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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대학교수들이 22일 토론회에서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은 결국 대운하를 추진하려는 것"이라며 정부에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대운하 반대 전국 교수모임'은 이날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대강당에서 4대강 정비 사업의 실태를 짚는 토론회를 열어 홍수 조절과 일자리 창출 등 정부 주장의 허구성을 비판했다.

 

정부는 15일 "2012년까지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 유역을 정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14조 원에 달하는 예산은 하도 정비와 배수갑문 증설, 제방 보강, 자전거도로 등을 짓는데 사용된다.

 

정부는 "하천정비 사업은 구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것으로, 대운하와 무관하다"고 강조하지만, 강바닥을 준설해 물길을 조성하는 하도(13km) 정비에 첫 해에만 171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것이 눈길을 끈다.

 

"하도정비 예산이 고속도로 보다 더 드나?"

 

관동대 박창근 교수(토목공학)는 이에 대해 "하도정비 예산은 지난달 7일 정부가 제출한 수정예산안에 갑자기 포함됐다. 고속도로를 지을 때도 1km당 100억 원이 들어가는 마당에 하도 정비에 1km당 131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는 지 의문"이라며 하도 정비를 '대운하 기초공사'라고 규정했다.

 

이명박 정부가 하천 정비를 명분으로 4개 댐의 건설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교수는 "정부는 3조2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해서 한강 유역의 달천댐·영월댐(동강댐), 낙동강 유역의 남강댐(문정댐)·송리원댐을 짓겠다고 하는데 이는 한탄강댐의 사례에서 보듯 엄청난 사회적 비용만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전북 남원 실상사 부근에 건설될 남강댐은 계획단계에서 심각한 사회적 저항에 밀려 사업 자체가 거의 좌초된 상태이고 영월댐도 환경훼손 논란 속에 1999년 6월 정부가 백지화 선언을 해야 했다.

 

 

"자전거도로는 이재오 의원의 공적 사업 될 것"

 

김정욱 서울대 교수(환경공학)는 "우리나라는 하천보다 오히려 댐이 있는 곳에 퇴적물이 쌓인다"며 "4대강 하천 정비라는 명분으로 댐에 물을 고이게 만들면 오염 퇴적물만 쌓이게 된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4대강 프로젝트에 포함되는 자전거 도로에 대해 "대운하 예정코스를 자전거로 답사한 한나라당 이재오 전 의원의 공적 사업이 될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세종대 변창흠 교수(행정학)는 "정부는 '4대강 프로젝트'가 하천공간을 합리적으로 정비해서 이용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사업이라고 하는데, 강을 식수나 관개·산업용수 외에 레저 및 운송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강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정부가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한 뒤 지방의 반발이 확산되자 일부 지역이 요청하는 지역운하 정책을 서둘러 수용한 게 4대강 정비사업"이라며 "4대강 사업은 사업의 타당성과 지역균형 발전 효과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이뤄졌기 때문에 일시적인 일자리 창출과 지역생태계 파괴라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 홍헌호 연구위원은 홍수 조절과 일자리 창출 등 4대강 사업의 효과에 의문을 표시했다.

 

홍 연구위원은 국토해양부가 내놓은 한국하천일람(2008년)을 근거로 하천정비 사업이 4대강 지역에 집중되는 것에 의문을 표시했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말 기준으로 정비가 아예 이뤄지지 않거나(미정비) 불완전하게 이뤄진(불완전정비) 하천 중에서 4대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0.6%와 3.85%를 각각 차지했다. 홍 연구위원은 "홍수 피해가 많은 지역은 강원·영남 등의 군소하천들인데 하천정비 예산은 4대강에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토목 사업은 안정적인 일자리 보장할 수 없다"

 

4대강 정비로 2012년까지 19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부 주장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홍 연구위원은 "정부가 얘기하는 4년간 14조원의 고용창출 효과는 연간 3조5천억 원으로 4만8천여 명씩 4년간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타 산업과 비교해도 일자리 창출 효과는 그다지 높지 않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이 2007년 발표한 산업연관표를 봐도 토목건설업의 취업계수는 8.7에 불과해 도·소매업(35.0)과 기타 서비스업(31.8), 음식·숙박업(27.6) 등에 크게 떨어졌다. (취업계수는 10억 원어치의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취업자 수를 보여주는 지수다.)

 

특정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총요소생산성(TFP)을 따져 봐도 IT제조업이 매년 두 자리 수로 치닫는 반면, 건설업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첨단산업을 기피하고, 건설 경기를 일으켜 당장의 취업자 수를 늘리는 데 급급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변창흠 교수도 "토목사업은 공사 기간이 끝나면 일손이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요구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은폐하려 할수록 제2, 제3의 김이태 박사 나설 것"

 

경제학계의 '쓴소리' 이준구 서울대 교수는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6월19일)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정부의 태도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교수는 "두부를 자르듯 분명하게 말해도 믿을 둥 말 둥한 상황에서 '당시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선문답 투의 말로 설득하려 드는 만용에 어이가 없어진다"며 "어느 바보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으려 할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데, 정말로 민심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얼마나 더 명백하게 국민이 반대 의사를 밝혀야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게 될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런 무책임한 말만 반복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후일의 역사는 그들에게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의 책임을 준엄하게 물을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편, 교수모임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에 대한 징계 움직임에 대해 "정치권력을 통한 비민주적 통제는 더 커다란 국민적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은폐하려 할수록 훨씬 더 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이 제2, 제3의 김이태 박사로 나설 것"이라며 징계 철회와 대운하 포기를 촉구했다.


태그:#대운하, #이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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