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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어 올해도 학교에서 논술반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방학중이라 응하는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근데 막상 강의에 임한 아이들은 연방 하품이다. 왜 그럴까. 강의가 너무 재미없고 따분하다는 것이다. 평소 교실 수업 때는 농담도 하고 재미나는 얘기도 곁들였건만 해당시간에 맞춰 수업을 하다보니 빡빡하다.

 

그러니 자연 강의 일변도로 치달을 수밖에. 또한 워드프로세싱 된 강의안은 우선 겉보기에서 처진다. 더구나 학원교재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는 재미가 없을뿐더러 구미가 당기지 않았나 보다.

 

부곡초등학교 짬짬이 논술반

 

글쓰기를 한다고 두어 달 동안이나 맞춤법을 들이대고, 낱말 찾기를 고집하고, 문장부호와 띄어쓰기 공부까지 하니 지겨운 거다. 그뿐이랴. 수업마다 원고지 쓰기를 꼬박꼬박 고집한 탓에 아이들은 이 또한 정나미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논술반 아이들의 출석률은 반타작이다. 가뭄에 콩 나듯 얼굴을 들이미는 아이들도 있다.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고자하는 논술은 자기 생활주변의 일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제대로 표현하는 거다. 그런데 이미 틀에 짜여진 대로 끼워 맞추려는 것은 논술공부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아까운 시간만 소모할 뿐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짜맞추기씩 논술강의를 더 좋아한다. 단지 논술을 재밋거리로, 길들여지는 방편으로 배워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왜 논술을 가르쳐야하는가. 이유는 많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논술을 하면 머리 좋아지고, 문장표현력도 좋아진다고 믿는다. 특히 공부를 잘하게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선입견이다. 논술이나 글쓰기 공부는 그런 것과는 별개다. 필자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논술과 글쓰기는 ‘개인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공적인 글쓰기’다.

 

왜 논술을 가르쳐야하는가

 

사람은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남과 더불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의견을 내놓아야할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 그는 이 의사표현을 통하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마땅한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

 

20년 후 나는 34살이 된다.

그때 나는 어엿한 직업을 갖고 그 직업에 충실하기에 바쁠 것이다.

또 나만의 집도 생길 것이고, 월급도 모아져 있겠지?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많이 늙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희망은 두 가지다. 학교 선생님과 치과의사다. 이 두 직업의 선택을 빨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 두 직업을 하나로 선택하고, 그 직업을 잘 적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나가고 있을 것이다.

 

20년 후, 나는 비록 34살이지만 34살이 아닌 것처럼 젊어 보이고 예쁜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또 아름다운, 정말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미모를 갖춘 착한 여자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기대된다. 그래서 나는 20년 후가 아니더라도 10년 후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 부곡초 짬짬이 논술반 김현정.    

 

그렇기에 사회는 개인의 의사표현과 문제제기를 위한 발언들이 모여서 공론의 장이 형성되고, 이 공론의 장을 통해 의사 결정에 도달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공적인 글쓰기’는 논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논술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도 논술교육은 교육현장에서 뜨거운 감자다. 논술 교육이 새삼스레 불거진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육은 물론, 중등의 국어 교육도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의 활동이 교육 과정의 주된 대상이자 목표다. 논술 교육은 이 중에서 쓰기와 읽기의 활동이 결합된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 오늘날 ‘말로 하는 논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구술 활동까지 합친다면 논술 교육은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의 전 활동이 결합된 것인 셈이다.

 

'공적인 글쓰기'가 논술이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의 논술 교육에다 생산적인 독서 교육 방법을 하나 더 보태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기꺼이 책을 읽지 않으려는 데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더 친숙한 요즘 아이들을 부여잡고 책 읽으라고 다그치며 닦달하는 게 쉽지 않다.

 

 

지문을 정확하게 독해하고, 논제가 요구하는 바를 바르게 파악하는 과정이 ‘수렴적 사고’라면, 이를 바탕으로 구상을 하고 표현해 나가는 과정은 ‘발산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논술 교육은 단지 글 쓰는 재주만을 가르치고, 알맹이 없는 재미만을 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다소 힘들어하고, 꺼려하더라도 자신의 생활을 되새겨볼 수 있는 ‘삶의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진솔한 삶을 체험하는 것 이상으로 책을 많이 읽어야한다.

 

책은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 알게 하고, 창조적인 생산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한다. 그만큼 논술 교육에 있어서 독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독서는 우리가 차를 마시고 물을 마시듯 온 감각을 생생하게 살아나게 한다. 어린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 행복하고, 나의 존재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누가 말려도 책을 읽는다. 그런 바탕이라면 독서나 논술 교육은 그 어떤 컴퓨터 게임보다 흥미롭고 실감나지 않을까.

 

이야기가 길었다. 하지만 논술 교육의 강조는 필연적으로 독서 교육의 강화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다만, 논술과 연관된 읽기나 독해력 향상도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흔히 읽기 능력은 독서량에 의해 형성된다. 절대적으로 독서량이 많다면 읽기 능력은 어느 정도 향상된다. 이는 유사한 논리로 쓰기 훈련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아이는 글을 쓰는 것 자체를 ‘막막하다’고 느낀다. 막막한 느낌은 매우 정확한 표현으로서 쓰기에 관한 기초 능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교재를 디밀어가며 논술교육을 하여도 일단 글을 쓰는 게 낯설지 않아야 한다. 메신저나 이메일로 짧은 글쓰기를 자주 써보면 당연히 도움이 된다. 일기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글쓰기는 쉽고 부담스럽지 않은 단계로부터 어렵고 긴 글을 쓰는 단계로 나아가는 장단기적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훈련의 묘미는 글쓰기 훈련이 훈련처럼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는 데 있다.

 

글을 쓰는 힘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글을 잘 쓰는데 필요한 요소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 어휘 능력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대개는 한국어는 모국어이기 때문에 별도의 어휘 학습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경향이 있으나,  적절한 어휘를 선택하여 활용하는 능력은 글을 쓰는 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년 후의 나의 모습이라

하~ 벌써 서른이 지났네. 나는 결혼을 했을까?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고 세계로 진출해 있을까?

또 아니면 결혼을 해서 가족과 함께 해외로 나가 있을까.

궁금하다.

현재 나는 골프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서 그때쯤이면 골프로 성공해서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프로골프가 되어 있지 않을까.

난 프로골프가 되어서 가족과 함께 해외로 나갔으면 좋겠다.

내가 큰 사람이 되어 우리나라를 빛냈으면 좋겠다.

그럼 20년 후에 보자, 34살의 정우성이여!

14살의 정우성이가 씀 

- 2009년 1월 6일 화요일 14살의 정우성이가 34살의 정우성이에게  

 

한데도 우리 논술반 어린이들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신중하다 못해 너무나 강의에 밀착한다. 무슨 이유일까. 아이들 집단이 다른 까닭일까. 아니다. 그것은 바로 논술반 운영 자체에 있다. 아이들에게 걸맞은 강의요목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강의만 충실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 좋은 자리에도 학원수업에 길들여져 끝내 참석하지 못한 아이들이 있어 안타깝다.

 

우리 반 아이들이 논술강의에 밀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덧붙이는 글 | 창녕군 부곡면 부곡초등학교 박종국 교사의 ‘짬짬이 논술’은 박지영 선생님이 쓰신 <3가지 이유 중학논술>을 교재로 하여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잔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 동안 열립니다. 참가 학생은 모두 열세 명입니다. 


태그:#논술, #중학논술, #논술교육, #20년후의 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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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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