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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에 몸을 맡기다!
▲ 오늘 밤 살사에 몸을 맡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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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좋아하는 그가 이번 쿠바 자전거 여행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 김동우 사장 모험을 좋아하는 그가 이번 쿠바 자전거 여행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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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이 했네. 젊을수록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자꾸 도전하고, 부딪히면서 얻는 것이 많아야 해. 그렇게 얻은 경험과 지혜는 어느 것과도 바꿀 수가 없다네. 언젠가 위기가 닥친다면 지금의 고생이 큰 힘이 될 거야."

쿠바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는 김동우 사장님이 한턱 쐈다. 십대 시절 라틴아메리카로 이민을 와 멋모르고 뛰어든 사업이 실패해 큰 빚을 지기도 하고, 늦은 나이에 서강대에 입학해 학업에 매진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지금은 한국-쿠바 무역교류의 핵심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인생 선배의 조언이 격려가 되었다.

마지막이라면서 나와 J 이외에 쿠바에서 청춘을 불사르고 있는 20대 한인청년 둘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아바나 대학 여학생 두 명, 그리고 쿠바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운전사 올랜도까지 불러 자리를 함께했다.

무대에 올라 마음껏 자유를 몸짓하는 한 여성 여행자.
▲ 살사 댄스 경연대회 무대에 올라 마음껏 자유를 몸짓하는 한 여성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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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대화가 오가고 식사 중에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자 청춘 특유의 끼가 발산되기 시작했다.

올랜도가 특유의 창법으로 한국 가요를 정말 완벽하게 소화해 내자 작은 룸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에 질세라 쿠바를 대표한 여학생 둘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최신 팝을 랩으로 열창하며 녹록치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언제나 소극적인 우리의 대한 청년들은 모두 서로 떠넘기며 쑥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마지막 히든카드인 김동우 사장 자신이 답례로 현지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 오히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화기애애한 식사가 끝나자 김동우 사장 주선으로 자리를 트로피카나 나이트클럽으로 옮겼다. 말이 나이트클럽이지 아바나에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최고급 호텔 무도회장이다. 호텔 꼭대기 층에 레스토랑과 함께 위치해 있어서 분위기를 내는 식사와 야경관람까지 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여유 있는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쿠바 밤의 낭만을 즐긴다.

자리를 잡고 얼마 되지 않아 몇몇 관객들의 환호로 시선이 모일 때, 무대에 밴드가 등장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밴드가 올드 여행자들의 향수를 건드린다면 이들은 새로운 물결의 흐름을 주도한다.

호텔이나 고급레스토랑, 트로바 등 여타 다른 무대에 서는 밴드들과 비교하면 양과 질을 겸비한 그 연주실력부터가 남다르다. 거기에 북유럽부터 서유럽, 북미, 중남미, 그리고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열 몇 개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관객을 무대로 끌어올리는 카리스마와 자유로우면서도 질서정연한 공연매너가 시간을 즐길수록 더욱 유쾌하게 해 준다.

열정적으로!
▲ 밴드 공연 열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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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대로 몸을 흔든다.
▲ 모두가 홀로 나와 느낌 그대로 몸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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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적인 밴드공연으로 에피타이저 유희를 맛본 후 본 게임이 시작되었다. 살사의 기본이자 핵심인 엉덩이 털기 경연대회.

"자, 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춤 실력을 마음껏 뽐내보실 분 앞으로 나와 주세요. 특별한 감동과 추억이 있습니다. 오늘 밤 당신이 이 무대의 주인공입니다!"

밴드 리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러 명의 여성들이 앞다퉈 무대에 오른다. 춤 못 추면 낙이 없을 사람들 같다. 그들은 음악과 관객의 박수소리를 리듬 삼아 감각 흐르는 대로, 마음 이끄는 대로 영혼의 자유를 발산한다. 그 누구의 간섭 없이 무대는 성스런 제단이 되고, 댄스는 종교의식이 된다.

