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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초부터 한 달 동안 캐나다 달러당 원화 환율 변화 그래프. 한 달 사이에 1캐나다 달러당 100원이 넘게 오르는 등 원화 오름세(평가 절하)가 가파르다. 9월 3일엔 1081.9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8월 초부터 한 달 동안 캐나다 달러당 원화 환율 변화 그래프. 한 달 사이에 1캐나다 달러당 100원이 넘게 오르는 등 원화 오름세(평가 절하)가 가파르다. 9월 3일엔 1081.9원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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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가 미친 것 같습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뭐부터 하는지 아세요? 컴퓨터 켜서 환율부터 체크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 됐습니다."

밴쿠버시 포트 코퀴틀람에 거주하는 이아무개씨의 한숨소리다. 밴쿠버로 이민 온 지 10년이 넘는 이씨는 요즘 매일 수시로 캐나다 환율을 점검한다고 한다. 최근 캐나다 달러의 가치가 급격히 오르면서, 한국으로부터 송금을 주기적으로 받는 이씨는 큰 손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건물 임대사업을 하고 그 돈을 송금해 밴쿠버에서 생활비로 쓰는 이씨는 매달 500만원을 한국으로부터 송금받는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460만~465만원이면 캐나다 달러로 5000불 정도가 됐지만, 지금은 꿈같은 얘기! 요즘은 525만원 정도를 송금해야 캐나다 달러 5000불이 된다.

작년 5월만 해도 '1캐나다 달러=850원' 정도 하던 환율이 지금은 1040원에서 1080원 사이를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1년 전에 비하면 60만~65만원이나 손해를 보는 셈. 이씨처럼 한국으로부터 송금을 받는 처지에 있는 이들에겐 최근 원화가 급격하게 평가 절하된 것이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니다.

이씨에 따르면, 캐나다 한인 사회에는 이씨처럼 캐나다에서 직업을 구하는 대신 한국에 사업체를 둔 이민자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 버는 돈으로 캐나다에서 생활하는 이민자들이 많으니 당연히 환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

캐나다 달러.
 캐나다 달러.
ⓒ 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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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업체도 '기러기 엄마'도 죽을 맛

그렇다면 캐나다에서 취업한 동포들에게 환율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걸까? 그렇지 않다.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한국 식당을 경영하는 박아무개씨도 환율 때문에 걱정이 많다. 박씨는 "손님의 반 이상이 한국에서 온 어학연수생이나 유학생인데(이들은 주로 다운타운 지역에 밀집해 있다), 고환율(원화 평가 절하)로 인해 지갑이 얇아진 유학생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고 털어놨다.

"환율이 오르면 가슴 졸이고 불안하다. 남들이 보면 '캐나다 같은 좋은 나라에서 살면서 별 걱정을 다 하네'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박씨는 밴쿠버에서 한인으로 살아가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며 씁쓸해 했다.

식당뿐만이 아니다. 밴쿠버 이민자들 중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대체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건강보조식품 판매, 다운타운의 한인 마트, 홈스테이, 유학원, 여행사 등 밴쿠버의 한인 이주자 중 상당수는 관광객이나 한국인 유학생을 주요 고객층으로 하는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밴쿠버 다운타운의 FSS유학원 김상훈 대표는 최근 대부분의 밴쿠버 유학원 업계가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1년 중 유학생 수가 가장 많은 때가 5~8월(대부분의 공립학교 입학 시기가 9월인데다가 한국의 여름방학 시즌인 7~8월을 이용해 어학연수를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인데, 올해는 그 시기 유학생 등록자 수가 지난해에 비해 20% 정도 감소해 업계에서 울상이라는 것. 김 대표는 "갑자기 오른 캐나다 달러 환율에 당황한 유학생들이 필리핀이나 뉴질랜드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다른 나라로 방향을 바꾸거나 캐나다 유학 시기 자체를 미룬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전에는 교육환경이 좋고 유학비용도 미국보다 저렴해 캐나다를 찾던 유학생이 많았지만(조기 유학 포함), 요사이 캐나다 달러가 미국 달러와 환율이 비슷해지면서 캐나다를 선택했던 이들 중 다시 미국으로 방향을 바꾼 유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한인 여행업계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고환율로 인해 캐나다를 찾는 관광객 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버나비의 한 여행사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밴쿠버에 한인 여행사가 많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인데다, 한국인 관광객 수도 점점 줄어들어 이번 연도 매출도 10%나 감소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투잡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환율의 영향은 캐나다 관광산업 현황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2008 연방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캐나다를 방문한 관광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0만 명 정도 감소했다. 5월 한 달만 분석했을 때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만 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환율 혜택을 누리는 캐나다인들이 외국을 방문하는 경우는 늘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외국을 방문한 캐나다인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50만 명이나 증가했다.

