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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덮힌 쓰레기장
▲ 낙엽 덮힌 쓰레기장 낙엽 덮힌 쓰레기장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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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어 낙엽이 캠퍼스를 덮는다. 눈까지 내려 까만 땅을 하얗게 변장해냈다. 무관심과 다른 시선이 그곳을, 그들을 외면시켰다. 나는 다른 곳에 가서 볼 필요가 없었다. 정작 우리는 그들에게 와서 보라고 했지만, 보여줄 게 없다. 그들의 삶이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더 심하다.

우리 안에 있지만 우리 안에 없는 곳/것 인냥. 매일 지나가고 보고 만나지만 우리라는 울타리에는 결코 들어오지 못하는 곳/것. 감히 하나라고 까지 외쳐대지만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공간과 사람을 만났다.

마펫관 지하 주차장 맨 안쪽, 소양관 각층 중앙의 쓰레기통, 기숙사 건물 바깥 한 켠, 식당 구석진 곳에 처박아져 있는 배설물들. 유로부터 유를 창조해낼 수 밖에 없는 우리네의 피조물. 가치를 알아주지 못한 채 쓸모가 다하면 언제 고마워하기나 했냐는 둥. 아무렇게나 던져버리면 그걸로 끝. 너무나 인간적이고 인간적인 서글픈 이별.

아주머니께서 쓰레기를 정리하시는 모습은 우리 눈에 쉬이 안 들어온다.
▲ 청소 아주머니 아주머니께서 쓰레기를 정리하시는 모습은 우리 눈에 쉬이 안 들어온다.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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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곳과 그것의 사람들은 음침함과 어눌함과 쓸쓸함이 충만했나보다. 2007년 12월 차디찬 겨울 현재, 장신대 교정에는 20여명의 작은 예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쓰레기를 눈뜬 장님들은 결코 보이지 않게 치우신다. 새 예루살렘의 갈릴리 예수들이다. 빗자루, 물걸레, 고무장갑으로 사명을 다하신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 조금 넘는 시간까지 종일 일하신다. 예상했던 것처럼 모두가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이라신다. 그런데 그 분들이 모두 용역회사에 소속된 분이시란다.

즉, 이 시대의 아픔과 소외의 대명사인 비정규직이란 말이다. 게다가 학교 밥은 비싸서 사먹지 못 하신댄다. 마땅히 편히 쉴 곳도 없어서 냉난방도 시원치 않은 창고에서 겨우 숨을 돌리신댄다. 식당에 남는 밥은 어디다 버리는가, 학교 건물 공간이 그리 좁았던가, 등록금과 장학기금 보유액은 계속 느는데, 4대 보험금을 챙겨 드릴 돈도 마련 못 하는가.

우리 안에 없는 곳에서 분리수거 중인 분들
 우리 안에 없는 곳에서 분리수거 중인 분들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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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토록 좋아라하는 통전적 세계관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피조물이 온 우주와 소통한다면, 그것이 곧 나일 듯. 먹는 것이 곧 내가 되고, 싸고 버리는 것도 내가 될 터. 그러니까 한순간에 버리더라도 그 행위와 감정이 곧 영원인 법. 누가 과연 복음을 소유한 자이던가!? 그곳을 꺼리고, 그것을 버리고, 그분을 깔보는 자는 결코 그나라를 선취할 수 없을 것. 그나저나 이제는 정말로 우리 모두가 쓰레기-되기를 과감히 시도해야 할 때. 그래서 효용이라는 가치물에만 깨끗하게 하고, 나의 욕망이 투영된 타자에게만 웃으며 인사하지 않기. 진정한 아름다움을 쓰레기에서와 용역분들로부터 배우기.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완전히 헌신하고 자기를 비우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성실함의 원형들이니까.

이제 그만 그곳을 나서려고 하는데, 내가 오늘 쓰고 버린 휴지, 종이컵, 빈 캔들이 시리게 쳐다보고 있었다. 분리수거도 꼼꼼하게 하지 않아서 뒤죽박죽된 그들의 시선은 내 가슴을 더욱 후려쳤다. 이제 정말 그분과 헤어지기 위해 찰나의 인사만 건네려고 하는데, 경건학기 아침 청소를 하면서 알게 된 모권사님의 푸념이 귓가에 계속 맴돈다. “분리수거가 절대 안돼요. 그래도 신학생들인데 좀 잘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갈릴리 예수님들은 겉으론 밝게 웃고 있지만, 속마음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눈 여겨 보지, 귀 기울여 듣지 못 했다. 아니, 일부러 안 하려고 했다. 너무 불편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배설물을 보관하고 있는 고마운 녀석들
▲ 쓰레기통 배설물을 보관하고 있는 고마운 녀석들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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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소비한 쓰레기를, 오늘 내가 생산한 유무형의 것들을 비교해볼 때,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기 마련. 나의 무의식적 관성과 일상생활을 점검하고 육적으로도 각성해서(선동적인 구호뿐인 영적 각성은 이제 그만...) 새로운 생활 양식을 시도하는 것이 필연. 깨끗함 뒤에 더러움이 존재하기는 당연. 안에 있지만 결코 안으로만 함몰되지 않고, 항상 내재적 외부를 사유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본연.


태그:#쓰레기장, #청소 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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