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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일요일이 좋다>의 한 코너인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 공개와 관련, 리얼리티 프로그램 논쟁이 한창입니다. 이에 방송작가가 본 이번 사태에 대한 글을 게재합니다. 이와 관련한 찬반 등 다양한 논쟁글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나는 SBS <일요일이 좋다>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의 담당 작가도 아니기에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번 논란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렇게('패떳' 대본 공개 후, '지금까지 리얼이 아니었고, 대부분 대본에 있었던 것인가'라는 논란)까지 기사가 되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번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이 공개가 된 것은 무슨 대외비 문건이 있어서 누군가에 의해 공개가 되고 파문이 일고 논란이 증폭되고…, 한 것이 아니다.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펴내는 <방송문예>라는 잡지가 있다. 연재물 중 하나가 종영이 됐거나 방영 중인 화제 프로그램들의 대본을 공개하는 '다시 보기-이 방송 글'이라는 꼭지가 있는데, 지난 12월호의 주제가 요즘 리얼 버라이어티의 신흥 강자인 SBS의 '패떴'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누군가에 의해 기사화가 된 것이고 '배신을 당했네', '그럴 수도 있네'하며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사태(?)를 알게 된 것도 며칠 전 실시간 검색어에 '패떴 대본 논란'이 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서 내가 한 생각은 '아니, 그럼 정말로 대본이 없다고 생각을 했단 말인가?', '우리 시청자들이 설마 이렇게 순진하단 말인가?' 정도였다. 그런데 계속 논란이 커져가고 제작진이 해명 글을 내고, 거기에 '더 이상의 해명은 필요 없다, 핵심은 리얼리티 아닌 실망감'이라는 기사를 보고 나니, 방송작가로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떴' 뜬 이유는 '리얼'이 아니라 '재미' 때문

 

'패떴'이 처음 시작했을 때 무너뜨려야 할 경쟁 프로그램들은 MBC <일밤>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와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이었다. 먼저 '우결'의 아성을 무너뜨리기가 참 쉽지 않았다. '우결' 역시 가상이라는 틀이 있기는 하지만, 남녀 스타들이 부부가 되어 생활을 하는 모습을 너무도 리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리얼'은 높은 시청률로 이어졌다.

 

사실 '패떴' 첫방 시청률은 보잘 것 없었다. 뭔가 엉성했고 유치했고, 무엇보다 가장 큰 맹점은 '1박 2일'의 아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패떴'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의 길을 갔고, 무엇보다 SBS는 기다렸고, 다 알다시피 이제는 일요일 저녁 버라이어티 삼국지에서 가장 큰 영토를 확보하고 있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1박 2일'은 중간자적 위치가 되어 전국 재패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대한민국 선남선녀들에게 끊임없는 얘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던 '우결'은 와신상담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패떴'이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변방에서 중원을 호령할 수 있게 된 그 힘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리얼 버라이어티라서 그런 걸까. 그렇기 때문에 대본도 없는 리얼로 촬영을 했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패떴'이 시청자의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이효리, 유재석, 김수로 같은 스타들의 성격이 꾸밈없이 드러나고, 격 없이 재미있게 생활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우결'보다도, '1박 2일'보다도 재미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정말 아무 것도 없이 촬영한 줄 알았나

 

<마이데일리>의 기사에 따르면, '패떴' 3회 대본에는 멤버들 간 대화를 비롯해, 사소한 리액션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기에, 이는 리얼리티라는 '패밀리가 떴다'의 근간을 흔들었고,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안겨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패떴'의 대본은 철저하게 계획된 드라마 극본과는 전혀 다른, 방송 초 친분이 없는 출연진들을 위한 가이드라인 정도의 역할을 하는 글이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시청자는 과연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까.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말하는 '리얼'이라는 거, 도대체 뭘까. 우리가 흔히 말하곤 하는 일상적인 대화의 하나, "야, 정말 리얼한데?"에서 말하는 '리얼'은 또 뭘까.

 

묻고 싶다. '패떴'이라는 프로그램이 정말 아무것도 없이 그저 출연자들이 모여서, 정말 아무것도 없이 삽질하고, 정말 아무것도 없이 게임하고, 정말 아무것도 없이 식사 준비를 한 프로그램이라도 생각하는 시청자가 과연 어느 정도나 있는지 궁금하다.

 

직업이 방송작가이기 때문에 방송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들 중 베스트 1위가 "어제 무슨 프로그램 봤는데, 출연자들이 하는 말 대본이야? 진짜야?"다.

 

질문을 받은 나는 마치 대단한 기밀이라도 알고 있는 양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기본적인 대본은 당연히 있지요. 근데 어떤 출연자가 잘 하는가 여부는 대본에 플러스알파를 잘 하는 데서 드러나요." 그러면 "거봐, 대본 있는 줄 알았어"하는 파와 "그 연예인 참 순발력 대단하네"하는 파로 나뉘곤 한다.

 

중요한 건, 짠 티가 나느냐 안 나느냐다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드라마를 보던 어머니가 눈물을 짜면, "뭘 울어, 저거 다 짜고 하는 거야"라고 하시곤 했다. 그렇다. 드라마는 당연히 짜고 하는 거다. 문제는 리얼을 표방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인데, 과연 짜지 않을 수 있을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방송 프로그램들은 다 짜고 하는 것이고, 짜야만 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짜느냐 안 짜느냐가 아니라 짠 게 티가 나느냐가 그렇지 않느냐다. 티가 나는 프로그램은 엉성하다, 아마추어다 욕을 먹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은 잘 만들었다, 재미있다며 박수를 받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패떴' 대본 공개 논란의 핵심은 안 짜는 거라고 믿고 싶어 할 만큼 너무도 자연스러웠던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약간이라도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아닐까. 그만큼 시청자는 '패떴'을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짜여진 리얼 버라이어티 리얼은 없었다'는 류의 기사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재미있는 상황을 짜고, 다양한 캐릭터를 지닌 출연자들을 모아, 시청자의 공감을 사고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스토리를 얼마나 '리얼하게' 끌어내는가, 이것이 진짜 '리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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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패떴대본논란, #패밀리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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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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