월별로 살펴본 2007년 캐나다 달러당 원화 가치 변화. 796~951원 사이에서 움직였으며, 월 평균액이 1000원을 넘은 적이 없다.
 월별로 살펴본 2007년 캐나다 달러당 원화 가치 변화. 796~951원 사이에서 움직였으며, 월 평균액이 1000원을 넘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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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들, 김치만 봐도 침 꼴~딱... 일자리 찾아 떠나기도

한인 이주민 사회 뿐만 아니라, 유학생들에게도 고환율은 치명타다. 다운타운 ESL 학생인 최현선(21)씨는 어려운 환경을 무릅쓰고 영어 공부를 위해 밴쿠버를 찾았다. "적게 먹고 적게 쓰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밴쿠버로 왔던 최씨는 "1년 머무를 생각이었으나, 고환율 때문에 몇 달 앞당겨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다"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요즘은 외식은커녕 한인마트도 못 가요. 가난한 유학생에겐 마트 음식도 비싸거든요. 특히 김치는 엄두도 못 냅니다. 여긴 김치값이 비싸서 한 번 사면 아껴먹어야 해요. 환율이 올라 송금받는 시기도 늦추고 있고, 돈은 부족하니 어쩌겠어요. 비싼 김치는 엄두도 못 내고 그냥 외국 슈퍼마켓에 가서 싼 음식들을 주로 사다 먹고 있어요."

현지에서 일자리를 구해볼까 생각중이라는 최씨는 본래 계획했던 영어 공부보다 생활비 문제를 더 힘겨워하며 일자리를 알아보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밴쿠버에서 대학을 다니는 이아무개(30)씨도 요즘 말로 표현 못할 만큼 어렵다고 한다. 등록금 뿐만 아니라 밴쿠버 물가가 워낙 비싸서 한국에서 송금 받는 돈만으론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이씨는 현재 불법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학생 비자로는 일할 수 없지만 오죽했으면 불법으로 일하겠느냐"고 이씨는 전했다.

실제로 밴쿠버에는 돈을 벌기 위해 학생 비자로 몰래 일하는 학생이 꽤 많다. 요즘 같은 고환율 시기에는 필수라는 얘기도 나온다. 심지어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하고 알버타 주(캐나다 중서부에 위치하여 브리티시 컬럼비아와 맞닿아 있다)로 일하러 가는 유학생들도 있다.

밴쿠버와 달리 알버타 주에서는 연방세인 GST(Good And Services Tax)만 거둘 뿐, 지방세인 PST(Provincial Sale Tax)를 걷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버타 주는 밴쿠버보다 물가도 싸고 인력이 부족해 일자리를 구하기 쉽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단기간에 돈을 번 후 밴쿠버로 돌아와 그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기자의 친구 신아무개씨도 알버타 주 호텔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송금 받아 환전하는 것이 지금은 워낙 손해인지라 당분간은 송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밴쿠버에는 많은 '기러기 엄마'들이 자녀들의 조기유학을 위해 와있는데, 이들도 원화 평가 절하 때문에 고민이 많다. 코퀴틀람시에서 자녀 2명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기러기 엄마' 최아무개씨는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매일 충당하기 힘들다며 고환율을 원망했다. 최씨는 자녀 둘과 조기 유학을 온 지 3년이 돼가지만 올해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을 선택할까 하다가, 교육 환경과 치안 상태가 좋고 무엇보다 유학비용이 미국보다 저렴해 캐나다를 선택했지만 지금 같아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씨는 그동안 생활비를 매달 송금 받았으나, 최근엔 환율이 내려갈 때를 기다리며 생활비를 송금 받는 일을 미룬 채 외식비 등을 줄이며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월별로 살펴본 캐나다 달러당 원화 가치 변화 그래프. 2007년과 비교했을 때 환율이 현저히 높아졌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월별로 살펴본 캐나다 달러당 원화 가치 변화 그래프. 2007년과 비교했을 때 환율이 현저히 높아졌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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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덕을 보는 사람들

소수이지만, 고환율이 반가운 이들도 있다. 원-캐나다 달러 환율이 갑자기 1080원대까지 오른 9월 3~4일경, 밴쿠버 유학생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카페인 '우밴유'(우리는 밴쿠버 유학생)의 벼룩시장에는 '캔불'(캐나다 달러)을 판다는 유학생들의 광고가 수두룩하게 올라와 있었다.

