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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19일이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1년이 됩니다. '경제대통령'을 맞이한 우리는 역설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 최악의 경기침체라는 최악의 경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기업, 부동산, 금융 등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펴온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 28일 오후  재계 주요 인사들과의 청와대 간담회에 앞선 티타임에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 재계총수들에게 직접 차물을 따라주고 있다.
▲ 재계 총수들에게 '커피 서비스'하는 이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 28일 오후 재계 주요 인사들과의 청와대 간담회에 앞선 티타임에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 재계총수들에게 직접 차물을 따라주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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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잘라 총평부터 하자.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은 '신자유주의 금융화' 흐름과 '계급적 성향'(친재벌)의 기묘한(!) 결합이다.

전자(신자유주의 금융화)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로부터 계승된 것이라면, 후자(계급적 성향-친재벌)는 이명박 정부가 새롭게 도입했다. 후자의 정책적 표현인 금산분리 완화(철폐)는 당연히 친재벌·연고주의 범주에 속하는 동시에 전자(신자유주의 금융화)를 실현하기 위한 이명박 정권 특유의 '수단' 혹은 방법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금산분리 완화(철폐) 등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을 제대로 자리매김하려면 한국의 지난 10여 년을 관통한 기본적 경향, 즉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들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재벌개혁은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한 과정

한국의 지난 10여 년은 기업-복지-사회서비스 등 시민들의 '생존 단위'들을 '금융자산'으로 동질화시키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김대중 시대의 '재벌개혁'은 '금융시장의 해방'과 '기업의 금융자산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개혁' 이전엔, 대다수의 재벌 가문이 한자리수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했으며, 대기업 주식의 거래 역시 다양한 규제로 인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특히 외국인은 국내 대기업의 주식을 소유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시장을 자유화하고 개방해서 국내는 물론 해외 투자자들까지 자유롭게 대기업 주식을 거래하고 심지어 경영권까지 노릴 수 있게 만든 것이 이른바 김대중 '개혁'의 핵심 내용이다. 기업의 생산품이 아니라 '기업 그 자체'가 주식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이 된 것이다.

그런데 국민경제의 성장-고용을 책임지는 기업이 금융자산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기존의 성장-고용에서 '기업가치(주식가치) 올리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업가치가 떨어지면 다른 기업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인수당하는 수가 있다. 그래서 기업가치를 올리려면, 고용 형태를 최대한 유연하게 해야 하고 연구개발 등 장기간에 걸쳐 성과를 내는 투자는 가급적 억제해야 한다. 안정된 고용형태나 연구개발 투자는 국민경제에 장기적으로 이롭겠지만, 단기간에 금융수익을 올려야 하는 투자자들에겐 선행(善行)일 수 없으며 이에 따라 '기업가치 올리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사회운동권의 시각에서 '재벌개혁'은 '경제력 집중 완화'라는 민주주의 과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런 흐름을 열렬히 지지하던 개혁적 학자들은 지금도 '재벌개혁'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시장왜곡 교정'이었다고 주장한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 사회적 결과가 어떻든 재벌개혁은 (자본) 시장의 왜곡을 교정하려고 했던 것이 맞다. 그러나 재벌개혁이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한 과정이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같은 '금융자산으로 바꾸기'는 민간 기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공기업을 민영화하면, 정부 지분이 시장으로 흘러나와 주식시장 규모를 키우게 된다. 또한 이렇게 민영화된 공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공개(IPO), 인수합병 자문 등 짭짤한 투자은행업을 즐길 수 있다. 예컨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해 왔고, 이명박 정부가 본격화하려는 공기업 민영화 역시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부가 최근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교육-의료 등 사회적 성격이 강한 서비스 부문의 영리화다. 대학이나 병원을 주식회사로 만들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다. 예컨대 대학과 병원을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금융 장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넓어지겠는가. 의료보험-고용보험-연기금 등 국민보험 시스템에서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고, 정부에 쌓인 보험기금을 점점 더 리스크 높은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예컨대, 시민들에게 일자리와 소비재를 제공하는 기업, 전기·물 등 기초 생필품을 제공하는 공기업, 의료·교육 등 사회적 서비스, 노후 자금, 시민들의 재산 보유 형태(은행 예금과 부동산→주식 등 금융투자상품) 등이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조직 및 작동되는 정도가 계속 심화되어 왔던 것이다. 이를 신자유주의 금융화 혹은 금융자산화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의 금융혁명 수출과 몰락

