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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항 대하축제에서 먹은 대하소금구이
▲ 대하 남당항 대하축제에서 먹은 대하소금구이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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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이가 영리합니다. 웬만한 일꾼보다 일을 더 잘하네요?”
“맞어유, 아줌마 한 명 쓰는 것보다 더 나아유. 오늘도 학교 안 가는 날이라 이리 나와 돕지유.”

하얀 원피스를 입고 말 없이 음식 나르기, 상에 비닐깔개 펴기, 음료수병 걷어 지정된 장소에 가져다 놓기, 음식물 쓰레기 치우기, 수저 놓기, 생수 놓기…. 식당에서 홀서빙 아줌마들이 하는 일을 다 하는 조용한 아이.

그를 보고 내가 어머니인 듯한 주인아줌마에게 칭찬을 하니 주인아줌마도 맞장구를 친다. 내가 대하축제에 가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 아이에 대한 고운 추억이다. 요새 그런 아이가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남의 아이라면 어린이 학대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상항이었다. 하여튼 차분한 그 아이 얼굴이 지금도 어른거린다.

달밤에 만든 추억,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대하 맛

너무 성의없이 간 것인가. 너무 성의없는 대하를 먹고 왔다. 올해로 열세번째인 남당항 대하축제는 내게 그야말로 심드렁함 그 자체다. 물론 아내와 집을 나선 것은 대하도 먹고 솔잎도 따고자 하는 이유였다. 남당항 쪽으로 가긴 했지만 대하축제에 대한 대단한 기대가 없기는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한다 싶었다. 대하를 먹으면서 내내 ‘이건 아니잖아’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이미 지난 9일부터 대하축제 중이다. 오는 11월 2일까지 자그마치 두 달 동안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 일원에서 축제가 벌어진다. 내가 간 날도 주차장에 자동차가 가득했는데, 어째 싸늘한 기분이 들었을까.

아직 여름 날씨여서 한낮에는 찌는 듯하다. 그런데 마음이 싸늘하다. ‘대하와 바다 빛의 만남’이란 주제를 쓴 현수막만 덩그러니 저만치 걸려있다. 대하는 예로부터 고단백 스태미나 식품으로, 풍부한 키틴과 칼슘은 항암효과와 골다공증 예방에도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항상 요맘때가 되면 한번쯤은 서해안으로 가 대하를 먹는 게 나의 작은 행복한 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올해의 대하축제는 영 아니다. 20여년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추석연휴를 기해 서해안 백사장 해수욕장에 갔다가 진한 추억을 만든 이후 줄곧 그래왔다.

봉고차를 몰고 간 백사장 해수욕장, 요새는 잘 갖추어진 시설들이 들어섰지만 그때만 해도 백사장만 덩그러니 있고 허허벌판에 민가도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만류에도 차를 몰고 모래밭으로 들어갔다 빠지고 말았다. 온 가족이 땀을 흘리며 몇 시간을 달밤에 체조를 한 후에 가까스로 모래무덤에서 나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이튿날이었던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대하를 구워먹었던 추억, 그 대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해마다 찾는데 올해는 너무 실망만 가득 안고 돌아와야 했다.

양식 대하입니다.
▲ 대하 양식 대하입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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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대하입니다. 양식대하보다는 씨알이 굵고 값도 비싸지만 양식대하만큼 싱싱하지는 않습니다.
▲ 대하 자연산 대하입니다. 양식대하보다는 씨알이 굵고 값도 비싸지만 양식대하만큼 싱싱하지는 않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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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맛이 변한 것은 아닐 텐데

대하 1kg을 시켜 네 식구가 정말 푸짐하게 구워먹었다. 따라나오는 반찬도 맛있었고, 더 먹으라며 내놓았던 전어구이, 따듯한 밥, 그때 정말 그런 정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항상 그런 넉넉함을 기대하며 서해안으로 가지만 해마다 점점 그 넉넉함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올해는 정점을 찍는 듯. 어느 저울에 쟀는지 양이 적기로 호가 난 우리 둘이 먹고도 모자란다. 여북하면 아내가 내게 귓속말을 한다. “저울에 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볼 걸 그랬어요.” 하는 수 없이 5000원짜리 맛없는 칼국수로 배를 채워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술을 안 먹는 우리로서는 더욱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음식점을 나오면서 왜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밖엔 안 들까.

