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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숨막히는 승부 끝에 결국 기호 1번 강동구-최재훈 후보가 기호 4번 김영한-김병국 후보를 누르고 12대 KBS 노동조합 위원장과 부위원장에 당선됐다. 66표차 박빙의 승부였다.

 

마지막 검표까지 모두 끝난 밤 11시 무렵, 두 당선자가 개표장소인 본관 민주광장에 들어섰다. 활짝 웃는 얼굴로 운동원들과 인사하며 등장하는 강동구 위원장 당선자에 비해 최재훈 부위원장 당선자는 무거운 얼굴이었다. 

 

두 후보가 손을 맞잡고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올렸을 때도 두 사람 표정은 대조적이었다. 최 당선자는 운동원들과도 담담한 얼굴로 짧게 인사는 나누고 지나쳤다. 당선소감을 밝힐 때에도 그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었다.

 

최 당선자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이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 "조합원들의 '위대한 경고'라고 받아들였다"고 했다. 50.1%의 지지, 웃음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최 당선자는 11대 노동조합과도 명백히 선을 그었다. '계승'이라는 단어 자체가 노동조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사원행동' 투쟁이 정당했다고 평가했으며 지난 9월 17일 인사발령 역시 '보복인사'라는 견해에 동의했다. "한국 사회가 극우파 사회로 가고 있다", "파시즘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통합'이었다. 그는 '사원행동' 소속 사원들의 징계 논의에 대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면서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나라당이 바싹 속도를 내고 있는 미디어관련법 제·개정 문제에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분명한 투쟁의지를 밝혔다. 

 

다음은 지난 11일 KBS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최재훈 당선자와 한 인터뷰 전문.

 

- 민주광장으로 이동해 당선소감을 말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웃지 않더라. 왜 그랬나?

"보통 당선되면 '위대한 선택'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난 '위대한 경고'라고 생각했다. 50.1%의 지지, 통합하지 않으면 공멸이라는 것을 조합원들이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 한나라당이 미디어관련법 등 추진에 시동을 걸고 있다. 사실상 한국사회가 파시즘으로 복귀하는 게 아닌가 싶다. 보수화되는 게 아니라 극우파 사회로 가고 있다. 전투가 아닌 전쟁 국면이라고 생각한다. 극우파 세력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 방송 공영성을 지키는 전쟁이다. 이 전쟁을 하는 데 통합 단결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니 당선이 즐겁지 않고 무게감을 느낄 수밖에."

 

- 강동구 후보와 손잡고 출마하면서 '좌우합작'이라는 얘기까지 했다. 어떤 생각으로 출마하게 됐나?

"10대 진종철 위원장 때 노조 편집국장 했다. 당시 내부 스펙트럼이 친 정연주=진보, 반 정연주=보수 꼴통…. 이런 거였다. 우리가 아무리 공공방송 철학과 노동계급 시각을 얘기해도 그 프레임에 갇혔다. 그때 생각했다. 한국사회는 보수 꼴통도 문제지만 진보 꼴통도 문제구나. 내가 보기에 KBS 내부 이념적 스펙트럼이 그렇게 넓지도 않다. 그런데 감정의 골은 너무 깊어졌다.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단결의 동기를 마련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 11대 노조 부위원장 강동구 후보와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면서 많은 고민했을 것 같다.

"나의 주장과 견해에 대해 충분한 동의와 약속이 있었다. 반드시 '무지개(화합) 노조' 만들겠다. 이 위기상황을 이렇게 풀어가자는 합의가 있었다. 생각보다 쉽게 나서게 됐다."

 

- 역대 치러진 선거중 가장 치열했던 선거였다. 결과를 어떻게 분석하고 평가하나?

"'사원행동 대 비사원행동', 11대 심판론, '어용노조 대 민주노조'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어떤 프레임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긴 자도 진 자도 없었다. 50,1% 대 48.5%…. 숫자가 의미없는 선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은 95%였다. 경고 메시지다. '통합해라. 통합하지 않으면 모두 망한다'는 조합원들의 의지라고 판단한다."