"솔직히 미안하긴 하죠. 같은 한국인끼리 이러니…. 그래도 '캔불'을 가진 입장에선 손해 안 보고 환율이 올랐을 때 팔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A씨)

"어차피 캔불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도 은행에서 환전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한 거죠. 환율이 올랐긴 하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서 교환하면 매매기준률로 거래를 하니 서로 좋은 거 아닌가요? 어쨌든 은행보단 저렴하니까." (ESL 유학생 B씨)

"저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깎아달라고 하면 10원 정도 깎아주긴 해요. 대신 1000불 이상 아니면 안 팔죠. 많이 팔아야 이익이니까요. 캐나다에서 워크퍼밋(Work Permit,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허락해준 비자로 한국에서 미리 발급받은 워킹 홀리데이 비자와 현지 학교에서 일정 기간의 수업을 이수해야 발급해 주는 워킹 비자, 대학교 전공과 관련된 일만 할 수 있는 코업 CO-OP 비자 등이 있다)으로 일하고 있는 유학생들 대부분이 환율 올랐을 때 덕 좀 보려고 많이 그럴 걸요?" (현지에서 워크퍼밋으로 일하고 있는 C씨)

이처럼 '캔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면서 일부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속칭 '환치기'로 불리는 '캔불' 거래가 유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라는 처지는 같지만, 학생 비자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기 때문에 고환율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다음 카페 '우밴유'(우리는 밴쿠버 유학생) 초기 화면.
 다음 카페 '우밴유'(우리는 밴쿠버 유학생) 초기 화면.
ⓒ '우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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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질주, 언제 멈추려나... 고민하는 한인들

'캔불'을 구매하는 한인도 늘고 있다. 그나마 은행에서 거래하는 것보다는 저렴하기 때문에 어차피 해야 한다면 그냥 한인들끼리 직접 거래하자는 생각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캔불' 때문에 우는 한국인들도 생겨나고 있다.

기자도 등록금 납부 기한 때문에 9월 초에 어쩔 수 없이 '캔불'을 사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환율이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려다가 더 큰 손해를 보고 결국 시간에 쫓겨 '캔불'을 사게 된 것이다. 기자는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파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매일 게시판을 뒤적거리며 체크했지만, 깎아달라는 사람은 많아도 깎아준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시판에 올라온 구매자들의 글에서는 환율이 내리길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다행히도 기자는 거래하기로 한 사람이 캐나다 달러당 10원을 할인해줘 손실액을 줄였지만, 모든 구매자가 이런 행운을 누리는 상황은 아니다.

기자가 만난 한인 동포 이자경씨도 여기저기 게시판을 뒤적이며 그나마 저렴하다고 생각된 9월 5일 저녁쯤에 한국 돈 52만5천원으로 '캔불' 500불을 구매했지만, 기분은 씁쓸했다고 한다. 이씨는 본래 9월 1일 아침에 한 판매자와 거래하기로 했었다고 한다. 매매 기준률과 상관없이 환전이 급하다며 1:1 거래를 원해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환율이 갑자기 오르자 판매자가 맘을 바꿔 처음 약속과 달리 매매 기준률로 하자고 했다는 것. "한국인끼리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맘이 씁쓸했다"는 이씨는 환율 문제가 빨리 해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캐나다 달러 강세-원화 약세' 시대가 만들어내고 있는 밴쿠버 한인 사회의 씁쓸한 풍속도다.

밴쿠버에는 캐나다 달러 가치가 언제쯤 내려갈지, 원화의 급격한 평가 절하가 언제쯤 멈추고 안정을 찾을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많이도 안 바랍니다. 제발 1캐나다 달러당 1000원 단위로만 넘어가지 않았으면(2007년 수준) 좋겠습니다."

'미친' 환율은 고환율 정책과 고유가의 합작품

도대체 왜 이렇게 캐나다 환율이 미쳐 날뛰는 걸까? 기자가 9월 4일 만난 김형운 외한은행 밴쿠버 다운타운 지점장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먼저 한국 정부가 올해 초부터 펼친 인위적 고환율 정책이다. 이것이 물가 상승, 경상 수지 적자, 체감 경기 악화 등으로 이어졌고 그 여파가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고환율 정책이 부적절했다는 것.

아울러 김 지점장은 세계적인 고유가 및 캐나다 내부 상황이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도 산유국인 만큼 고유가를 바탕으로 전반적으로 경제가 호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일 샌드(Oil Sand)도 호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석유를 함유한 흙이나 모래를 가리키는 오일샌드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주목받고 있다.

유가가 낮을 때는 오일샌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보다 중동에서 석유를 사오는 쪽이 더 나았지만, 유가가 치솟으면서 오일샌드에서 석유 성분을 분리, 정제하는 것이 채산성에도 맞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오일샌드의 주산지인 알버타 주에서는 최대 1750억 배럴이 생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캐나다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캐나다 달러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김 지점장은 고환율 시대의 특성을 감안, 심리적 마지노선과 적정 환율을 설정한 후 분할 송금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태그:#고환율, #캐나다, #원화 평가 절하, #기러기 엄마,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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