영업정지 당한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간판 위에 금융위원회의 긴급조치 공고문이 붙어있다.
 영업정지 당한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간판 위에 금융위원회의 긴급조치 공고문이 붙어있다.
ⓒ 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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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의 원조는 물론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1980~1990년대에 이뤄진 금융혁명이다. 1990년대 미국은 금융산업을 사실상 국가전략산업으로 격상시켰다. 그런데 이런 '괜찮은 장사'를 미국 내에서만 하라는 법은 없었다. 가급적 세계적 차원에서 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독일 등 경제 규모가 크지만, 대기업과 은행 주식의 거래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없는 나라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에 따라 미국은 '금융혁명 수출'에 골몰했고, IMF 등 국제기구를 앞잡이로 내세워,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나라들에게 "돈을 빌려줄 테니 제도를 바꾸라"고 윽박질렀다. 10년 전 한국이 당한 일이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 한국·독일을 위시한 거의 모든 주요 산업국가들이 미국 시스템을 받아들이게 된다. 정리하자면, 미국이 1990년대에 한 일은 다른 나라의 경제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금융자산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세계적 금융 고속도로'를 닦은 것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중후반 이후엔, 전 세계 산업국가에서 주식과 채권의 발행 규모가 거의 미친 듯한 속도로 증가하면서 각국의 정부-금융기관-시민들을 채권-채무자로 엮게 된다. 즉, 수백조 달러 규모의 신용이 지구를 누비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금의 흐름은 두 개의 지구적 중심, 즉 뉴욕과 런던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예컨대 이 도시들에 소재한 자산운용사에 중동과 일본의 부자들이 돈을 맡기고, 독일과 일본의 기업들이 이 도시의 투자은행과 증권거래소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며, 이 도시 투자은행들이 발행한 파생금융상품에 한국의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이 투자하는 식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1990년대 이후 '금융 허브'는 거의 모든 산업국가들의 목표로 부상했다. 한국·독일·프랑스 같은 비(非) 영미형 자본주의국은 물론 아일랜드·룩셈부르크·아이슬란드 같은 소국, 아직 봉건의 잔재가 강한 아랍에미레이트 같은 국가들까지 미국형 금융모델을 열렬히 벤치마킹하고 있었다. 이러던 와중에 서브프라임 사태라는 금융 핵폭탄이 세계 금융 네트워크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터진 것이다.

재벌, 금융산업 재편 '대상'에서 '주체'로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버섯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던 시기에, 이명박 정부는 대대적인 산업구조 재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권(현 정부와 주변 세력이 '좌익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있는)의 '금융 허브(hub)' 노선을 한글 순화 차원에서 '금융 중심지'로 번역한 뒤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을 더욱 활성화하고, 확장하며, 자유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개방된 금융시장 환경에서 '한국 대표선수'로 활약할 초대형 금융복합체(은행-증권사-자산운용사 등 다양한 금융업체를 함께 운영하는 금융기관)를 육성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이 초대형 금융복합체는 예전처럼 '쩨쩨한' 대출 장사가 아니라, 주로 세계 자본시장을 무대로 과감한 투자를 감행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수출역군으로 상상되었다. 이제 금융산업은 실물경제의 보조자가 아니라 '초고수익 독립산업'이 될 것이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재정기획부나 금융위원회가 잊을 만하면 내놓는 메가뱅크 구상 역시 그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이런 초대형 금융복합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여기서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권들과 180도 다른 방법을 찾게 된다. 바로 재벌을 금융산업 재편에 끌어 들이는 것이다. 초대형 금융복합체는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구상한 바 있었다. 이른바 금융개혁의 슬로건이었던 '은행 대형화·겸업화',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한 한국판 골드만삭스 만들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재벌은 금융개혁의 대상이었다.

금융개혁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재벌 가문이 한자리수 지분으로 지배하고 있던 계열 대기업들의 주식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는 상품으로 '해방'시키는, '자본시장 정상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재벌은 금융산업 재편의 '대상'에서 '주체'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이를 어떻게 추진할지 살펴보자.

김용태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0월 1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국의 규제는 미국의 규제보다 훨씬 엄격한 것으로 이는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며 금산분리 완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김용태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0월 1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국의 규제는 미국의 규제보다 훨씬 엄격한 것으로 이는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며 금산분리 완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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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 분리 완화-산업자본에 은행 경영권 넘겨주기

우선, 은행에 산업자본의 돈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현행 법률 체계에서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은 은행 경영을 지배하기 어렵다. 산업자본이 획득할 수 있는 은행 지분은 총 주식의 10%이다. 그러나 의결권은 4%까지만 행사할 수 있다. 지분이 비교적 잘 분산되어 있는 은행의 경우, 4%도 작은 비율은 아니지만 경영을 지배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산업자본이 가질 수 있는 은행 지분 10%에 의결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5% 이상의 대주주가 거의 없는 한국 시중은행들의 경우 산업자본에 허락된 10% 지분은 사실상 최대 주주로 경영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은행 경영권(의 일부)을 미끼로 산업자본의 돈을 끌어들이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도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상한선을 10%에서 15%로 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금산분리를 완화하고 있으니 한국도 완화해야 한다는 의미일 게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은행 관련법에 대한 무지이거나 의도적인 사기에 해당한다.

