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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6일 국방부 불온도서 지침에 대응하기 위해 해당 출판사 관계자들이 최초로 회의를 열었다. 장소는 후마니타스 출판사
 지난 8월 6일 국방부 불온도서 지침에 대응하기 위해 해당 출판사 관계자들이 최초로 회의를 열었다. 장소는 후마니타스 출판사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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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지침 불온도서 파문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방부가 올 7월 19일 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각 군에 내린 '군내 불온서적 차단대책 강구(지시)'를 내려보낸지 18일 만인 8월 6일 해당 출판사들은 긴급 회의를 열고, 다음날 해당 출판사 공동 명의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국방부 불온도서 지침 이후 <나쁜 사마리아인> 등 해당 도서를 펴낸 출판사는 때 아닌 출판고를 올렸으나,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시작한 '불온도서 안티이벤트'와 독자들의 조롱 등 불온도서에 대한 담론이 '발랄'하게 흘러가는 부분에 대해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출판사들은 국방부의 불온도서 지정이 단순히 조롱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수십 년 전에 이미 자취를 감췄다고 생각한 '판금'의 추억이 2008년에 다시 떠돌아다니는 현실에 우려를 표명했다. 아울러 국가의 부당한 지침에 맞서 출판사가 필자와 독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출판사 공동성명에서는 국방부의 지침이 전근대적일 뿐만 아니라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며, 심각한 명예훼손에 해당함을 엄중히 경고하였고 아래의 요구사항을 적시했다.

하나, '불온서적 목록'이 작성된 자세한 경위와 그 선정 기준을 공개하고, 학문 사상의 자유 및 출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불온서적 목록' 작성을 즉각 중단·철회하라.
하나, 현재 '불온서적 목록'에 선정된 책의 저자와 출판사에 공식 사과하라.
하나, '불온서적 목록'을 작성함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들에게 공식 사과하라.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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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공동 성명에 대해서 국방부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불온도서 파문은 스캔들로 묻히는가 싶었다. 그러나 한아무개 소령(사법시험 45회)·박아무개 대위(사시 47회) 등 군 법무관 7명은 군인들이 불온서적을 소지하지 못하게 한 군인사법과 군인복무규율, 군내 불온서적 차단대책 강구 지시 등이 군인의 행복추구권,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10월 22일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이 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국방부는 현역 군 법무관들이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은 군 사상 초유의 '항명'으로 받아들여 징계절차를 밟겠다는 태도다.  

한편 이상희 국방장관은 지난 8일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장병 정신 전력에 이롭지 않다면 계속할 것"이라며 불온서적 지정 방침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23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도 이상희 장관은 "장관으로서는 군 기강 확립을 위해 주도적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군 법무관들이 집단적 행동을 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사상의 자유라는 기본권보다는 집단적 '항명'이라는 점을 강조해 '징계'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출판사들은 왜 그때 '소송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나?

불온도서 파문이 한창일 때 해당 출판사의 대책회의에 동석해 진행상황을 지켜온 바로는 출판사들이 이미 소송 절차를 논의하고 있었다. 8월 7일 성명서 작성 때에도 '소송'을 명시하는 문제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8월 7일 성명서에도, 그 후의 대책회의에서도 법적 소송 부분은 당장 시행하지 않기로 협의했다.

대표적인 이유로는 국방부의 명백한 견해가 전해지지 않았으며, 불온도서 지정 문제는 엄연히 문화적인 담론이며 그것이 법률적 담론으로 넘어가면 문제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예컨대 판사와 변호사, 검사가 법리논쟁을 벌일 때는 출판사가 애초에 담았던 기본권 문제라든지 사상의 자유보다는 그야말로 '형이하학'적인 쟁점이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발랄한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출판사는 문화적 사유의 보고이며 상상력의 저장소이기 때문에 법률적 논의를 서두르면 상상력의 행동 반경을 좁힐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출판사대책회의에서 법률적인 논의를 뒤로 미룬 것이다.

하지만 이상희 국방장관의 국정감사 발언을 통해 국방부의 태도를 간접적이나마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고, 헌법소원에 대처하는 국방부의 모습은 8월 7일 출판사가 제기했던 문제에 대해서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출판사가 8월 7일과 그 이후가 아니라 10월 27일이 되어서야 소송 절차에 착수하게 된 이유다.

'실천문학', '후마니타스', '철수와 영희', '돌베개' 등 11개 출판사와 한홍구·곽동기·정태인·홍세화씨 등 저자 11명은 이날 "국방부가 불온서적 목록을 작성해 3군에 금서조치를 한 것은 헌법상 언론·출판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했고 저자와 출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출판사와 필자들이 고소장에 적시한 손해배상 책임 근거는 아래와 같다.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21조 1항)
▲'언론ㆍ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ㆍ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헌법 제21조 2항)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22조 제1항)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헌법 제17조)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민법 제750조)
▲'타인의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민법 제751)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민법 제764조)
▲기타 형법 제309조에 규정된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또는 형법 제307조에 규정된 '명예훼손'

위의 근거는 법무관들이 10월 22일 헌법소원을 제기한 내용과 일치하고 있다. 철수와영희 출판사 박정훈 대표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위법성을 가려내기 위해 최근 헌법소원을 낸 군 법무관들과도 연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이번 소송이 위헌소송과 긴밀한 관련이 있으며 앞으로도 긴밀한 공조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위 출판사와 저자들은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이 ▲ 헌법상 보장하는 언론, 출판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 위 도서 등을 저술하고 출판한 저자와 출판사의 명예를 훼손했으므로, 이를 시정하기 위해 국방부의 상급 기관인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 중앙일간지 1면에 사과 광고를 실을 것과 ▲ 출판사와 저자들에게 각 500만원에서 1천만원씩 손해 배상할 것을 요구키로 했다.

고소장에 명시된 출판사와 필자, 해당도서에 대한 목록표
 고소장에 명시된 출판사와 필자, 해당도서에 대한 목록표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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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다음블로거뉴스에도 올렸습니다.



태그:#불온도서, #국방부 불온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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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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