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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7일) 오후 5시쯤 되었을까요. 옛날 사진들을 컴퓨터에 보관하려고 스캔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에요. 오늘 집에 못 가겠네요. 내일이 이브닝(오후 근무)인줄 알았는데 근무표를 보니까 데이(아침근무)네요. 집에서 아침 일찍 출근하기도 그렇고 하니까, 내일 근무 마치는 대로 일찍 갈게요.”

“알았어. 자기 요즘 여기저기 다니느라 피곤할 텐데 집에 오기는···, 무리하지 말고 그렇게 하라고.”

 

대답은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딘가 허전하고 서운하더라고요. 아내가 오면 동생네 집에 놓고 온 가방과 머플러를 가지러 가려고 했거든요. 겨울비가 내리고 날씨도 을씨년스러워 올 때는 칼국수와 녹두빈대떡을 사먹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서운했습니다.

 

집에 오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것도 아닌데, 어제저녁에 출근하면서 “내일은 데이니까 저녁 6시 조금 넘어서 집에 오겠네요”라고 했던 말만 생각나면서 오늘 밤도 혼자서 지낼 생각을 하니까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아내는 정해진 근무표대로 일하는 사람이고 또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데 항상 기다려지는 이유를 저도 모르겠습니다. 시장에 가는 어머니를 따라가지 못해 울다 골목과 신작로를 오가며 기다렸던 철부지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요즘 저를 보면 늙으면 애 된다는 말이 어쩌면 그렇게 어울리는지···.

 

집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아내는 아침, 저녁, 밤 근무를 돌아가면서 합니다. 그 대신 하루를 쉬는 날도 있고 이틀을 쉬는 날도 있지요. 해서 일을 마친 다음 날이 저녁이나 밤 근무일 때는 늦어도 집으로 퇴근하고, 아침근무일 때는 병원 기숙사에서 잠을 잡니다.

 

월말부부로 지내며 집을 알아보러 다닌 지 15개월 만인 지난 8월 초 부모님 산소와 형님댁이 가깝고 돌아가신 어머니 흔적이 남아 있는 마을에 집이 나왔다고 해서 계약을 하고 곧바로 이사를 했습니다. 재개발에 들어간 13평 아파트에서 6년 넘게 살다 24평으로 이사를 오니까 불편할 정도로 넓더라고요.

 

집에 놀러 왔던 지인은 베란다와 테라스를 합하면 40평 아파트보다 더 넓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하긴 1층 건평이 46평이고, 서재에서 식탁이 있는 주방으로 밥을 먹으러 가려면 한참 걸어야 하니까요. 아내와 밥을 먹다 “밥 먹으러 올라믄 다리가 아프다니까··”라고 하면서 웃었던 적도 있습니다.

 

1년이 넘도록 헛발질만 하고 다니다 집주인을 만난 지 두 시간 만에 이삿날까지 정해놓고 얼마나 좋았으면 아내에게 “초등학교 6학년 때 꿈에 그리던 수학여행이 서울로 결정됐을 때보다 더 좋다”라고 했겠습니까.  

 

좋은 집에서 살아도 허전함은 여전 

 

내일(28일)이면 고향으로 이사 온 지 100일이 됩니다. 그동안 아내가 쉬는 날에는 1996년에 출시된 열두 살짜리 티코 승용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명소들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피곤할 때는 푹 쉬다 저녁에 나가 형님 내외분과 외식을 하고 들어오기도 했지요.  

 

제가 사는 마을 이름은 문화마을이고 도로명은 등잔불이 항상 밤늦게까지 켜져 있어 주경야독하는 서당 골을 뜻한다는 등동(燈洞)길인데요. 해발 200m가 조금 넘는 망해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반경 100m 안에는 면사무소, 파출소, 초·중학교, 우체국, 농협, 주유소와 작은 상가도 조성되어 있어 생활환경이 좋습니다.

 

마을 인심도 좋아서 이사 온 지 일주일쯤 되던 어느 날 옆집 할머니가 밭에 가자고 해서 깻잎, 감자순, 꽈리고추 등을 따다 반찬을 해먹었고, 그 외에도 팥, 참깨, 돔보, 사과, 포도, 감 등 아주머니들이 먹어보라며 가져온 과일과 잡곡 종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좋아하는 찰밥도 얻어먹고 엊그제는 옆집 할머니가 김장했다며 생굴을 넣어 담근 겉절이를 손수 가져오셨더라고요.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면 서해안고속도로와 주말이면 패러글라이더들이 공중곡예를 즐기는 오성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금강호와 철새 탐조대가 있는 강둑 아래로 펼쳐지는 십자들녘은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데요.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어머니의 숨결이 느껴져 더욱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40년 전 어머니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는 동네 아저씨도 몇 분 만났으니까요. 

 

월말부부로 지내던 아내와 매일 만나다시피 하고, 보고 싶던 형제들도 자주 만나는데 기다리는 마음과 허전함은 떨어져 있을 때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시내에서 누구와 만난 지 며칠 됐는지 손가락을 꼽는가 하면 아내가 달력에 체크해 놓은 근무 표시를 확인하며 쉬는 날을 기다리거든요.  

 

마을로 들어오는 시내버스를 보면 아는 친구나 친척이 타고 오는 상상을 합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습니다. 만날 사람도 없으면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보고, 타고 나가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요. 그때는 ‘혹시 나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일에도 마가 끼는 법이고, 넘치는 것보다는 조금 부족한 게 좋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태그:#아내, #문화마을, #등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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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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