미국의 경우,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의 5%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보유할 수 있다. 한국과 비슷한 보유 한도이다. 그리고 25% 이상 보유하는 산업자본은 무조건 '은행지주회사'로 지정되어, 금융업 이외의 업종을 운영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그 사이인 5.1~24.9%를 보유하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연준이 개별적으로 심사한 뒤 해당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 여부를 판단한다. 그리고 '지배'한다고 판단하는 경우 가차 없이 은행지주회사로 지정해서 금융업 이외의 업종을 운영할 수 없게 한다. 금융위원회가 언급한 10%와 15%는 법률적인 '은행지분 보유 상한선'이 아니라 연준의 상황에 따른 지침에 불과하며, 언제든 조정이 가능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산업자본들은 오히려 은행에 대한 지분 보유를 두려워하는 분위기다. 은행 지분을 잘못 보유했다가 자칫 다른 사업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국의 산업자본들은 은행의 주주가 되는 경우에도 무의결주(의결권이 없는 대신 배당 규모나 순서에서 특혜를 받는 주식)를 매입하는, 순수한 포트폴리오 투자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금융위원회가 금산분리 완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의 제도를 내세운 것은 정말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 상황에서 은행 지분을 10% 보유한 산업자본은 사실상 최대 주주로 해당 은행의 경영을 지배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후 삼성 같은 재벌이 특정 은행 지분의 10%를 보유하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날 때 금융위원회는 삼성을 은행지주회사로 지정해서 전자나 물산 등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이명박 정부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만들어 두었다. 바로 사모펀드를 통한 은행 소유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략하게나마 사모펀드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모펀드는 기업체 경영권을 인수,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고수익을 챙기는 '시한부 회사'다. 즉, 특정 기업을 인수했다가 되팔면 그 사모펀드는 해체된다. 그리고 이런 사업을 하기 위해 사원(社員)을 모집하는데, 사원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무한책임사원으로 사모펀드 운영자이고, 다른 하나는 유한책임사원으로 투자자 혹은 주주라고 보면 된다. 말하자면, 사모펀드 역시 주식회사의 운영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법률 체계에서는, 사모펀드의 지분 중 10% 이상을 유한책임사원인 산업자본이 보유하는 경우(즉, 산업자본이 사모펀드 지분 10% 이상을 보유하는 주주인 경우) 해당 사모펀드는 은행을 인수할 수 없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방안에 따르면 산업자본은, 은행을 인수하는 목적으로 결성된 사모펀드 지분을 30%까지 가질 수 있게 된다.

물론 금융위원회는 언제나 할 말이 있다. 인수한 은행을 경영하게 되는 사모펀드 운영자(무한책임사원)에 대해 유한책임사원인 산업자본이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용감한 운영자가 30% 대주주의 의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주장을 두고, 우리는 전형적인 말장난이라고 부른다.

결국 금융위원회의 은산분리 완화 방안에 따르면, 산업자본은 은행 지배가 가능한 규모의 지분을 직접 보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모펀드를 통해 소유할 수도 있다. 사실상 이는 은산분리 완화가 아니라 은산분리 철폐를 위한 방안이다.

지난 7월 17일 오전 서울 을지로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서 전광우(오른쪽) 금융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17일 오전 서울 을지로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서 전광우(오른쪽) 금융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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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원흉 '초거대 산업-금융복합 독점체' 눈앞

이처럼 은산분리 완화 방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재벌 가문에겐 은행 경영권을 인수할 가능성이 생긴다. 즉, 제1금융권(은행)이 재벌 수중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제2금융권(증권·보험)에 대한 재벌 가문의 소유권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조치가 추진되고 있다. 바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금산법(금융산업구조개편에관한법률) 개정안 등이다.

모두 아시다시피, 한국의 재벌 그룹들은 이미 산업체와 증권-보험 등의 금융업체를 함께 계열사로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삼성물산과 삼성증권-삼성생명-삼성카드를 거느리고 있는 삼성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지분을 보유하는 식으로 이뤄지는데 현행 법률 체계에서도 불법으로 몇 년 내에 관계를 청산해야 하는 사정이다.

