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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가 11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자서선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가 11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자서선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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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86)씨는 남편 김대중 전 대통령과 보낸 일생을 '동행'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첫 자서전의 제목을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이라고 붙인 건 그래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헌신이나 희생에 의존해서가 아닌 동지이자 동반자로서 살아온 두 사람의 삶이 응축된 단어다.

"우리의 삶은 한 마디로 '동행'... 남편 일에 간섭 안 해"

이씨는 자서전 <동행>의 출판기념회를 2시간 앞둔 11일 오후 4시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서로 의논하고 동행하면서 살아왔다"며 "그래서 (우리의 삶은) 한 마디로 '동행'"이라고 말했다.

자택 '문패'에 대한 자부심도 내비쳤다.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간 이 문패는 두 사람의 평등한 생활방식을 상징한다. 1963년 동교동으로 이사하면서부터였다.

이씨는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저희 집에는 문패가 나란히 내외 이름으로 돼 있다"며 "지금은 다른 집도 내외 문패를 단 곳이 있지만, 아마 우리 집이 제일 먼저일 것"이라고 말했다.

간담회 내내 김 전 대통령을 "남편"이라고 부른 점도 인상적이다. 흔히 전·현직을 가리지 않고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아내들은 남편을 가리켜 "우리 의원님은" "우리 시장님은" 등으로 부른다. 남편의 사회적 지위에 맞춘 호칭이다.

이씨는 '바람직한 영부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영부인의 역할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저는 남편이 국민의 투표를 통해서 선출됐기 때문에 남편을 따라 청와대에 들어간 것 뿐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인권이나 사회봉사 등에 치중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부인'이라는 호칭은 자신의 노력으로 달성한 사회적 지위가 아니므로 적절하지 않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양성평등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감금 중 접한 남편의 '사형선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가 11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자서선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가 11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자서선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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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첫 자서전을 내게 된 이유와 관련해선 "일제시대부터 80년 넘게 살았던 사람으로서 지금 젊은 분들이 알지 못하는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삶 자체가 현대사의 '최전선'에서 보낸 시간이었기 때문일 터다. 김 전 대통령이 붙였다는 책의 부제대로 실로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였다.

그가 회고하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김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던 1980년 9월 13일이었다. 이씨는 그 때의 괴로웠던 심경을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을 때 나는 외롭게 감금당해 있었습니다. 재판정에도 나가지 못하고 뉴스를 통해서 겨우 엄청난 사형선고를 들었습니다. 그 때가 제일 고통스러웠습니다."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는 김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탔을 때,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를 꼽았다.

"입법·사법·행정부 진출한 여성수 적어"... 박근혜에 대해선 말 아껴

여성운동가로서 현재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의 수준에 대해서는 "법적으로는 거의 동등한 위치에 있다"면서도 "입법·사법·행정부의 요직에 있는 여성의 수가 남성에 비해 너무 적다"고 꼬집었다.

정치와 여성운동이라는 양면을 다 경험한 그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여성정치인으로서 박 전 대표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국회에서 여성들이 참 활발하게 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히 기쁘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 수가 더 많으면 더 기쁠 것 같다, 그러나 제가 개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처지가 못된다"며 "(박 전 대표가) 더 잘하길 바라는 것 뿐이다"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출판기념회 인사말에서 그가 "우리 내외는 권력이 가장 미워한 대상"이었다고 말한 대목이 있다. 그 '권력' 중의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고, 박 전 대표는 그의 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박 전 대통령 사망 사건과 관련해 책에서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흉탄에 잃고 비탄에 빠져있을 자녀들이 안타까웠다"고 '측은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든을 훌쩍 넘어 아흔을 바라보는 그는 첫 자서전 출간에 설레어했다. 간담회를 찾은 기자들에게 "(첫 자서전의)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제 마음이 조금 들떠있는 편이다"라고 속내를 내비쳤다. 공보를 담당하는 최경환 비서관은 "퇴임 후는 물론 재임시절에도 이 여사님이 이렇게 큰 행사를 치르기는 처음"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며 큰소리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목소리에선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이 느껴졌다.

최 비서관이 자서전을 준비한 기간을 "4년"이라고 소개하자, "4년이 아니고 3년이다, 재작년부터 (준비했으)니까. 그런데 보도에 4년으로 다 돼있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 주기도 했다. 간담회를 마치면서는 기자들에게 "대단히 감사하다"고 우렁차게 인사했다.

"민주주의 위기에 처해... 안타깝다"
이희호씨, 출판기념회서 이명박 정부에 '쓴소리'

이희호씨는 11일 오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자서전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의 출판기념회에서 "최근 여기저기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에 쓴 소리를 던졌다.

이씨는 언론에 미리 공개한 인사말에서 "우리가 지금처럼 자유를 누리며 살고 세계에 자랑할만한 민주국가가 된 데에는 민주화 투쟁에서 희생하신 분들의 덕이다, 국민이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희생해온 과거를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또한 이씨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이미 '북한의 지도자를 직접 만나 현안을 해결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긴장관계에 있던 남북관계, 동북아의 평화·안보체제 같은 문제들이 오바마 시대와 더불어 빠른 속도로 발전돼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리 정부의 적절한 대응 조치를 주문했다.

자신의 삶은 책의 제목을 따 네가지 장면으로 압축해 말했다.

"첫째 장면은 남편이 오랜 야당 생활 끝에 국호에 들어갈 때까지 고난과 탄압과 빈곤을 이겨내야 했던 시절, 둘째 장면은 1971년 대선까지 약 8년 동안 국민적 지지 속에 화려한 야당 역할을 했던 시절, 셋째 장면은, 1972년 유신체제 후 납치, 투옥, 사형언도, 망명 등 고난의 절정 시대, 마지막 장면은 대통령이 되어 국가적 난제의 해결과 남북의 관계를 냉전시대에서 화해 협력의 시대로 물꼬를 튼 장면이다."


태그:#이희호, #김대중,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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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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