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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전국민 책읽기 운동의 일환으로 매달 10종씩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선정, 발표하고 있습니다. 간행물윤리위에서 각 분야별로 선정한 9월 추천도서를 추천사와 함께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문학] 개밥바라기별 |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88쪽 | 1만원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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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맨 앞에 "젊은 시절 언제나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시던 어머니께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헌사가 붙어있는 황석영의 성장자전소설이다. 지나간 시대나 현 시대나 그 시대를 대표했던 작가의 변화무쌍했던 인생 이력 중에서 십대 시절이 60년대 우리 사회 상황을 뒷배경으로 소설 안에 고스란히 들어와 있다.

모범생이었지만 어느 날 모든 규범을 뚫고 나와 버린 젊은 영혼 유준과 그의 친구들이 벌이는 방황과 방랑은 불온하다. 무엇이 그토록 애써서 들어간 학교, 적응만 한다면 탄탄대로가 예상되는 길을 버리고 스스로들 뚫고 나와 버리게 했을까. 다르게 살고 싶어서이다. 누구에게도 혼나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이다. 어떻게 다르게 살고 싶은지는 미궁인 채 일단 뛰쳐나온 이들이 보여주는 행보는 긴장과 위험의 연속이다. 처음엔 이들이 어쩌려고 이러나 걱정이 돼서 그들의 행보를 뒤쫓게 된다. 그들은 동굴에 처박히고 계획 없는 여행에 나서고 노동판을 전전하며 종내는 자살하려고까지 든다. 이들은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에 부딪치고 깨진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점점 그들의 행보에서 눈길을 뗄 수 없게 되는 건 그 충돌 때문만이 아니다. 참 장하게도 그들 젊은 영혼들은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발견해서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발짝씩 내디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황석영이 탄생시킨 젊은 영혼들과 조우하는 일은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에겐 자신들의 젊은 날의 초상을, 지금 그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겐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반딧불이의 역할을 해준다.

이 소설을 단순한 성장소설로만 보는 일은 한쪽 눈을 가리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 황석영의 젊은 날이 거의 사실로 작품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황석영이 어떻게 탄생되었는가를 추적해 들어가 볼 수 있는 예술가 소설이기도 하다. 오늘날까지도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옮겨 다니고 새로운 글쓰기의 형식을 찾아 방랑하며,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것을 멈추지 않는 황석영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소설 속의 유준을 통해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추천자 : 신경숙(작가)

[역사]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 | 김구 지음 | 배경식 풀어씀 | 너머북스 | 702쪽 | 2만8000원 

ⓒ 너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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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치고 <백범일지>를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기라는 뜻의 '日誌(일지)'가 아니라 숨은 일을 기록한다는 뜻의 '逸志(일지)'라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929년 상해 임정 청사에서 두 아들에게 주는 편지글 형식으로 쓴 서문에서 김구는 "이미 오래 전의 사실이라 잊어버린 것이 많아 아쉽지만, 그래도 일부러 지어낸 것은 하나도 없으니 믿어주기 바란다"라고 썼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육필 수고는 '우리 선조는 반역자 김자점의 후손'이라고 시작하지만 1947년 국사원(國士院)에서 간행된 <백범일지>는 "우리는 안동 김씨 경순왕의 자손이다"로 바뀌었다. 신화가 된 위인에 대한 기록일수록 첫 자료를 중심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년 동안 백범을 연구한 배경식은 58편의 '깊이읽기'와 132개의 해설을 덧붙이는데, 이것이 '올바르게 풀어쓴'이란 수식어와 '배경식 풀고보탬'이란 역해자(譯解者)의 이름이 된 소이이다. '깊이읽기'는 '이승만, 동지인가 라이벌인가', '쓰치다의 신분에 대한 의혹' 등 이미 국민적 상식이 된 사실들에도 메스를 들이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백범의 숨겨진 이면 찾기는 아니다. 배경식은 오히려 세상의 비판을 달게 받겠다는 백범의 비판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있는 그대로의 백범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백범일지>를 풀고 보탠 것이다. 백정(白丁)에서 백(白)자를 따고, 범부(凡夫)에서 범(凡)자를 따서 백범이란 호를 지은 인물을 왕의 후손으로 만들려는 후대인의 영웅 만들기에서 벗어나 허물까지 드러냈던 <백범일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를 세상에 내는 마음일 것이다. - 추천자 :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철학]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 제롬 뱅데 엮음 | 이선희·주재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620쪽 | 2만5000원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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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왜냐하면 가치의 의미 혹은 가치의 가치가 변질되고 있는 듯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가치란 보편적이어서 그것을 통해 사물을 평가하고 그것을 위해 내일을 기획하며 그것에 의해 체계가 건축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가치가 그런 본래의 자리를 떠나 어디로 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음을 말한다. 이 책은 완전히 변하고 있는 세상, 21세기의 전망을 담은 책이다. 지구촌의 공적 교육을 책임진 유네스코가 기획했고, 철학에서 정책 실무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명망을 자랑하는 전문가 49인이 참여했다. 가령 데리다, 리쾨르, 보드리야르, 미셰 세르, 크리스테바, 제레미 리프킨 등과 같은 인사들이 그들이다.