대하 맛은 그대로다. 그러나 그 양과 인심은 예전의 것이 아니다. 물론 내가 들른 집만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매해 들르며 느끼는 것은 점점 인심이 예전만 못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비단 내가 들른 집만 그런 것은 아니란 결론이다.

실은 대하를 먹고 나올 때 살아 움직이는 꽃게를 사려고 들어갈 때 값을 묻기도 했다. 하지만 나올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주차장 옆 무대에서는 시끄러운 트로트 가락이 울려 퍼진다. 가까이 다가가 봤지만 관객은 10명도 안 되는 초라한 무대였고, 사회자만 입심을 자랑하고 있다.

그 곁으로 ‘국화 전시장’이라고 현수막이 있기에 갔더니 국화는 아직 피지도 않은 채였다. 무엇 하나 축제다운 구석이 없다. 며칠 전 인삼을 사러 갔던 금산의 인삼축제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축제였다. ‘차라리 축제를 하지 말고 장사를 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산의 인삼축제는 인삼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남당항의 대하축제는 축제 전보다 대하 값이 더 비싸다. 축제 전에는 양식대하가 2만5000원하던 것이 3만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물론 축제기간이 더해갈수록 더욱 비싸다고 한다. 그것은 씨알이 굵어지기 때문이라고 한 상인은 말한다. 그러나 그런 말은 축제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고 만다.

수족관에서 노니는 양식대하의 모습입니다.
▲ 대하 수족관에서 노니는 양식대하의 모습입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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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들 뒤편으로 하늘과 맞닿은 남당항의 가을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 남당항 상가들 뒤편으로 하늘과 맞닿은 남당항의 가을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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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솔잎도 채취하지 못하고

불행한 일은 쌍으로 몰려오는 법? 쓴 열무김치에 서비스라고 내온 구운 전어 두 마리, 그리고 내가 그리도 기대했던 대하구이. 서비스나 양은 맘에 안 들지만, 그럭저럭 먹어볼까 하는 찰라에 주인 아저씨가 엎은 초간장이 아내의 바지로 흘러내린다.

이런 걸 두고 뭐라 말해야 할지. 그렇게 우리의 대하축제 현장의 소회는 끝이 났다. 이젠 ‘아듀’해야 하나보다 속으로 생각했을 뿐, 더 이상 나도 아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라건대 이런 경험이 나만의 것이기를 원한다. 다른 이들은 좋은 추억을 대하축제에 가서 물어오기 바란다.

아쉽게, 다른 때보다 더욱 아쉽게, 뒤를 다시 돌아보지도 않고 남당항을 빠져나왔다. 우리의 두 번째 목표인 솔잎채취를 위해 국도변을 달렸다. 서해안 쪽으로는 잘 발달한 적송이 많다. 대개는 훤칠하게 키가 높아 솔잎을 따기 어렵다. 그러나 가끔 작은 키의 소나무들이 있어 솔잎을 채취할 수 있다. 몇 번 채취해 솔잎차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런 자그마한 키의 소나무를 만나기가 어려웠다. 어느 민가 옆으로 소나무가 우거진 산이 있기에 들어섰지만 길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모두 키가 큰 소나무라 솔잎을 채취할 수 없었다. 밭에서 일하시던 꼬부랑 할머니만이 자꾸 우릴 잡는다.

“우리 집에 들어가 쉬었다 가요.” 심심하던 차에 사람의 모습을 보신 모양이다. 우리는 폐가 될까 봐 사양하고 어스름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힘든 하루가 있을까. 성공하지 못하고 가는 인생이 이런 것일까. 올해 대하축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하늘에는 만국기가 걸렸고, 저 쪽으로 천막과 무대가 대하축제 중임을 알려줍니다.
▲ 남당항대하축제 하늘에는 만국기가 걸렸고, 저 쪽으로 천막과 무대가 대하축제 중임을 알려줍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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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갓피플, 미디어다음, 21TV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하축제, #남당항, #남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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