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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윤석남전 입구에 전시홍보판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윤석남전 입구에 전시홍보판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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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사람과 사람없이(With or Without Person)' 윤석남(1939~) 전이 대학로 아르코미술관(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11월 9일까지 열린다. 윤석남은 한국페미니즘미술의 1세대로 1997년에는 페미니즘계간지 <이프(IF)> 발행인을 맡기도 했다. 그만큼 이 분야에서 역할이 컸다.

우선 윤석남의 작품을 보니 그의 대가다운 면모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전시다. 스케일도 크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는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신(短身)이지만 남자작가들보다 더 강인해 보인다.

그의 주제는 '여성 혹은 어머니의 위대한 힘'이다. 그리고 여성의 입장에서 이 사회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다보니 할 말이 많다. 그의 작품이 설화적 요소가 많은 건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린 주로 남자들이 한 이야기(history)를 듣고 살았지만 이번에는 여자들이 하는 이야기(herstory)를 들어야 할 차례다.

한국에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우리사회가 이런 작가에게 뭐해준 것이 있는가? 무관심 속에서 자생적으로 출현했으니 오히려 미안하다. 옛 여인들이 궁핍과 구박 속에서도 가정과 나라를 지켰듯, 한국여성과 어머니는 사회적 냉대와 멸시 속에서도 이런 '자애의 미술'을 낳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성화(聖化)를 이룬 것이다.

작가 윤석남(1939~)은 누구인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윤석남선생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윤석남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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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만주 봉천에서 출생

1975년 시인 박두진에게 붓글씨사사(4년간)
1982년 첫 개인전(미술회관)
1983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수학   
1984년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수학
1986년 '반에서 하나로' 기념비적인 전시
1987년 '여성과 현실'전
1993년 '어머니의 눈' HerstoryⅡ 전시회
1994년 '여성, 그 다름과 힘'전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특별전 참가
1996년 제8회 이중섭미술상 수상
1997년 국무총리상 수상. '빛의 파종'전
1998년 타이베이비엔날레 '염원의 장'전
1999년 '인권선언 50주년 기념'전
2000년 광주비엔날레 '인+간'전
2001년 '가족'전(서울시립미술관)
2002년 제2회 여성미술제(서울여성플라자)
2003년 개인전 '늘어나다'(일민미술관)
2004년 윤석남개인전(열린화랑, 부산)
2005년 '광복 60주년, 한국미술 100년'전
2006년 '여성, 일, 미술'전(이대박물관)
2008년 윤석남'1,025 개인전'(아르코미술관)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퀸즈랜드 아트갤러리, 토리노 벨란미술협회, 후쿠오카미술관, 도쿠지마 현립미술관 등등

윤석남은 여잔데 남자이름이 붙었다. 아들을 기대했다가 딸을 낳아서 그랬나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우리사회는 이렇게 남녀차별이 곳곳에 서려있다.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난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이번 전에는 작가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 길에 버려진 유기견에까지 적용된 셈이다.

그는 작가였던 부친을 닮아 학창시절 부통령상을 탈 정도로 글도 잘 썼으나 역시 화가가 꿈이었다. 16살에 부친이 돌아가시자 고교졸업 후 바로 취직한다. 그러다 성대영문과에 입학했으나 곧 포기한다. 40에 늦깎이화가로 데뷔하여 뉴욕 프랫 인스티튜드 등에서도 공부한다. 그는 이제 나혜석을 잇는 한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작가가 되었다.

그는 나이가 70인데도 10대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미인이 된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작가적 정체성이 확실하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작가이기에 가능한가보다.

세계경제포럼, 2008년 한국남녀평등지수 세계97위

2층 제2전시장 '유기견 1025' '건강하고 활기찬 개'편
 2층 제2전시장 '유기견 1025' '건강하고 활기찬 개'편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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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이 왜 그의 작품에 등장했을까? 그건 신문에서 어느 노부인이 1025마리의 버려진 개를 사심 없이 데려다 키운다는 기사에 감동하여 작품을 하게 되었단다. 본래부터 생명이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관심을 두었던 작가로서는 익숙한 주제다.

좋은 땐 데려다 키우고도 필요 없으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동물을 작가는 이를 모성의 품으로 안으려 한 것이다. '자연과 동물과 인간의 하나'라는 에코페미니즘(환경여성주의)에서 보면 이건 생명에 대한 배반이자 모독이다. 이번 작품을 하다 보니 작가자신도 마치 이 세상에서 버려진 존재처럼 느껴진다고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2008년 한국의 남녀평등지수는 세계 97위다. 그렇다면 여기서 개는 2급으로 취급받는 한국여성을 상징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도 개처럼 불쌍하다는 연민의 정이 발동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다.

'1205 유기견' 나무·아크릴릭 2008. 2층 전시실 장면을 더 가까이서 다른 방향에서 찍은 것
 '1205 유기견' 나무·아크릴릭 2008. 2층 전시실 장면을 더 가까이서 다른 방향에서 찍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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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업은 무려 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나무를 사들여 방부처리를 하고 두 달 후 작업실로 가져와 나무판에 드로잉을 하고, 나무를 자른 후 그릴 수 있도록 표면을 갈고 참으로 정성과 손길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초기엔 개 그림이 잘 안 돼 애도 먹었단다.

개의 눈빛이 정말 살아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개의 표정이 안쓰럽기도 하다. 진돗개, 알래스카 늑대개, 그레이하운드 등 종류도 다양하고 개마다 특색이 있다. 자연인 개가 인간을 보고 뭐라고 말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하여간 작가는 남을 돌보고 배려하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힘을 믿기에 그림으로 이렇게 죽은 개들도 살려낼 수 있지 않은가.

