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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가 아니더라도 영월 주천에 있는 법흥사는 내가 자주 찾는 곳이다. 97년 영월 주천 요선정, 관란정을 거쳐 안동, 화순 몰염정, 소쇄원, 식영정, 면앙정, 송강정 등 정자순례의 첫 답사지로 처음 마주 대하였는데, 나중에서야 요선정의 마애여래좌상이 법흥사 수호불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야 대목(大木)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니 겨우 정자의 구조나 구경하고 요선암 아래 무릉리와 도원리에 걸쳐 흐르고 있는 주천강 지류의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무릉도원이 바로 이런 것인가 감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97년 정자답사길에 처음 들른 곳인데 당시 대목(大木)에 대한 관심으로 요선정만 관찰했지 마애불이 법흥사와 관련이 있는 줄 몰랐다. 펑퍼짐하게 가부좌 틀고 앉은 모습이 나이들며 커져만 가는 나의 궁둥이가 연상돼 피식 웃음을 머금는다.
▲ 요선암 마애불 97년 정자답사길에 처음 들른 곳인데 당시 대목(大木)에 대한 관심으로 요선정만 관찰했지 마애불이 법흥사와 관련이 있는 줄 몰랐다. 펑퍼짐하게 가부좌 틀고 앉은 모습이 나이들며 커져만 가는 나의 궁둥이가 연상돼 피식 웃음을 머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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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사로 가는 길은 주천면 요선암으로부터 시작한다. 오솔길을 잠시 올라가면 제일 먼저 요선암이 눈에 띄는데 바위모양이 펑퍼짐한 원앙을 닮았다. 석공은 원앙의 가슴부위에다 앉아있는 부처님을 조각해 놓았는데 넓직하게 퍼진 바위 하단이 너무나 아까왔는지 가부좌 틀고있는 하체를 바위에 꽉 차게 조각을 해놓아 마치 달마대사를 보는 것처럼 편안한 자세를 하고 있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궁뎅이만 커지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속으로 웃음이 난다.

마치 커다란 마제석기나 커다란 수석같은 돌들이 계곡에 깔려있다. 이런 지형은 청송 백석탄에도 있으나 완성도(?)는 여기가 나은 것 같다.
▲ 법흥천 무릉, 도원리 기암 마치 커다란 마제석기나 커다란 수석같은 돌들이 계곡에 깔려있다. 이런 지형은 청송 백석탄에도 있으나 완성도(?)는 여기가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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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법흥강(주천강 지류)이 흐르는 곳의 마을 이름은 무릉리와 도원리이다. 요선암을 내려와 작은 암자 아래로 내려가면 커다란 마제석기를 개울바닥에 깔아 놓은듯한 별세계가 펼쳐진다. 물놀이에 차가워진 몸을 눕히고 싶어지는 수석같은 바위들이 널려있어 왜 마을 이름이 무릉, 도원리인지 짐작케 하지만, 아쉬운 것은 수량(水量)이 적어 돌틈에 고인물이 있는 것이다.

사자산 자락을 병풍처럼 두른 법흥사. 비록 극락전은 단청을 하지 않았지만 화려하게 변하는 산의 모습에도 기품을 잃지 않고 조화된다.
▲ 극락전과 사자산 자락 사자산 자락을 병풍처럼 두른 법흥사. 비록 극락전은 단청을 하지 않았지만 화려하게 변하는 산의 모습에도 기품을 잃지 않고 조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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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계곡과 간간히 들어서있는 펜션들에 시선을 빼앗기며 십 여 킬로 올라가면 가고자하는 법흥사가 나온다. 금강문을 들어서자 왼쪽으로 범종각과 극락전이 눈에 띈다. 비록 단청을 하지 않고 지붕은 손질을 하지 않아 풀이 자라고 있으나, 기본이 되어 있으니 치장을 하지 않아도 기품이 죽지 않는다. 더군다나 징효대사 부도탑 뒤에서 바라보는 맛은 일품이다. 계절따라 변하는 사자산 자락을 배경으로 세월의 흐름을 애써 감추지 않는 극락전과 이끼 덮힌 부도탑이 중첩되는 모양은 안개 낀 날 신비감을 더 한다.

온만한 곡선의 언덕과 사자산 자락을 배경으로 끊어진 꽃담 사이로 보이는 추녀와 기와지붕. 집짓는 이가 의도했든 안 했든 한옥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하겠다.
▲ 약사전 온만한 곡선의 언덕과 사자산 자락을 배경으로 끊어진 꽃담 사이로 보이는 추녀와 기와지붕. 집짓는 이가 의도했든 안 했든 한옥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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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소나무가 우거진 길을 잠시 걷다 보면 부드러운 곡선의 언덕 위에 담으로 둘러싸인 약사전이 나오는데, 완만한 잔디 언덕의 곡선과 끊어진 담장 사이로 보이는 아름다운 약사전 추녀와 뒤로 사자산 바위가 이루어내는 그림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할 것이다.

적멸보궁 올라가는 길섶에 쌓인 낙엽
 적멸보궁 올라가는 길섶에 쌓인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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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수각(水閣)에 들러 물 한 모금 축이고 산길을 잠시 올라가면 넓은 마당에 뒤쪽으로 작은 동산과 함께 적멸보궁이 나타난다. 법흥사의 법(法)이 주는 딱딱함과 전혀 동떨어진 부드러움이 이렇게 곳곳에 널려 있다니. 동산에는 자장율사가 수도했다는 토굴과 사리탑이 바로 곁에 있다. 이렇게 완벽한 조경미를 자랑하는 것은 절이 그곳으로 찾아간 것인가? 산과 동산을 그곳으로 끌어온 것인가? 그 좋다는 달마산 절벽 일부를 잘라다 놓아 병풍 삼고 상원사 동산을 가져다 사리탑 모시고 그 앞에 비록 최근에 지어진 것이라고는 하지만 단아한 절집을 만들었으니 부처님의 마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편안한 구도가 나오지 못 했으리라.

해남 달마산 기암절벽을 잘라내어 병풍을 두르고 상원사 적멸보궁 동산을 가져다 사리탑을 모시고 단아한 절집을 지었으니 절이 그곳으로 간 것인가? 그곳이 절로 들어 온 것인가?
 해남 달마산 기암절벽을 잘라내어 병풍을 두르고 상원사 적멸보궁 동산을 가져다 사리탑을 모시고 단아한 절집을 지었으니 절이 그곳으로 간 것인가? 그곳이 절로 들어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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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앉아 있다 내려오며 다시 약사전과 극락전 앞에서 되삭임질을 하다가 주천으로 나온다. 마을로 들어가니 온통 정육도매센터이다. 고기굽는 냄새가 그럴 듯 하지만 아침에 휴게소에서 국수를 먹은지라 간단히 갈비탕이나 먹으려하니 고기를 사들고 오면 세팅비만 받는 구이집 뿐이다. 한켠에서는 주말장터가 열리고 있는데 주천(酒川)막걸리와 가마솥을 놓고 즉석에서 끓이는 사골국물이 무제한으로 공짜다. 종이컵에 국물과 막걸리를 받아들고 들이키니 탄산 맛이 나는 막걸리와 사골 국물 안주,  아!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연세56치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법흥사, #주천, #다하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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