알고 보면 성적 묘사를 주제로 한 너무나 야한 춤이다. 그런데 그 춤을 감상하노라면 야하단 생각보다 멋지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몸놀림이 너무 자연스럽다. 그게 매력이다.
▲ 사실 살사는 알고 보면 성적 묘사를 주제로 한 너무나 야한 춤이다. 그런데 그 춤을 감상하노라면 야하단 생각보다 멋지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몸놀림이 너무 자연스럽다. 그게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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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들의 춤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같이 떠들고, 같이 즐기며, 무대 위의 춤을 보면서 동시에 내 안에 심하게 꿈틀대는 댄싱본능을 속박하지 않는다.

육덕진 몸매의 서양 아주머니도, 남자들의 애간장을 태울만한 아리따운 금발 아가씨도, 그리고 모든 남자들도 관객이자 동시에 댄서가 된다. 살사 음악이 흐르고 모든 이가 파트너십을 펼치며 호흡이 섞이고, 마음을 섞을 때 홀 안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된다.

천박하지 않으면서 아슬아슬 일탈을 즐기려는 야릇한 댄스 살사. 하지만 그 매력 넘치는 시공간을 초월한 친구들의 놀이터에 분위기 파악 못 하고 홀로 겸허한 솔로의 자세로 사진만 찍는 이단아도 있긴 하다. 모든 이가 춤출 때 혼자만 "티타늄보다 딱딱한 성질의 몹쓸 몸치라, 됐거든요!"라고 말하는 용기, 바로 나다.

신나게 몸을 흔들다, 고민 없이 순간을 즐기다, 내일 아침 눈부신 햇살에 눈이 떠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난 더욱 그리워질지 모른다. 회귀본능은 내 의식 밑으로 잠시 묻어두었으니까. 언젠가 봇짐 하나 메고 콜라 하나 들고 떠나는 사막 길 위에 미치도록 시원함을 갈망하는, 뒤돌아 다시 그 자리로 뛰어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그중에 한 곳은 분명히 쿠바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살사댄스로 흥건한 그 길거리의, 그 호텔의 냄새에 내 모든 교감신경이 작용할 것이다.

"살사는, 진심으로 내 생애 최고의 댄스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그런 감격을 안겨준 쿠바가 참 고맙다.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인심을 마음 판에 새겨준 쿠바가 참 사랑스럽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길, 그 집, 그 하늘, 그 바다, 그 바람, 그 사람, 그 이름, 그리고 내 곁을 스친 모든 것들.

건물은 텅 비어있고 초라한 간판만 남아있는 아바나의 뉴욕 호텔.
▲ 역사의 뒤안길 건물은 텅 비어있고 초라한 간판만 남아있는 아바나의 뉴욕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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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청난 짐들을 싣고 다시 파나마를 거쳐 자메이카로 날아가야 한다. 하나는 J의 것.
▲ 아디오스 쿠바 이 엄청난 짐들을 싣고 다시 파나마를 거쳐 자메이카로 날아가야 한다. 하나는 J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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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인생을 바꾸려는 경향이 있고, 인생은 모험을 방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언제나 외롭고 힘들다. 그런데 정말 멋진 일이다. 옳다는 확신만 있다면 말이다.

나는 사회주의 쿠바에서 이것을 배웠다.

"변화는 좋다, 그러나 변질은 곤란하다."

쿠바가 어떻든 난 국민들의 모든 것을 존중해 줄 준비가 되어 있다. 쿠바 길 위에서 배운 게 그거니까. 이제 하루만 더 있으면 나는 어쩌면 다시는 못 올 쿠바를 떠나게 된다. 이방 세력의 침략 때문에 더 아름다운 모로 성이 건축되었듯, 외로움과 고생 때문에 이곳에서 더 멋진 추억을 남기게 되었다.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 저 먼 미지의 바다로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뱃머리의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노를 저었다. 항해하는 동안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만날 수 있었다. 부둣가에서 멀어질수록 거친 풍랑을 마주하는 것, 그리고 더 많은 고기를 낚는 것. 그토록 갈망하던 꿈을 눈앞에 두고서 단 한 번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인생,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겠는가? 맹세컨대 삶은 꿈꾸는 자의 편이다.