21세기 초의 역사적 현실은 보통 세계화라는 말로 표현된다.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일반화와 테크놀로지의 편재성에 기초한다. 자본주의가 심화됨에 따라 모든 사물은 무한한 등가적 교환의 논리에 포획되었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모든 사물을 무한히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무한한 교환 가능성과 조작 가능성 속에 빠진다는 것은 사물이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존재론적 내면성이나 실체적 중량을 잃어버린다는 것과 같다. 오늘날 돈과 상품과 정보는 광속으로 움직인다. 자본과 기술이 창출한 이 새로운 속도를 기존의 시장과 의회, 기존의 학교와 교회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언어, 인종, 문화, 환경, 성차, 전쟁 등과 관련된 고정 관념들도 모두 바뀌어야 할 상황이다. 이 출렁이는 역사를 두려움 없이 바랄 볼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 추천자 :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

[정치]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 | 박정자 옮김 | 프로네시스 | 300쪽 | 1만8000원 

ⓒ 프로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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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것도 소외된 관계에서다. 이문열의 '들소'에 나오는 동굴은 예외지만 동굴 속에서 혼자 사는 원시인을 제외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관계를 맺고 사는데 거기에 권력이 비집고 들어온다.

루소는 권력을 사회만큼 영원하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가 소멸하면 권력도 소멸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불행은 사회관계가 그 원인이라고 믿고 있다. 사회관계만 없으면 권력도 불행도 없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내가 많은 것을 차지하는 줄 착각하는 것일 뿐, 정작 자기 소유물을 남들에게 빼앗기고 자기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이 없는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저서는 20세기에 실현된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는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권력관계가 없어지는 사회를 상정하고 있지만 실현된 것은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예외 없이 언제나 권력이 우리의 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나는 파시즘과 스탈린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자칭하는 저자는 '권력과 언어', '권력과 역사', '자본주의와 죽음' 등에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하면서 "권력 없는 사회는 없고, 남용 없는 권력은 없다"라는 명제를 앞세워 "인류역사상 인간의 얼굴을 한 전체주의와 내일의 천국을 가장하는 자본주의"를 맹박한다. 기술·욕망· 사회주의 등 세 비극의 원형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성취될 수 있을까?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수단, 앙골라 등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부정되는 지역을 누비며 인간사회의 모순을 설파한 '신철학'을 접하기 바란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과 비교하며 읽으면 와 닿는 것이 더 있을 것이다. - 추천자 :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

[경제·경영] 미국은 왜 신용불량 국가가 되었을까? | 찰스 R. 모리스 지음 | 송경모 옮김 | 예지 | 296쪽 | 1만3800원 

ⓒ 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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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시장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시장은 카지노판에 불과하다. 이런 시장에서는 약삭빠르고 독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추구한다. 공정한 게임도 투명한 정보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금융시장에서는 '정보'가 투명하지 않으면 신용은 파탄이 나고 궁극적으로 금융시장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 불과 몇 명이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별다른 확인과정도 없이 차입하는 것도 그 돈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자 미국 금융시장은 공포에 쌓이게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세계경제가 미증유의 불확실성에 빠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을 그린스펀의 금융완화정책에 두고 있다. 예를 하나 들면 미국 연준이 규제를 풀고, 금리를 낮추고 또 돈을 과도하게 많이 풀자 돈의 출처를 찾지 못한 모기지브로커들이 저소득층에게 주택담보대출을 권유하면서 '돈이 없어도 집을 살 수 있다, 집값이 오르면 나중에 집을 팔아서 돈을 갚으면 된다, 돈을 갚고도 많은 돈을 남길 수 있다'는 식으로 공격적 대출마케팅을 펼쳤는데 그것이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규모를 엄청난 속도로 키웠다는 것이다. 모기지 브로커들은 이 과정에서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지만 저소득층들은 빌린 돈을 갚지 못해 파산상태에 접어들었고 그 파급효과는 모기지 시장에 그치지 않고 미국 금융시장 전체, 미국경제 전체, 그리고 세계경제 전체에 퍼진 것이다.

