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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주부가 된 나, 제대로 주부 노릇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혼자일 때는 알아서 주는 데가 많아 걱정 안하고 먹었는데, 한 식구 늘은 게 먹는 양은 세곱이나 늘어나서 이젠 얻어 먹는 것도 염치가 없다. 울신랑 적당히 사 먹으라지만 말이 그렇지 요즘 먹거리가 좀 말썽이 많은가. 그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장 담그기에 나섰다.

 


어린시절 학교에 갔다가 대문 안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외치는 소리. 엄마! 엄마! 그런데 몇 번을 불러도 조용하더니 개미소리만 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바로 뒤란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땐 학교 갔다왔을 때 엄마가 없으면 왜 그리 허망한지. 암튼 소리를 따라 들어가보니 엄마는 장을 담그고 계셨다. 장독이 뒤란에 있었으니까.

소금물을 장항아리에 부을 때도 있었고, 씨뻘건 고추장을 버무릴 때도 있었고, 간장을 떠서 다른 항아리에 옮겨 담을 떄도 있었다. 장에 관한 일은 거의 다 뒤란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지금도 이상한 건, 엄마가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힘들기는커녕 아주 재밌어 보였다. 우리들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하지만 메주를 쑤는 건 좀 거국적이었다. 소죽 솥에 쑤어서 안마당에서 절구에다 빻았고, 멍석을 펴 놓고 그 위에 여럿이 앉아서 모양을 만들어 진열(?)했다. 짚으로 예쁘게 묶는 것도 신기했고, 처마 끝에 나란히 달아매 놓는 것도 나로선 재밌었다.

나를 꼬득인 건 셋째언니. "얘 너도 이젠 식구가 생겼으니까, 장을 담가야지." 언니는 생협에서 메주를 사서 깨끗이 씻어 말려놨다가 내게 주었다. 메주를 항아리에 넣고 소금물을 붓고 위에다 빨간고추를 동동 띄웠다. 그리고 이젠 다 된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데 40일만에 간장을 떠야 한단다. 반말이라 양은 적었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았다. 순전히 전화로 물어 물어서 해결하자니 몇 번이나 통화한 끝에 겨우 마무리. 거기서 끝나면 좋은데 가끔 살펴봐야 한단다. 아니나 다를까, 위에 하얀 곰팡이가 끼기 시작했다. 그냥 하야면 괜찮은데 회색빛도 있었다.

마침 친구가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더니, 지네 집에 갔다 놓으랜다. 아파트보다는 주택마당에 볕이 훨씬 잘 든다며. 몇 번을 망설이다 덥썩 갖다 놓았다. 내 단순한 생각은 그냥 햇빛만 잘 쏘이면 맛있는 된장이 되는 줄 알았는데, 갈 때마다 봐도 색깔이 영 아니었다. 언니왈, 어차피 맛있게 하려면 콩을 푹 고아서 곱게 빻아 가지고 콩 삶은 물, 된장을 잘 섞어 놓아야 하니까 그때 다시 손보라고 했다.

 


미루고 미루다 콩을 삶아서 준비해 놓았더니, 마침 비가 온다. 어쩔 수 없어서 친구 집에 가 된장항아리를 가져와 버렸다. 아무래도 내 집에서 하는 게 낫겠다며. 큰 그릇을 내놓고 된장을 쏟아보니 위는 딱딱하게 굳어있고, 가장자리는 곰팡이가 하얗게 앉았다. 언니왈' 된장은 가끔씩 들여다보고 손으로 꼭꼭 눌러줘야 하는데 그냥 방치해 놔서 틈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무조건 햇빛만 잘 받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나뭐라나, 하면서.

에구 힘들어. 이러구두 장을 담아 먹어야 하나. 난 과도로 곰팡이 난 부분은 도려내 버리고 잘게 부숴서 삶은 콩과 콩물을 섞었다. 그래도 햇빛을 너무 많이 받아 그런지 딱딱한 부분은 그대로다. 하룻밤을 그대로 덮어 놓았다. 그러면 질척해진 습기를 머금어 딱딱한 것도 부드러워지겠지, 하고.

 


과연 예상대로 골고루 말랑해져 있었다. 그것들을 다시 절구에다 곱게 빻아 항아리에 담았다. 처음 담았던 그 항아리에 담았더니 반쯤 찼다. 그리고 언니에게 보고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가득 차야 잘 익는단다. 다시 새로 구입한 작은 항아리에 옮겨 담고, 난 두 손 들었다. 왜 이렇게 복잡한 거야. 간단한 것처럼 말하더니. 아직도 한 3개월은 익혀야 제 맛이 나고 내년 가을이 되야 장맛이 제일 좋다는데, 그럼 다 이렇게 힘들게 해 먹은 거였나, 엄마도 언니들도….

 


주부 정말 힘들다. 된장 항아리 갖고 며칠을 씨름을 했는지. 겨우 흉내내기 수준인데 말이다. 내 주위에 결혼 22년차 주부가 있는데, 그이는 무척 부지런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아이가 넷이다) 뒷바라지하면서 매실 절이고, 고추 삭히고. 때마다 먹을 밑반찬을 차곡차곡 쟁여 놓았다.

그 집을 방문해 본 나 정말 감탄스러웠다. 이게 엄마의 힘인지, 주부의 힘인지. 그러나 난 아직 흉내 수준, 그런데도 힘들다고 엄살이다. 작은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은 우리 된장. 많아서 내년에는 안 담아도 되겠다고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된장은 2년이 되어야 제대로 맛이 나는데 잘 익혀서 먹으려면 매해 담가서 대기해 놔야 한단다.

주부노릇 제대로 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겨우 된장 하나 담아보고 난 아주 실감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흉내 제대로 내기로. 사실 비싸서 그렇지 적당히 사 먹을 때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계속 사 먹다 보면 아무도 장을 담을지 모르는 시대가 도래할 것만 같아 걱정이다. 늦었지만 나라도 하나 둘 흉내내 익혀서, 정말 맛있는 장을 만들어 봐야겠다. 그러다보면 나중에 젊은 세대들한테 전수해줄 기회가 혹시 올지 모르니까.

태그:#장 담그기,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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