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수빈뜰로 밤마실을 갔습니다. 늘 식물을 돌보는 일에 낮 거개의 시간을 다 할애하시는 이명희 여사님과 그 일을 즐거움으로 보좌하고 계신 전명현 교수님께서 첫추위가 오기 전 식물들의 겨울나기를 위해 수빈뜰 일층의 필로티공간을 비닐로 막고 난로를 피워 온실로 만들었습니다.

 

늘 따뜻한 난로가 피워진 그 공간은 저녁시간 난롯가에 앉아 수다를 즐기는 훌륭한 담론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어젯밤 이웃 몇 분과 맥주 몇 캔을 사들고 그 필로티 온실로 들이닥친 것입니다. 전교수님 내외분은 난로에 장작 몇 개를 더 넣어 공간을 덥히고 저희를 맞았습니다. 난롯가에서 우리는 심각할 필요가 없는 쇄담(瑣談)으로 초겨울의 저녁을 즐겼습니다.

 

 

UNA의 정광현 박사님께서 지난여름 2개월간 아프리카를 다녀오시고 아프리카에 경도되어 있는 저간의 사정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아프리카에 푹 빠져 지내시는 그 분은 머리도 웨이브를 넣어 마치 아프리카의 한 부족 같은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어쩌면 그분에 의해 아프리카의 문화를 집적(集積)시킨 아프리칸 문화공간이 헤이리에 생길지도모르겠습니다.

 

성필원 씨네팰리스 관장님께서는 수십 년 전 결혼 초에 있었던 부부간의 헤게모니 쟁탈에  관한 에피소드를 고백했습니다.

 

"친구들이 신혼 초에 부인을 제압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와 사소한 다툼이 일자 그 친구의 말대로 이불을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내동댕이치며 의도된 과잉대응을 했습니다. 그런데 처는 느닷없이 TV를 발로 차며 더욱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그 브라운관 TV가 탁자에서 떨어지면 진공관이 폭발할 수도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어쩌면 그 폭발로 아파트가 날아갈 수도 있다는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무릎을 굽혀 발길질하는 부인의 다리를 부여잡았지요. 주도권싸움에서 완패를 한 것입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부인과의 싸움에서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이명희 여사님께서는 결혼 후 17년 동안 집안 분위기 때문에 말대꾸 한 번 못한 사연을 실토하셨습니다. 명문가의 신여성이셨던 시어머님은 며느리가 아들에게 하는 말대답조차 수제비 태껸으로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고야 비로소 남편에게 반기를 들었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전 교수님께서 부인의 심중을 살피는 주도권의 역전에 성공하신 것입니다.

 

 

향향림 갤러리의 이정호 헤이리 이사장님께서는 이즘 너나없이 어려워진 세계 경제의 전망을 쏟아내는 경제학자들의 실없음을 한 에피소드의 예를 들어 비판했습니다.

 

한 인디언 마을에 가을이 왔습니다. 그 부족의 젊은이들이 추장에게 가서 여쭈었습니다.

"올 겨울을 위해 장작을 얼마나 준비할까요?"

"많이 해 두어라!"

추장은 관례대로 답했습니다.

추장은 며칠간에 걸쳐 열심히 땔나무를 준비하는 부족민들을 보고 다시 그들이 질문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상대에 전화를 걸어 올겨울의 추위에 대한 기상예보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추울 것 같다'는 막연한 전망을 들었습니다.

추장의 예상대로 상당량의 땔나무 준비를 마친 부족민들이 다시 추장에게로 왔습니다.

"이 정도면 올겨울 추위를 날 수 있을까요?"

"상당히 추울 것 같다. 더 준비토록 하라!"

추장의 전망에 따라 마을 공터가 가득할 만큼 땔감을 준비했습니다.

추장은 이들이 다시 물어 올 것이 두려웠습니다.

다시 한 번 기상대에 전화를 했습니다.

기상대의 예보관은 수화기 저편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지금 인디언 마을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땔감을 준비 중입니다. 그러므로 올 겨울에 혹한이 올 것이 분명합니다.”

 

경제 전문가들의 경기예측이라는 것이 이 같이 홀하다는 것이지요.

 

얘기는 다시 '행복'에 관한 정의로 넘어갔습니다. 이정호 이사장님은 회사일로 해외 출장이 잦은 편입니다. 그래서 긴 비행시간을 가벼운 영문 유머집을 읽으면서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그 유머집에 소개된 내용을 소개하면서 '행복'을 정의했습니다.

 

미국 맨해튼 월가의 나스닥 상장 전문가가 고즈넉한 멕시코 한 서부 해안마을로 휴가를 갔습니다.

그 마을의 한 어부는 늦잠을 즐기고 늦은 오전에 한 시간쯤 바다로 나가 한 바구니의 고기를 잡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돈과 바꾸어 마을의 선술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브런치brunch를 먹고 마을 사람들과 수다와 술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해가 기울자 사람들과 흥겹게 마림바를 두들기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미국의 증권전문가가 그 어부에게 충고했습니다.

"당신은 왜 좀 더 많은 고기를 잡으려고 하지 않는가?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한다면 분명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주식을 살 수 있다. 주식수를 늘여가면서 한 20년 열심히 일한다면 당신은 아마 거부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어부는 되물었습니다.

"그럼 20년 뒤 부자가 되어서는 무엇을 하지요?"

월가의 금융전문가는 답답한 듯 답했습니다.

"당신은 한적한 바닷가에 집을 사서 늦잠을 즐긴 후 느긋하게 브런치를 먹고 카페로 가서 친구들과 수다와 술과 음악연주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동의했습니다. 어부가 지금 선술집에서 마림바를 즐기듯, 오늘밤 전 교수님이 넣은 장작의 온기와 그 장작난로에서 익혀낸 포근포근한 호박고구마를 즐기는 지금이 '행복'이라고….

 

 

내일 강의가 있으신 청향재의 송효섭 교수님의 사정을 고려하여 난롯가를 떠나려할 쯤 이 여사님은 또다시 맥주안주를 내오셨습니다. 마른멸치와 후춧가루가 살짝 얻어진 참기름 소금장이었습니다. 저는 행복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행복'은 맥주를 마신 후 후춧가루로 생선의 비린내를 없앤 바삭바삭한 마른 멸치를 고소한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에도 포스팅 되었습니다.


태그:#헤이리, #수빈뜰, #밤마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