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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당선에 대해 대한민국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중 보수언론이 보이는 자세가 흥미롭다. 사진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 당선에 대해 대한민국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중 보수언론이 보이는 자세가 흥미롭다. 사진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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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오바마의 당선이 지구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부시의 미국이 지구촌에 드리운 그림자가 그만큼 짙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오바마가 내걸고 있는 기치가 그만큼 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시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길을 가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미국이 과연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현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고질적인 의료보험 제도의 획기적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이 기업들의 완강한 로비로 결국 그 뜻을 접어야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부시의 골이 너무 깊었던 만큼 오바마에 대해 미국민들이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커 보인다. 그가 정부의 선거지원 자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으면서도 95% 이상이 소액기부인 후원금만으로 매케인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 단적인 사례다. 지구촌 역시 전반적으로는 오바마가 이끌 새로운 미국에 대해 그의 지지자들 못지 않은 큰 기대와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당선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쪽도 적지 않다. 한국의 상당수 언론들도 그렇다. 부시의 미국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한미동맹만을 강조해왔던 언론들일수록 더 그렇다. 그 불안한 시선이 표출되는 방식은 다채롭다.

<조선일보>, '한국정부 자신감 가질 필요 있다'

첫째는 주체적 대응형이다. 오바마의 당선이 한미관계나 북핵 문제 등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가면 된다는 관점이다.

<조선일보>는 7일 사설 '오바마와 북핵'에서 오바마의 대북 정책이 부시와는 크게 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바마 당선자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직접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당선자측 일각에서 북핵 검증 절차가 끝나기 전에 양국 이익 대표부를 먼저 설치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점 등을 그 사례로 들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으로서는 북한 핵에 관한 한 완전한 폐기 이외의 대안이 없다"고 못박았다. 미국의 북핵 해법이 종종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내에서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통미봉남 정책에 말려들어 꼼짝 못하고 있다는 공격을 받곤 했지만 정부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최종적 협력과 지원 없이 북핵 문제는 풀릴 수 없는 만큼, 한반도 문제의 최종 열쇠는 우리가 갖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오바마 정부가 북미 직접대화를 추진하다고 해서 "북핵이 당장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입지가 위협받는다고 볼 이유도 없다"고 보기도 했다.

그동안 한미동맹과 한미공조라면 이의를 달지 않았던 논조와는 사뭇 다르다. 어쨌든 한미공조를 가장 우선시해왔던 이명박 정부가 과연 <조선일보>의 주문처럼 그럴 수 있을 것인지 여부는 시간이 검증해줄 것이다.

<중앙일보>, 한미FTA, 재협상은 몰라도 추가협상은 가능?

두 번째로는 조언형, 혹은 설득형이다. 

오바마가 한국에 대해, 한반도 사정에 대해 뭔가 잘못 알고 있으니 이것을 잘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주로 한미FTA 문제에 관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7일자 사설 '한·미 경제환경 급변에 대비해야'라는 사설에서 한미 경제 공조를 강조하면서 한미FTA와 관련해 오바마의 "미국이 추가 협상은 몰라도 한미FTA에 대해 전면적인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오바마가 한국 경제에 대해 뭔가 오해하고 있다면 이를 바로잡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논리적인 설득도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며 오바마에 대한 설득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여기에서 <중앙일보>가 현실적으로 '추가협상'까지는 가능하다고 한 대목이 눈에 띈다.

<조선일보>의 7일자 또 다른 사설 '미국 새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이제 균형을 잡을 때다'라고 한 사설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한미FTA와 연계된 미 쇠고기 수입 문제로 정권이 무너질 위기를 겪었는데 "한국 정부가 미국 이익의 확대를 위한 FTA 재협상 요구에 마지못해 끌려가면 무슨 일이 터지겠느냐"고 물었다. 오바마 당선자는 "한미FTA 재협상을 밀어붙여 한국 정부를 막다른 데까지 몰고 가는 것이 과연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하는지를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고도 했다. 오바마 당선자가 "보호주의 유혹에 쉽게 무릎을 꿇어선 안된다"고도 했다.