여행을 하자. 산으로 바다로 들로 강으로 그리고 도심 한복판으로. 한 번쯤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소중한 나에게 가장 특별한 선물을 안겨주자. 최선을 다해왔다면 그간의 위로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면 앞으로의 격려로. 바쁜 시간 속에 애써 지워내고 놓쳐버린 꿈들이 알알이 여물어 들어 있는 자신의 진정한 행복의 선물 보따리를 풀어보자.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깨달을 것이다. "노는 게 남는 거야." 최선을 다한 당신에겐 건강히 노는 게 남는 법. 아이는 온몸으로, 어른은 온 맘으로. 자, 그럼 보물찾기 하듯 설레는 가슴을 안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자!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쿠바와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경제교류를 하고 있는 현대. 여행을 마치고 떠나기 전 강연. 쿠바에서 먹은 정이 듬뿍 담긴 라면과 김치가 아직도 그립기만 하다.
▲ 강연 쿠바와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경제교류를 하고 있는 현대. 여행을 마치고 떠나기 전 강연. 쿠바에서 먹은 정이 듬뿍 담긴 라면과 김치가 아직도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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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영웅. 당신은 혁명가일때보다 여행가일때가 더 좋았어요. 그 때 더 나에게 더 가까이 왔으니."
▲ 체 게바라 "안녕, 영웅. 당신은 혁명가일때보다 여행가일때가 더 좋았어요. 그 때 더 나에게 더 가까이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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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여행으로 詩를 쓴다

누구나 삶의 무게는 무거운 법이지.
어떤 이는 그 짐을 줄여나가려 발버둥치고
어떤 이는 더 강한 등을 달라고 기도하지.

물비늘에 적신 강바람이 땀을 씻고 지나가면
어떤 이는 남은 길을 보며 좌절하게 되고
또 어떤 이는 지나온 길을 보며 감사하게 되지.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여기 서 있다는 사실,
단 하나뿐인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특별함으로 숨 쉰다는 사실.

삶이 버겁고 답답할 땐 크게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혀 낯설은 길로 들어가 보자.
아마도 그대는 걷는 길 위로 비치는 그대의 얼굴을 확인하리라.

젊은 청춘, 늙은 청춘 모두 마음껏 방황하려무나.
시간이 그리움을 묻었던 그 곳까지 달려 나가려무나.
단, 언젠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만.

너의 여행은 한 편의 못 갖춘 시가 되어 기억되지.
하지만 다 쓰지 못한 그 시가 너무 그리워 열병으로 앓아눕고
결국 집념에 집념을 더해 그 여정을 열망하고야 말지.

이윽고 지독한 향수에 젖은 채 천천히 여행 가방을 들춰매며
마지막엔 가방 깊숙이 방랑시인의 꿈을 하나 더 집어넣고는
시간이 사랑을 잊었던 모든 기억의 편린들을 찾아 헤매겠지.

그리곤 이렇게 되뇌이지. ‘떠난이에게 가장 큰 짐은 그리움이리라.
난 자유를 찾아 지금 여기에서 떠났는데,
떠나고 보니 나는 어쩔 수 없는, 그리움만 가득 등에 울러 멘 짐꾼이네.’

아! 사랑은 그리움으로 시를 쓰고,
청춘은 여행으로 시를 쓴다.
시를 쓴다는 것은, 항상 설레면서도 동시에 너무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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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그동안 쿠바 편을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중단되었던 멕시코 편부터 다시 여행기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라이딩인아메리카, #체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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