앞으로 미국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에 따르면 미국경제의 장래는 결코 밝지 않다. 향후 1, 2년간 금융기관들은 자산상각의 공포와 도가니 속에서 들끓고, 부도는 급증할 것이며, 아마도 2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소비는 위축되어 경기침체가 오래 갈 것이다.

미국은 대전환을 할 시점에 왔다. 규제완화로 인해 불투명해진(위험)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를 다시 투명하게 유통하여 금융시장의 대기를 뒤덮고 있는 독기를 걷어내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몫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결론이다. - 추천자 : 정운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회] 문화도시 | 유승호 지음 | 일신사 | 272쪽 | 2만원 

ⓒ 일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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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을 기점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구밀도나 인구집중도가 높은 한국사회의 도시민 비율은 더욱 이례적이다. 1970년에 49.8%이던 우리의 도시화율은 1990년 79.5%를 넘어 최근 90%에 근접하고 있다. 따라서 "삶의 질 향상"이라는 국가정책의 목표는 "도시생활의 질적 개선"과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의 도시생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일까? "행복도시"나 "살기 좋은 도시"와 같은 솔깃한 표어를 앞세운 중앙정부나 지자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도시민들은 거주지에 크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평가 이전에 자신이 터하고 사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나 애착 자체가 적어 좋은 학교나 직장을 쫒아 미련 없이 이삿짐을 싸곤 한다.

뿌리 없는 떠돌이 생활은 개인에게는 물론이요 국가적으로도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출세나 돈벌이가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탈(脫)물질주의적 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최근에 이르러 우리 사회에서도 도시문화가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음을 강조하는 저자는 체험, 스토리, 창조, 재생, 네트워크를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현대 도시문화의 키워드로 제시한다. 그러한 윤색을 통해 도시문화는 개인주의, 물질주의, 탐욕주의 등과 같은 사회해체적 현상들을 적절히 제어하며 도시적 삶의 의미를 진작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학술서로 기획된 이 책이 일반 독자층에 널리 읽힐 수 있는 교양서로 꼽힐 수 있게 된 데에는 저자의 아기자기한 필치가 한몫하고 있음이 분명하나, 세계 문화도시 성공사례를 사진과 함께 간결이 제시한 기획력이 보다 결정적이라고 본다. - 추천자 : 김문조(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과학] 기후 커넥션 | 로이 W. 스펜서 지음 |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76쪽 | 1만3000원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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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 현상…. 날씨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기상현상으로 빚어지는 재해 뉴스 말미에 꼬리표처럼 붙는 '지구온난화'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이자 기상학자인 로이 W. 스펜서는 "온난화와 관련해 편파적인 메시지만 듣고 있는 대중들에게 제대로 된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과, 온난화 관련 정책에 드는 비용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책을 쓰게 됐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2007년 지구온난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인간이 사용한 화석연료다. 최근 일본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서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방출량을 줄이기로 결의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이렇듯 세계는 온실기체와 한바탕 전쟁을 치를 태세다.

저자는 지구온난화를 인정하지만 그 원인이 인간이 사용한 화석연료를 포함해 다양한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현재의 기후 모델이 기후시스템에 민감한 강수, 구름, 바다 같은 변수를 포함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인류를 지구온난화 공포로 몰아가기보다 정교한 기후모델을 개발하는 데 투자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정하는 편이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지구온난화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인 생각이 절로 든다. 지구온난화 위기론을 비판하는 저자의 시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지만 큰 틀에서 보면 지구에 사는 우리로서는 지구온난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 추천자 : 장경애(과학동아 편집장)

[예술] 추사정혼 | 이영재·이용수 지음 | 선 | 560쪽 | 2만8000원 

ⓒ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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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솔솔 부니 어디라도 걷고 싶고, 마음 붙여 읽을 만한 책 한권 손에 잡고 싶다. 많은 책 중에 <추사정혼(秋史精魂)>이 눈에 들어온다. 추사의 서화예술이 주는 운필의 묘가 가을바람의 운율을 타듯 문자의 향기를 실어 나른다. 20대 후반부터 70대 만년에 이르기까지 추사가 남긴 200여 편의 작품에 대한 세심한 감평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글도 글이지만 추사의 아름다운 서화들이 오래된 색을 그대로 머금고 책 속에 단아하게 편집이 되어 책갈피를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대나무 화로가 있는 서재라는 뜻의 '죽로지실(竹爐之室)'이라는 글자에 이르니 화로가 있는 서재에 그대로 머물고 싶어진다.