이런 정도 되면 설득형이 아니라, 읍소형에 가깝다. <조선일보>가 북핵 문제에 대해 "한반도 문제의 최종 열쇠는 우리가 갖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주체적인 대응과는 영 딴판이다. 한국 정권의 안위를 위해 잘 생각해달라는 호소가 먹힐 지 의문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한국은 신흥시장 국가 중 미국의 자본시장 개방 논리를 순진하게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가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로 큰 피해를 보기도 했다"고도 했다.

그동안 <조선일보>부터 앞장서서 자본시장 개방을 적극 개방해야 하며, 앞으로도 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해왔던 것이 미국의 논리를 '순진하게' 받아들였던 '실수'라고 자인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미국에서 정부 개입은 당연하다, 단 한국은 규제가 많아 문제다

세 번째로는 오바마 내편 만들기 전략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과 오바마가 닮았다고 말한 것과 같은 식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중앙일보>는 앞서의 7일자 사설에서 "오바마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경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했다. 큰 차이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보다 적극적인 경제 공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내편 만들기 전략은 오바마의 그것과 한국의 그것은 다르다는 식의 논법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가령 <중앙일보>는 앞서의 사설에서 우리 사회 일각의 오바마 경제 노선 과대해석을 우려했다. 아마도 오바마 당선자의 중산층 위주 정책이나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대한 규제 및 정부의 역할 확대 등에 대한 정책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시장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정부 개입은 당연히 필요하고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다만 "그것이 시장을 적대시하고 파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또 규제완화와 감독 강화는 별개의 문제"라고도 했다. 한국은 규제가 너무 많아 문제지, 감독이 느슨해 탈이 난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그런데 미국발 금융위기는 감독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감독조차 할 수 없었던 파생금융상품 등 규제에 구멍이 뚫려 벌어진 일이라는 것은 세계가 이미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금융위기의 근본적 대책으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한 목소리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그 반대로 부동산 거품을 키울 가능성 큰, 부동산 관련 규제 등을 대폭 푸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 사설에서 오바마의 경제노선 과대해석과 관련해 "한 때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후유증을 앓았듯이, 오바마 경제노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사대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사회에서 누가 오바마의 경제노선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한 때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후유증을 앓았다"고 하는 것은 의외다. 지금까지 <중앙일보>가 줄곧 주장해왔던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주장이 아니었던가.

<동아일보>, 오바마가 통합정치 주문해서 한국 민주당과 다르다?

<동아일보> 7일자 사설 '오바마 민주당과 386민주당은 다르다'는 사설도 비슷하다. 미국의 민주당과 한국의 민주당을 같다고 할 이유도, 그것을 굳이 비교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동아일보>가 굳이 그런 비교를 시도한 것 자체가 그렇다.

미국 민주당과 한국 민주당은 당연히 다르다. 386정치인들이 "오바마도 386"이라며 오바마 효과의 덕을 보려고 나서는 꼴은 차라리 희극에 가깝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비교 근거다.

<동아일보>가 이 사설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로 지적한 것은 오바마가 "편가르기가 아니라 통합의 정치를 호소했다"는 점일 것이다. <동아일보>는 오바마가 선거과정에서 '하나의 미국'을 강조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진보적인 정책을 보수적인 논리로 말해 백인과 보수적인 세력의 저항감을 사지 않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당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치는 상대적이다. 지금 한국에서 편가르기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은 과연 누구인가? 과거 정권의 정책은 거의 모두 백지화하거나 부정하면서 정치적인 분열과 대립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집권세력 아닌가. 거기에 분위기를 잡고 앞장 선 언론은 또 어떤 언론들인가. 물론 노무현 정권을 비롯해 현재 민주당의 책임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때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과연 <동아일보>가 말하는 그런 통합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것인지 의문이다.

<동아일보>의 이 사설은 어쨌든 중요한 정치적 덕목을 강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민주당과 한국의 민주당을 비교하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오바마는 미국의 정치 풍토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예외적인 통합적 리더십으로 미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했다. 그 점을 간과한 채 "오바마 민주당과 386 민주당은 다르다"는 식의 협소한 논지를 펴게 되면 '못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은 아닌가라는 의심을 사게 된다.

상황이 달라지면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언론이라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한미동맹을 최우선적으로 중시해왔던 신문들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이들 신문들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미국과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면 한미동맹을 해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이들 신문들이 앞으로 오바마가 이끄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어떤 목소리를 낼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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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바마, #한미관계, #보수언론,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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