 

"KBS노조에는 사장 계열이 있을 수 없다"

 

- 선거운동 하면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유독 '통합'을 강조하는 것 같다. 왜 노조 당선자가 이토록 '통합'을 강조해야 할 만큼의 지경까지 왔다고 보는가?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분열 제공한 책임은 노동조합에 있다. 조합원을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에 '사원행동' 같은 대안세력이 생겨났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것을 풀 수 있는 것도 노조 아니겠는가? 노조가 잘하면 자생적 조직은 자생적으로 없어질 것이다. (대안세력이) 바람직하냐 봤을 땐 책임은 노조에 있지만….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예전에 학생운동 할 때도 총학생회 못 잡으면 특위 만들면서 구심점 잃었던 경험 있지 않은가?"

 

- <중앙일보>는 "이병순 사장 지지파가 당선되어 구조조정, 개편 등 이병순 개혁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형적인 재벌신문 얘기, 재벌신문 시각이다. 그런 신문사에는 사장 계열 노조가 있을 수 있겠지만, KBS 노조에는 있을 수 없다. 노동자계급은 사장·경영진과는 당연히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 11대 노조를 이른바 '계승'할 것인가?

"노조는 왕조가 아니다. 계승할 수 있는가? 적확한 표현 아니다. KBS 노조는 두 가지 원칙 즉 노동자계급 정신, 공영방송 철학으로 무장만 된다면 비난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지난 노조를 세세하게 말할 순 없고 공과가 있겠지만 후한 점수를 줄 수는 없다고 본다."

 

- 사원행동 소속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가 관심사다. 10일 이사회에 보고됐고 인사위원회가 곧 열릴텐데, 공교롭게도 노조 인수인계 시기와 맞물려 있다.

"노조가 대응하기 힘든 시기를 택한 것 아닌가 싶다. '노사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겠다, 노노갈등을 일으키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고.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전면전도 불사한다는 생각이다.

 

'사원행동'의 행동이 규정을 들이대서 중징계 내릴만한 사안인가? 이건 KBS 역사에 대한 몰이해다. 그동안 KBS는 '독립성'을 소중히 여겨왔다. 지난 8월 KBS에 경찰병력이 난입한 것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용납할 수 없다. 정당한 투쟁이었다. 징계는 철회되어야 한다. 사내 사장 1호의 기대를 짓밟는 행위다. 역사의 오점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가뜩이나 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인데, 대승적으로 판단해 파국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 새 사장 취임 후 '보복인사'로 일컬어지는 인사가 있었다. 김용진 전 탐사보도팀장도 당선자가 있는 부산 총국으로 발령났다가 다시 울산으로 발령나기도 했는데?

"'사원행동' 주축의 보복성 인사다. 정당한 절차도 밟지 않았고 개인의 고충도 반영되지 않았다. 잘못된 인사다."

 

- 이른바 '개혁 프로그램'이었다는 <미디어포커스>, <시사투나잇>이 결국 폐지됐다. 안팎의 비판 여론이 비등했는데?

"그럼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비개혁적 프로그램이었나? '개혁 프로그램'이란 평가는 적확하지 않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들이 권력 비판 기능, 거리두기, 소수 약자 보호 기능을 해 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사장이 바뀌면서 프로그램 명칭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포>의 경우 아직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되지는 않았고, 난 이 분야를 맡고 있는 조합원들이 훌륭히 해낼 수 있다고 본다."

 

"집행부 인선되는 대로 공영방송 사수 투쟁에 나선다"

 

- 단도직입적으로, 이병순 사장은 낙하산인가, 아닌가?

"그 개념을 정하는 것 자체가 지금 상황에서 의미가 없다. BBC와 NHK도 마찬가지다. 사장을 정권에서 임명하는 형태다. 사장의 영향력이 정권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레그 다이크 전 BBC사장 역시 블레어가 임명했고. 집권 노동당에 5만 파운드의 정치자금을 낸 경력까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한나라당에 정치자금 1억 낸 사람이 KBS 사장 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BBC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사장이 온다고 해서 뉴스에 이념적 침투를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어서다. 내부 프로페셜널리즘 문화가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KBS 사장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 아직 KBS 내부 문화가 튼튼하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다. 내부 문화 잘 쌓을 필요가 있다. <미포>나 <시투> 폐지에 맞선 투쟁도 그런 문화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 하지만, '관제방송' '관영방송'이 되고 있다는 안팎의 비판이 있다.