윤석남의 방에는 여성의 가시밭길 흔적이 고스란히

'윤석남의 방' 내부모습
 '윤석남의 방' 내부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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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견 1025' 설치작품 한쪽 켠에 '윤석남의 방'이 있다. 같이 들어가 보자. 여기엔 여자들은 걸어온 가시밭길이 책이나 설치미술 작품을 통해서 계시된다. 한국의 여성사는 이중고·삼중고를 치르는 수난사 중 수난사였다. 그러나 거기엔 항상 꿈이 서려있다.  

그가 쓴 책과 그와 관련된 책 그리고 이전 작품들이 슬라이드로 소개된다. 그의 작품 중 어머니를 빼면 뭔가 남나. 주제의 태반은 여성이다. 그리고 그가 뉴욕에 있을 때 공감한 여성작가는 바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다. 그는 현역으로 세계10대작가에 속한다. 이 방은 그런 분위기다. 주제에서 두 작가는 같으나 표현방식은 다르다.

전시장 한 코너에 있는 '윤석남의 방' 거기에서 그의 작품들이 슬라이드로 소개된다.
 전시장 한 코너에 있는 '윤석남의 방' 거기에서 그의 작품들이 슬라이드로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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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여자의 팔이 왜 긴가? 일을 너무해 그 길이가 늘어난 것인가. 또 그 옆에 여자는 왜 대청마루에 쓰러져 있는가? 여성의 신체부위가 잘리고 흩어진 건 일종의 해체작업으로 고단한 한국여성의 일상을 형상화한 것이리라. 그런 구성력과 상상력이 돋보인다. 또한 캔버스대신 빨래판 같은 나무를 쓰는 점은 특이하다.

작가의 소망이 그렇게 큰 것은 아닐 것이다. 작은 생명을 소중히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살아 숨 쉬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한편 모성도 사유화되고 신화화되면 왜곡될 수 있기에 사회적으로 나눠져야 함을 그의 글을 통해 일깨워준다.

'윤석남의 방'에는  전시된 도록 및 자료 책자가 많다. 왼쪽은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윤석남의 방'에는 전시된 도록 및 자료 책자가 많다. 왼쪽은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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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도록에 나오는 여성과 어머니들은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보이지 않게 기여한 사람들이나 그들의 희생과 헌신은 묻히거나 가려지기 쉽다. 작가는 이런 정황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우리에게 쪽 펴 보인다.

윤석남이 공저인 <김승희·윤석남의 여성이야기>의 글 중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나는 119소방대원 같은 삶을 살아간다. 특히나 한국적 문화에서 가정과 자기 일을 가진 겸직여성들은 누구나 119소방대원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단 하루도 사이렌소리를 듣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아프거나 바쁘거나' 중에서)

윤석남의 방 입구에 설치된 '핑크 룸' 시리즈. 뉴욕구겐하임에서 열린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윤석남의 방 입구에 설치된 '핑크 룸' 시리즈. 뉴욕구겐하임에서 열린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 김형순 Louise Bourge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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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룸' 가시방석 시리즈는 중산층여성의 불안한 내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이는 남성이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편하게 해 주는 것도 오히려 가시방석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에선 상처가 가시처럼 돋아나 여성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가 보다.

이런 작품에는 세계 여성 누구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 그림이 만든 상황이 얼핏 쉬워 보여도 실은 찾기 힘든 착상이다. 그만의 독창성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게 빛난다.

윤석남은 좀 그로테스크한 부르주아의 대표작 '거미(엄마)'에서 부드러운 모성을 느낀다고 말한다. 부르주아는 1982년에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지난 9월에는 97세 나이로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특별전을 열었다. 윤석남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한국사회는 관용과 인권과 행복지수는 과연 몇 점일까?

전시장 1층 '유기견 1025'  '병들고 아픈 개'편
 전시장 1층 '유기견 1025' '병들고 아픈 개'편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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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하1층에 전시된 '병들고 아픈 개'편을 보자. 인간처럼 감정을 가진 개도 사람에게는 좋은 벗이 되려했을 텐데 여기선 침울하고 슬픈 표정이다. 결국 그 책임은 사람에게 있는 것 아닌가. 작가는 생명체이고 반려동물인 개가 버려지는 것에 극구 반대한다.

여기 병들고 아픈 개는 이 세상에서 아직도 버림받고 무시당하는 여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여성이 행복해야 또한 개도 행복해야 진정 행복한 사회, 아름다운 세상이 올 것이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포장된 허상이 깨지고 진정한 모성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작가가 그림을 통해 유기견 1025마리를 통째로 살려낼 수 있다는 건 여성의 자애와 연민, 모심(侍)과 살림, 생명과 평화의 힘이 그만큼 크고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사실 수난과 굴절의 5천년 우리역사를 지켜온 것이 바로 그들이 아닌가.

끝으로 이런 작품을 보니 한국사회에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말 힘없고 약한 존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한국사회의 관용과 인권과 행복지수는 몇 점이나 되고 세계에서 몇 등이나 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아르코미술관 종로구 대학로 100 / 02)760-4724 / http://arkoartcenter.or.kr
전시디자인: 최정화 그래픽디자인: 박우혁 진달래 전시기간: 2008년 11월 9일(일)
전시관람: 오전11시~오후8시(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설명: 주중(오후 2시, 4시), 주말(오후 2시, 4시, 6시)
입장료 2000원ㅣ일반 (19세-64세) 1000원ㅣ할인(18세 이하) 50%할인ㅣ20인 이상의 단체
특강ㅣ지노 가오리교수 추모강연 강사: 윤석남 10월 18일(오후2시) 아르코미술관 3층에서



태그:#윤석남, #루이즈 부르주아, #에코페미니즘, #페미니스트,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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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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