이렇게 말썽 많은 모회사-자회사 체제에서 지주회사 형태로 가려 해도 계열사 간 지분 및 상호채무보증을 해소해야 할 뿐 아니라, 일반지주회사의 경우엔 금융업체를, 금융지주회사인 경우엔 비금융업체를 정리해야 했다. 재벌 가문이 지배하는 계열사가 줄어들 수 있는, '경제권력'의 축소 위기였다.

그런데 혜성처럼 나타난 이명박 정부가 이런 문제들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실 모양이다.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 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게 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재벌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증권사나 보험사를 중심으로 제조업체까지 모두 합법적으로 거느리는 지주회사를 구성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조치는 다음과 같은 목표들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금융지주회사의 제조업 자회사 허용은 투자은행업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인 '기업 사서 가치 높여 팔기'(buying out)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국 등의 '단독 투자은행 모델'(상업은행을 끼지 않은, 제2금융권 업체 중심의 투자은행지주회사)을 배경에 깔고 있다. 즉, 증권-보험 지주회사를 거대 투자은행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재벌 그룹들이 계열 증권-보험사를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를 구성하는 경우 현재의 계열 제조업체들 역시 항구적으로 보유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지주회사가 거대 제조업체를 영구 보유하는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둘째, 금융지주회사에 제조업 자회사를 허용하는 조치는 재벌 가문의 그룹 지배력을 그대로 보존해주려는, 몹시 계급성 짙은 정책으로도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재벌 가문이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합법적으로 유지하려면 일부 업체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재벌 가문이 현재의 계열 제조업체와 계열 금융업체에 대한 지배력을 합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지원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더욱이 내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보험업법 개정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재벌 계열 증권-보험사들은 지급결제권을 부여받아 사실상 은행 역할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그동안 불안하게 유지되어 오던 재벌의 제2금융권 지배를 합법화하고 제1금융권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철폐)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20~30년 간 미국에 존재했으나, 1930년대 대공황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면서 사라졌던 '초거대 산업-금융복합 독점체'가 21세기 초 한국에서 부활할 전망이다.

벤치마킹 대상 파산하는데 금융복합체 밀어붙이기

지금까지 봤듯이, 금융허브 혹은 금융중심지 노선은, 중국이 제조업 왕국으로 등장한 이후 위기감을 느낀 역대 한국 정부들이 새로운 국가적 대안으로 추진해온 정책이다. 좌파로 불리던 정권이든, 우파로 불리는 정권이든 이 노선만큼은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또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지구적 스탠더드였던 지난 10년 동안 금융중심지 노선엔 일정한 도구적 합리성이 있었다.

또한 이 금융중심지 노선의 핵심 수단 중 하나는 초대형 금융복합체 육성이다.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철폐) 역시 제1·제2 금융권에 투자를 집중시켜 대형화·겸업화된 투자은행업 중심의 금융복합체를 설립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이 노선의 영향권 안에 있다. 다만, 금산분리 완화에 따라 등장할 산업-금융 복합체가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든 형태라는 점으로 미루어 지나치게 재벌 가문의 연고주의적 이해를 고려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는 있겠다.

문제는 이명박 정권을 포함한 역대 한국정부의 벤치마킹 모델이었던 미국 금융시스템이 파산한 가운데서도 꿋꿋하고 용감하게 금산분리 완화(철폐)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들의 벤치마킹 모델이었던 미국의 단독 투자은행지주회사들(골드만삭스-베어스턴스-리먼브러더스-메릴린치-모건스탠리)은 이미 파산하거나, 강하게 규제를 당하는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재정기획부나 금융위원회는 단독 투자은행이 아니라 CIB(은행을 낀 투자은행지주회사)를 모델로 삼아왔다고 발뺌하고 있다. 그러나 BOA나 씨티은행 같은 CIB도 단독 투자은행지주회사만큼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재편기가 도래하고 있다. 지금까지 금융과 산업의 지구적 스탠더드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벤치마킹 모델이 사라졌다면 기존의 국가 노선을 다시 고민하고 의견을 모으는 것이 건전한 태도다. 금산분리 완화 문제는 금융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경제의 틀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벌 가문과 연고적 이해에 따라 금산분리 완화(철폐)를 추진해온 것이 아니라면, 정부 여당은 야당 및 시민사회와 머리를 모아 새로운 국민경제 노선을 고민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야당들도 초정파적인 태도로 이 문제에 협력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은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 중 '금융복합체 육성 대책'에 국한된 것임을 밝힌다. 자본시장통합법과 보험업법 개정안 등에서 금융상품과 관련된 부분이나 금융기관 건전성 기준(BIS나 시가주의 회계 등)에 대해서도 심도 높은 시민사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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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종태 기자는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입니다.



태그:#MB노믹스, #금산분리, #금융복합체, #금융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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