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칼날 같은 자갈을 지나 비 젖은 도로에 몸을 놓다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문규현 신부와 수경스님이 21일째를 맞았다. 24일 두 성직자가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전북 임실군 오수면 17번 국도는 굵은 빗줄기로 질척였다.
ⓒ 김호중

관련영상보기


#1. 고행

24일은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오체투지 순례를 시작한 지 꼭 21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그동안 두 사람은 약 60km에 이르는 길고 험한 길을 세 걸음 걷고 이마와 양 팔꿈치, 양 무릎을 온 땅에 밀착시키는 오체투지 고행의 순례를 해왔습니다.

오체투지 순례라는 극한의 고행(苦行), 누구도 아닌 자신들이 선택하고 시작한 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뒤를 말없이 따르는 이들도, 우연히 스치다 차를 멈추는 이들도 그들의 고행을 맘 편하게 바라보진 못합니다.

비가 내리는 17번 국도를 오체투지를 하며 기어가고 있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 고행... 비가 내리는 17번 국도를 오체투지를 하며 기어가고 있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그들을 고행의 순례로 내몬 것은 자신이 속한 부조리한 세상이란 것을 아는 탓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고행을 시작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들이 땅바닥에 툭 온 몸을 내던지며 '우, 우'하고 쏟아내는 신음소리는 죽비가 되어 우리의 가슴을 후벼 팝니다. 그저 바라볼 뿐인 안타까움은 간혹 눈물이 되기도 하고, 깊은 한숨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이라도 함께 걸을 수 있다면, 마음이라도 함께 온 몸을 내던질 수 있다면…. 하늘에서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아스팔트는 이미 흥건히 젖었습니다. 빗물 흐르는 아스팔트에 두 사람이 다시 온 몸을 내던집니다.

익어가며 고개 숙이는 벼보다 낮게 바닥을 기어가는 두 사람.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다시 터져 나오지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사납게 스치는 자동차 굉음 소리가 그들의 신음소리마저 뭉개버리는 탓입니다. 가슴에 무거운 돌 하나 들어옵니다.

#2. 휴식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아스팔트 위에서 잠시 쉬고 있다.
▲ 휴식...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아스팔트 위에서 잠시 쉬고 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말이 쉬워 오체투지지 지켜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사람이 할 짓이 못 돼'라고 말합니다. 이마는 수건을 둘러도 쉬지 않고 땅을 찧어대는 탓에 얼얼한 기운이 빠지질 않습니다. 온 몸을 땅에 내던지는 탓에 가슴팍은 제일 먼저 거친 아스팔트를 쓰리게 스칩니다. 장갑을 끼어봤자 손바닥은 약한 화상을 입을 위험에 항상 놓여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기다보니 많이 가도 하루 십리(4km) 안팎입니다. 기다 쉬다를 반복한다는 게 맞을 겁니다. 특히 오늘처럼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땀과 빗물이 옷은 물론 속살에까지 스며들어 몸은 천근만근이 되고 마니 얼마나 힘들지는 속된 표현으로 '안 봐도 비디오'지요.

오체투지 순례의 진행을 맡고 있는 명호씨는 "쉴 때 안마나 지압을 해드리고도 싶지만 너무 힘들고 지친 상태라 그 자체가 아픔이 돼서 못한다"며 "그냥 살살 몇 번 주물러 드리고만 만다"고 안타까워합니다.

비 내리는 아스팔트에 털썩 두 사람이 앉습니다. 비와 땀에 젖은 옷을 짜니 물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옷이 새털처럼 가벼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두 사람이 기도하는대로 생명과 평화, 사람을 살리는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해봅니다.

#3. 손님

강의차 지방으로 향하고 있던 노회찬 전 의원이 순례단을 발견하고 차를 돌려 찾아왔다.
▲ 손님... 강의차 지방으로 향하고 있던 노회찬 전 의원이 순례단을 발견하고 차를 돌려 찾아왔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오체투지 순례를 떠난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에겐 거의 매일같이 손님이 찾아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두 사람의 뒤를 따라 하루종일 걷기도 하구요, 어떤 이들은 우연히 지나가다 순례 행렬을 보고선 합류하기도 합니다.

