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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가영이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하는 광경. 불량남편은 어디 가고...
▲ 드라마 <워킹맘>의 한 장면 워킹맘 가영이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하는 광경. 불량남편은 어디 가고...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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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몇 년동안 못봤던 후배를 만나게 되었다. 반가왔다. 아이하고 같이 나왔다.  아이와 나는 거의 만난 적이 없는데도 서글서글하니 귀염성 있고 붙임성까지 있어 어른들에게 사랑받게 보였다.

8살이다. 궁금한 것도 많고, 어른들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다가 뭔가를 묻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나이 또래에 비하면 얌전한 편에 속했다. 너무 가만히 있어도 비정상일 것이다. 대화에도 끼고 싶었으리라.

요즘엔 부산하고 버릇없는 아이들을 내버려둬서 엄마가 더 문제라고 하는 판인데 후배는 친한 우리가 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매정하게 대했다. 야단을 치기도 하고 아이 행동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아직 어린 아인데,  저렇게 귀엽고 착한데, 애 상처받을텐데, 애한테 심하게 구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24시간 365일 붙어 있어 보라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결혼 초에는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늦게 들어오기 일쑤였고, 자격증 딴다고, 공부한다고, 휴일도 없이 밤낮도 없이 지내고, 자격증 따더니 이번엔 대학원 다니느라 바뻤다고 했다. 남편은 성공가도를 달리는 동안, 후배는 직장 다니면서 아이 낳아 키우며, 퇴근하고 아이 찾아 장봐서, 짐들고, 자는 아이는 어깨에 둘러 얹고, 핸드백 메고 집에 들어와 집안 일 하기를 몇 년, 직장 가까이 아이를 두는게 낫겠다 싶어 집에서 1시간 가까이 떨어진 직장 근처의 어린이집에 보냈다. 어린아이 끌고 1시간 이상을 출퇴근해야 했다. 이 일을 남편과는 무관하게 혼자서 다 해낸 것이다.

자는 아이를 깨워 씻기는 둥 마는 둥 옷 껴입으며, 도시락 싸가지고 같이 나와 차 안에서 밥 먹이고, 양말도 차 안에서 신기고, 차가 운송 수단 이상의 역할, 거의 주거 역할까지 한 셈이다.

아이가 좀 커서 나으려니 했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취학 후에는 아침 일찍 보낼 수 없으니 출근해서 데리고 있다가 학교에 데려다 주고, 3월에는 급식이 안되어 직장에 데려와 차 안에서 같이 점심 먹이고 나면 밥은 다 식었고 밥에 반찬이 뒤엉켜진 찬밥을 먹노라면 이게 사는 건가 싶어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방과후 생활이 안되니 근처 학원에 보냈다가 퇴근하면서 아이 찾아서 집에 같이 가고 집에 가면 파김치.

8살 아들 왈, "엄마, 아이 키우는 게 그렇게 힘들어?"

결혼 후 재밌고 행복하게 잘 사는 줄 알았다가 얘기 들으면서 거들어줄 말이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나가는 것조차도 힘이 들어 외식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어린 아들에게도 가끔  자신의 처지도 얘기한 모양이다.

그랬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엄마, 아이 키우는 게 그렇게 힘들어?"

'결혼이 뭔지 남편은 도대체 어디에 쓰는지.'
이제는 아이가 많이 커서, 옷을 입히거나 양말을 신기거나 하는 일 없이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기껏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이, "아이가 하나면 부모가 늘 같이 있어 줘야 하고 형제 역할까지도 해줘야 해.  더 힘들어. 하나 더 낳는 건 어때?"

후배는 전혀 아니라고 했다. 아이 키우면서 회식에 언제 가봤는지 싶단다. 회식은 고사하고 취미활동도, 여가생활도, 친구 만남도 어려웠던 것이다. 엄마 아닌  한 개인으로서의 생활은 전혀 없었단다. 그러니 남이 볼 때는 잠깐 보니까 아이가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엄마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워킹맘의 처지로서는 힘에 버거울 수 밖에. 남의 일이 아니었다.

밝고 씩씩하고 명랑하고, 일 잘했던 재주많던 후배인데…. '물론 사람을 쓰거나 이사를 직장 근처로 하거나 본인이 휴직을 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은 결국 여자 한 사람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정부에선 출산율이 저조하다면서 이런 저런 정책을 졸속책으로 내놓고 부산한 척한다. 그러나 막상 직장 다니는 여성들에게 와닿는 실질적인 정책은 없다. 아이는 낳아만 놓는다고 크는 게 아니지 않는가? 결혼은 해도 아이는 안 낳겠다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출산장려금 몇 푼 주면 아이는 긴 시간을 그냥 두기만 해도 크는가?

영유아 보호 시설이나 취학 전 아이를 맡길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것이 보완되지 않고는 출산율을 끌어 올릴 수 없을 것이다. 여성이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마련됐을 때라야만 출산장려구호에 설득력이 실릴 것이다. 물론 사교육이 또 문제가 되겠지만 여기선 일단 논외로 하자.

주부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인간이고 사회인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려면 가족 모두의 협조가 필요한 것이다. 주부 한사람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 주부이기에 앞서 한사람의 인간이고 사회인이다. 서로가 행복할 때 가정이 화목해지는 건 물론이고 건강한 가정 위에서 건강한 사회도 이루어진다.

여성들은 현실에 발빠르게 변화해 가는데, 남성들은 아직도 수렵시대의 농경사회의 과거에 머물러 있다. 힘든 일은 남자가 한다는. 가정은 남성이 이끌어 가야 한다는. 가부장적 권위를 누리려 하고. 혹은 권위를 잃어버렸다고, 권위가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남자의 권위로 인해 수많은 여성의 눈물이 있었다는 걸 왜 외면하는 건지!

사회는 농업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정보화사회로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이젠 가장의 역할이 뭔지, 아빠의 역할이 무엇인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뭔지, 분명히 새겨봐야 할 것 같다.


태그:#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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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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