이 책은 책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고, 한 권쯤 소장하고 있어도 좋을 듯하다. 읽다가 눈이 머물고 마음이 머무는 작품이 있어 그것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각각의 작품이 현재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 알 수 있어 직접 가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고서화들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그것에 대해 깊이 있게 배워볼 기회가 없다. 그런 면에서 책의 1장에 나오는 '고서화 감상의 바른 길'은 일반인에게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만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2장의 '추사서도의 이해'는 도판 하나하나가 정성스레 놓이고 그 옆에 적당한 길이의 수준 높은 해설이 무리하지 않게 이어진다.

"봄바람 같이 큰 뜻은 만물을 능히 용납하고, 가을물과 같은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네"를 의미하는 추사의 60대 중반 작품을 보면 그의 글씨가 글의 뜻을 본받아 씌어졌음을 알 수 있다. 글자를 쓴다는 행위가 예술로 화하는 지점을 여기에서 확연히 볼 수 있다. 명작이 주는 아름다운 떨림을 서예에서 맛보고 싶다면 이 책으로의 여행을 먼저 떠나볼 것을 권하고 싶다. 추사는 마음의 티끌을 없애고 기의 불꽃을 소멸시켜 붓을 놀리면 집에 있어도 깊은 산에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잡념과 욕심을 없애는 힘이 그래서 서도에 있다. - 추천자 : 김춘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교양] 빅터 프랑클 | 안나 S. 래드샌드 지음 | 황의방 옮김 | 두레 | 238쪽 | 1만2800원

ⓒ 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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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나 사상가로서 일관한 사람의 생애는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상가의 생애에는 그다지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며 수업시간에 늘 "누구누구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고 생애 부분을 압축해버리곤 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정신의학자 빅터 프랑클(1905년~1977년)은 다르다. 그는 유태계 독일인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훗날 '의미의 심리학'으로 불리는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치료법까지 창안했다. 1945년 수용소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인간의 의미를 찾아서'는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권이 팔리는 필수교양서로 자리잡았다.

이 책은 미국의 교사인 저자가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빅터 프랑클의 생애와 작업을 잘 압축해놓았다. 프랑클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간단하다. 인생은 시련의 연속이지만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프랑클의 간단명료한 '처방'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인생의 시련도 죽음의 수용소만 할까? 놀라운 것은 프랑클이 미세하게 추적한 수용소 안의 사람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실은 수용소 밖 사람들의 자유로운 행동 하나하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 안에서도 결국 사람들의 행동과 행태를 나누는 것은 희망이다. 희망을 버린 사람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은 달랐다.

프랑클은 '의미'를 강조한다. 그에게 의미란 삶의 의미이며 그것은 곧 희망이다. 포기는 절망이다. 몸소 지옥같은 수용소를 살아낸 정신의학자의 절절한 충고라는 점에서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성인들에게도 오랜 울림을 남기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 추천자 : 이한우(조선일보 기자)

[아동] 최악의 짝꿍 | 하나가타 미쓰루 지음 | 정문주 그림 | 고향옥 옮김 | 주니어김영사 | 192쪽 | 8500원 

ⓒ 주니어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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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지저분한데다가 지능까지 약간 떨어져 반 아이들이 모두 싫어하는 남자아이 소메야와 예쁘고 똑똑하며 야무지고 공부를 잘하는 여자아이 가오루가 짝꿍이 되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반 아이들은 소메야의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나쁜 병균이 옮는 것처럼 끔찍해 한다. 그런 아이와 지나칠 정도로 영리해서 부모님에게조차 짐이 되려 하지 않는 가오루.

책의 제목인 <최악의 짝꿍>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아이가 우여곡절 끝에 친하게 되는 이야기로,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눈물이 핑 돌 지경으로 감동적이다. 가오루는 소메야가 반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거친 아이가 아니라는 것, 귀찮게 하거나 놀리지 않으면 얌전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메야 또한 가오루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자기를 깔보거나 놀리지 않으며, 잘 모르는 일을 가르쳐 주는 데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큰 이유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있을 만한 일로 '조금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아이의 친구 되기'를 보다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소메야와 가오루, 두 아이의 입장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들이 마치 일기처럼 번갈아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런 과정들을 통해 두 아이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며 마음을 열어나가는지 흥미롭게 녹아 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가오루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꽤 먼 지방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소메야가 무작정 그곳을 찾아 나선 일이다. 난생 처음, 낯선 곳을 향해 홀로 길을 나선, 곧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지경으로 긴장해 있는 소메야! 우정과 사랑의 힘은 그처럼이나 크고 넓으며 깊다. - 추천자 : 엄혜숙/이상교(아동도서 연구가/아동문학가)


개밥바라기별 (양장)

, 문학동네(2000)


태그:#개밥바라기별, #황석영, #백범일지, #문화도시, #지구온난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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