전북 임실 오수에 사는 황일주(69)씨는 순례 행렬이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이웃주민 세 분과 함께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을 만나러 왔다고 합니다. 황씨는 "현 정권이 가진 자들을 위한 정치만 해서 우리같은 농민들은 더 살기 힘들어졌다"며 "두 분이 힘드시겠지만 건강하게 순례를 마치시길 바란다"며 빗길을 걸어갑니다.

전북 장수에서 다섯 살 난 아들과 함께 온 허욱(42)씨는 지리산댐 반대를 외치며 수경 스님과 함께 도보순례를 한 인연이 있습니다. 허씨는 "우리 지역을 지나신다고 하는데 안 뵙고 외면하기 어려워 참가했다"면서 "너무 큰 고행길이지만 당신들에게 편안한 길이길 바라고 무사히 잘 마쳤으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남겼습니다.

강영희씨는 전주 평화동 성당 신도 7명과 함께 왔습니다. 강씨는 "두 분이 오체투지하는 모습을 마음이 아파 계속 지켜볼 수가 없다"며 "뜻한 바를 빨리 이뤄서 두 분의 고행의 순례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합니다.

빗길을 뚫고 승용차 한 대가 황급히 유턴해서 순례단을 따라잡습니다. 누군가 내리는데 노회찬 전 의원입니다. 전교조 교사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기 위해 남원으로 가다가 순례단을 발견하고서 황급히 차를 돌렸다고 합니다.

노 전 의원은 "우리를 대신해서 두 분이 저렇게 몸으로 고통을 감수하고 계신다"면서 "두 분이 건강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체투지가 필요 없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고선 한동안 순례단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었습니다.  

#4. 기약

언젠가 두 성직자는 다시 순례의 길을 떠날 것이다. 그때는 '떠남' 그 자체로 평온하시길....
▲ 기약... 언젠가 두 성직자는 다시 순례의 길을 떠날 것이다. 그때는 '떠남' 그 자체로 평온하시길....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빗줄기는 갈수록 굵어졌지만 두 사람은 예정했던 구간에 이를 때까지 오체투지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후 5시 5분, 전북 임실군 오수면 17번 국도 북서방향에서 오체투지 순례 21일째 일정이 마무리 됩니다.

하루를 함께 했던 이들은 진한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고, 두 성직자와 그들을 돕는 이들만 남아 저녁 잠자리를 준비합니다. 다시 떠날 길이 남아있는 이들만 길 위에 다시 남겨진 것입니다.

오체투지 순례를 하면서 두 사람은 특별한 얘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간혹 순례를 돕는 이들의 기운을 돋워주기 위해 썰렁한 농담 조각 몇 개 흘리는 게 고작이지요.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온 몸으로 너무 많은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귀가 열린 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을 테지요.

아직은 걸어온 길보다는 걸어 가야할 길이 훨씬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200km라는 먼 길 중 벌써 60km를 와버린 것처럼 언젠가는 길의 끝이 보이겠지요. 그 길이 끝나면 다시 두 사람은 새로운 길을 떠날지도 모릅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때도 위정자는 부자들을 위해 세금을 낮추고, 반대 목소리를 냈다고 아기 엄마를 소환하고, 색 바랜 붉은 페인트를 들고 나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색칠을 할까요?

이 길 끝나 두 성직자가 다시 순례를 떠나는 그날엔 떠남 그 자체로 평온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때 배웅하는 우리의 마음도 그 자체로 홀가분하길 소망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너른 마음으로 우리는 서로를 따습게 안아줄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기약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습니다. 어차피 그 모든 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몸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맨 가슴으로 거친 아스팔트를 밀고 앞으로 나아가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처럼 말입니다.  


태그:#오체투지,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