"기자하고 PD들의 저널리즘 정신을 믿는다. 만일 KBS가 '땡전뉴스'를 만들면 당연히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기자들이 그렇게 가지 않으려는 믿음이 있다. 노조도 공방위라는 제도를 통해 회사의 그런 기도에 맞서 싸울 것이다. 공영방송 철학을 지키는 것은 우리 생명줄이다. 이건희 회장도 KBS에 수신료 2500원 내고, 우리 아버지 같은 늙은 노동자도 2500원 낸다. 이게 무슨 말인가. 다수의 덜 가진 자를 대변하라고 공영방송이 존재한단 소리다. 흔들려는 기도 있겠지만 의연하게 맞설 것이다."

 

- 한나라당 미디어 특위가 법안을 발의하는 등 각종 미디어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집행부 인선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인선되는 대로 무조건 '악법 철폐', '공영방송 사수' 투쟁에 나선다."

 

- 한나라당에서 '수신료 인상'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구조조정'이라는 조건이 있다.

"수신료 인상은 재정 안정화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수신료 인상에는 절대 반대한다. KBS가 구조조정 할만큼 방만하지 않다. 채널 대비 인력이라든지 상대사 대비 임금 수준을 봤을 때 그렇다. 인력 과부하도 많지 않다. 적확한 인력배치, 사내 전직 시스템 구축 등에 대한 내부고민보다 먼저 한나라당 주장처럼 사람 잘라내는 구조조정에 절대 반대다.

 

- KBS 2TV 민영화 얘기도 솔솔 나온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리다"

 

- 이 정부가 언론장악을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나?

"권력의 언론장악, 이건 본능이다. 개혁 정부들도 방송법 개정 시도했다. 이제 한나라당은 종합세트로 다 털어먹겠다고 하는데 이에 맞서는 건 숙명이고 사명이다. 여기서 지면 처음에 말한 것처럼 한국 사회 전체가 극우파 사회로 가는 것이다. 보수언론과 재벌에게 방송을 장악하게 한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KBS 노조는 끝까지 맞설 것이다."

 

"정연주 전 사장의 신자유주의적인 발상,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대, 11대 노조는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퇴진운동을 펼쳤다. 당선자는 10대 노조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정 전 사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공과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일반 직원으로서 평가와 노동조합에 있었을 때 평가는 다를 수 있다. 10대 노조에 있으면서는 공영방송의 방향타를 잃었을 때 철저히 대립각을 세웠다. '중간 광고 하겠다, 민속씨름 중계 포기하겠다, 삼진 아웃제 도입, 평가보상제 하겠다' 이런 부분은 상당히 신자유주의적인 발상이다. 노조로서 반대할 수밖에 없다.

 

제작자율성 높이고 탐사보도팀 만들어서 기자들이 탐사보도할 수 있는 조건 만들고 매체 비평 프로그램 만든 것에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경영 부분에 있어서 미진한 부분이 4년 동안 계속됐다. 공영방송이 늘 이윤을 내는 경영은 아니지만 화수분이 없는 한 재정 압박이 있을 수밖에 없다. 미리 대비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 소홀했다."

 

- YTN 노조의 '구본홍 사장 반대' 투쟁은 어떻게 평가하나. 선거 당시 유인물에서 YTN 노조 투쟁을 폄하하는 듯한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역사적으로 정당한 투쟁이다. 어떻게 해서든 연대할 것이다.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그들의 투쟁은 정말 정당한 투쟁이다. YTN 노조가 모든 언론사를 대신해서 전초전을 치루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몇 년 동안 미디어 문제를 다루면서, 그리고 특히 올해 이른바 'KBS 사태'를 취재하면서 늘 들었던 생각, '2008년 KBS 조합원들 사이에 푹 패인 감정과 불신의 골, 메워질 수 있을까'하는 점이었다. 끝으로 물었다.

 

"당선자가 생각하고 있는 KBS 조합원들의 '통합', 과연 가능할까?"

 

당선자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당연히 가능하다. 절박한 시기다. 통합하지 않으면 공멸이다. 아까 말한대로 노동자 의식과 공영방송 철학만 있다면 충분히 통합할 수 있다."

 

노트북을 덮으며 하나 더 물었다.

 

"그럼 올해처럼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항의 방문하는 사태는 이후 2년 동안 없을 것이라고 봐도 되나?"

 

그 특유의 사투리가 나왔다.

 

"없어야 안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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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최재훈,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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