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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13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종부세에 대한 헌법소원ㆍ위헌법률심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13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종부세에 대한 헌법소원ㆍ위헌법률심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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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를 막으려고 도입됐던 종합부동산세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13일 헌법재판소가 부부합산 과세 조항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와 한나라당은 현행 종부세 부과 기준을 대폭 올리고(6억→9억) 세율 인하도 추진하고 있다. 이럴 경우 종부세를 내는 사람들은 거의 없게 된다.

이로써 그동안 부동산 투기를 막고, 주택가격 안정과 조세 형평성 등의 역할을 해온 종부세는 지난 2005년이후 4년만에 사실상 폐지 수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종부세의 무력화로 인해, 서울 강남 등의 부동산 부자들은 막대한 경제적 혜택을 얻게 됐다. 문제는 그동안 극소수 상위계층이 냈던 2조원이 넘는 세금을 대다수 중산·서민층이 대신 메워야 한다는 점이다. 또 종부세의 세수가 크게 줄어들게 되면서, 그만큼 지방재정도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가구 다주택자들의 세금 부담이 거의 없어지면서, 부동산 부자들의 아파트 투기에 따른 부동산 광풍이 재현될 가능성도 커지게 됐다.

종부세 486만원 내야했던 정씨, 이젠 '0'원... 냈던 것도 돌려받고

그렇다면, 이번 헌재 결정으로 누가 얼마나 혜택을 보게 될까.

일단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2단지 126.18㎡짜리 아파트를 보유한 정아무개씨의 경우. 정씨는 이 집을 아내와 함께 소유하고 있다. 이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11억6800만원이다.

정씨는 올해 종부세로 486만4800원을 내야했다. 내용은 이렇다. 부과기준(6억)에 과표적용률(80%)에 따라 정씨의 종부세 과세표준 금액은 5억6800만원이다. 이에 대한 종부세는 405만4000원. 여기에 농촌특별세 등을 포함하면 정씨의 종부세는 486만4800원이다.

지난 9월 정부와 여당은 종부세를 완화하면서, 올해 90%로 올리게 돼있던 과표 적용률을 80%로 묶어놨다.

하지만 이번 헌재 결정으로 정씨는 종부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부부 공동 소유로 돼 있기 때문에, 이를 둘로 나누게 되면 정씨와 부인이 각각 5억8400만원이 되고, 현행 부과기준인 6억원에 못 미치게 된다. 납부대상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정씨는 또 그동안 3년 넘게 냈던 종부세도 돌려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에서 세대별 합산 위헌에 따라 과거에 냈던 종부세를 돌려줄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막대한 경제적 이득이 생기게 된 셈이다.

정씨와 같은 종부세 대상자의 93.8%가 서울과 경기·인천에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 강남과 서초구 주민의 25%가 종부세 대상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종부세 과세 인원은 모두 37만9000세대다. 전체 세대의 2% 수준이다. 이 가운데 기준시가 9억원 이하의 주택을 가지고 있는 가구가 22만3000세대. 전체 종부세 납세자의 58.8%였다.

13일 오후 헌법재판소가 종부세법에 대해 일부 위헌 판결을 내린 가운데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재동 헌법재판소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위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종부세법의 입법목적에 대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났다며 취지를 살려나갈 것을 촉구했다.
 13일 오후 헌법재판소가 종부세법에 대해 일부 위헌 판결을 내린 가운데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재동 헌법재판소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위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종부세법의 입법목적에 대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났다며 취지를 살려나갈 것을 촉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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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남은 종부세는 '1% 세금'으로

지난 9월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대로 9억원으로 부과 기준을 올리게 되면 이들이 빠져 나간다. 2%의 부동산 부자들이 내던 세금에서 이젠 1%도 채 안 되는 '부자 중의 부자'만 내는 세금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마저 최근 경기 침체와 집값 하락으로 종부세 대상자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헌재 결정과 정부 개편안의 큰 수혜 계층은 현 정부의 실세들이다. 이미 지난 4월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내놓은 재산 내용을 보면, 고위공직자 105명 가운데 75명이 버블세븐 지역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이들 지역에 가장 재산이 많은 공직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75억1300만원)이었고 이영희 노동부 장관(29억800만원), 김경한 법무부 장관(24억6200만원),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21억2900만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21억400만원) 순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대상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세율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는 점이다. 현재는 과표 구간별로 1~3%인 세율이 0.5%~1%로 줄어든다. 여기에 60세 이상 1주택의 고령자는 추가로 세금 감면을 받는다. 또 종부세에 붙던 농특세도 폐지했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는 지난 9월 '슬픈 종부세'라는 글에서 "주택을 몇 채씩 갖고 있는 부자들에겐 과세 기준을 올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수십억 집부자들에게 세율 3%는 부담이지만, 1%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적었다.

이 교수는 "결국 이들이 노리는 것은 종부세의 세율 인하 부분"이라며 "(세율 인하는)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종부세의 중요한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등 52개 단체로 구성된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가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 조치 강행은 극소수특권층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며 지난달 15일 여의도역 인근에서 종부세 완화와 금산분리 강행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참여연대 등 52개 단체로 구성된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가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 조치 강행은 극소수특권층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며 지난달 15일 여의도역 인근에서 종부세 완화와 금산분리 강행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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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세금은 중산·서민층이 메우고, 투기 광풍 우려까지

결국 헌재의 이번 결정과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이 맞물리면서, 종부세는 사실상 폐지 수순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국회에 계류 중인 상속·증여세 대폭 인하, 양도소득세 완화와 함께 '강부자(강남부동산부자) 감세'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극소수 상위층이 짊어지던 세부담을 중산층과 서민층이 대신 메우게 될 공산이 크다.

정부가 지난 9월 내놓은 개편안대로라면, 사실상 종부세를 없애는 대신 줄어든 세금은 재산세를 늘려 메우는 방안이다. 정부는 종부세 과세표준 산정방식을 현행 공시가격에서 '공정시장가액(공시가격의 80%)'으로 바꾸고, 재산세도 이 기준에 따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재산세 과표액도 80%로 높아지게 된다.

다시 말해, 극소수 상위계층의 종부세 부담은 크게 줄고, 대다수 중산층의 재산세 부담만 커지게 되는 것이다.

또 종부세의 대폭 감소로 비수도권의 지방자치단체 재정에도 비상이 걸리게 됐다. 현재 정부가 거둬들인 종부세는 모두 지자체 예산(부동산 교부세)으로 나눠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향후 종부세 개편으로 그동안 2조2000억원에 달하는 지자체의 부동산 교부세는 줄어들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준구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종부세는 부동산 투기 억제와 주택가격 안정, 조세 형평성 제고 등 장점이 많은 제도였다"면서 "그럼에도 일부 집 부자들에 의한 왜곡된 여론으로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는 처지가 됐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이어 "정부안대로 종부세가 바뀌고 사실상 폐지되고 나면, 우리 조세제도의 효율성과 공평성에 심각한 후퇴가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도 "현재와 같은 경기침체로 인해, 헌재 결정과 정부의 종부세 죽이기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는 않을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앞으로 경기 회복기에 접어들면, 이번 결정과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맞물려 언제든 투기 광풍이 일어날 것이고, 부동산 불패 신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종부세, #부동산불패, #강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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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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