 치솟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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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세교 철거민들의 농성은 2005년 4월 시작됐다. 4월 16일 철거용역업체 직원 45명이 W빌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들의 망루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철거용역직원 이모(25)씨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져, 대한주택공사의 무리한 철거강행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다.

이를 의식한 경찰은 쉽게 진압에 나서지 못했다. 경찰이 철거민들에 대한 진압 작전에 나선 것은 철거민들이 농성에 나선 지 54일째 되던 6월 8일이었다. 이날 경찰은 오전 8시 45분께부터 철거민들이 농성 중인 W빌라 앞에서 "내려와서 얘기하자"며 설득을 시도했다. 또한, 경찰은 현장의 철거민 관계자들과 자수 설득을 위한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다.

경찰은 설득에 실패하자, 만약에 대비해 소방차 13대, 구급차량 9대를 배치시켜 놓은 상태에서 오전 10시 진압을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경찰은 "자수하면 관대하게 처리하겠다"는 방송을 계속 내보냈다.

경찰의 진압은 철거민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쉽게 이뤄지지 못했다. 오후 1시 4분께 3차 진압에서야 경찰은 철거민 30명을 체포했다. 이 중 29명이 연행됐고, 1명이 다리를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다.

[용산 재개발구역] 농성 25시간 만의 성급한 진압 작전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재개발지역에서 철거민들이 5층 건물 옥상에 가건물을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를 탄 경찰특공대가 살수차의 지원을 받으며 고공진압 작전을 벌이고 있다.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재개발지역에서 철거민들이 5층 건물 옥상에 가건물을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를 탄 경찰특공대가 살수차의 지원을 받으며 고공진압 작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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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경찰의 20일 용산 재개발 철거민 농성 진압은 철거민·경찰특공대원 등 6명이 숨지고 23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2005년 오산과 2009년 용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진압 시점이었다. 오산 철거민 진압이 농성 시작 54일째 날에 이뤄진 데 비해, 이번 진압은 철거민들이 농성을 시작한 지 불과 25시간 만에 시작됐다. 또한, 경찰특공대의 진압 작전이 시작된 시각은 날이 어두운 오전 6시 40분께였다. '성급한 진압'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이처럼 경찰이 진압을 서두르다보니 충분한 협상은 이뤄지지 못했고, 화재 대비에도 소홀했다. 이에 대해 김수정 서울경찰청 차장은 20일 오후 언론 브리핑에서 "철거민들이 병력 철수 전에 협상을 안 한다고 했다"며 "그래서 농성장 내부를 볼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한 "19일 하루 종일 도심에서 테러라 할 정도로 화염병이 난무했다"며 "철거민 지원 단체가 늘어나 더 요새가 될 위험이 있어 조기에 수습하자고 했다, 주간에는 엄청나게 차량이 정체되기 때문에 아침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차장은 "(오산 세교 사건을) 고려했다"고 말했지만, 대형 참사가 예견된 상황에서 협상 대신 진압을 서두른 이유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태그:#용산 재개발, #오산 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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