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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 오마이뉴스 <쪽지함>에 새로운 메시지 하나가 전달 되었다. 하지만 지레 스팸 쪽지로 생각하고 못 본 척 무시해 버렸다. 한참 후,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뒤늦게 내용을 확인해 보니 세상에, 혹시나 하는 예측이 딱 맞아 떨어진 것 아닌가.  보내진 쪽지는 스팸이 아니었다.

큰일날 뻔한 마음을 추스리며 내용을 읽어보니 쪽지 속에는 낯선 이름의 남자가 정성스레 쓴 요청글이 담겨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내 <오마이뉴스> 쪽지함으로 갑작스럽게 온 쪽지 하나.
 내 <오마이뉴스> 쪽지함으로 갑작스럽게 온 쪽지 하나.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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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쯤에 올리신 '비내리는 돌담길...' 기사에 저희 커플 사진을 찍어주셨는데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중략) 기사도 좋구, 저희 사진도 너무 예쁘게 나와서 따로 보관하고 싶은데..혹시 사진파일을 아직도 보관중이신가요? 혹시 보관중이시면 제 이메일로 보내주실수 있으신지요?

누구지? 처음에는 쪽지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한참 후 얼핏 생각나는 사람이 한명 있었다. 그는 이름은 김성재. 한달 전, 덕수궁 돌담길에서 사진 촬영을 한 사람이었다. 취재했던 사람이 보내준 쪽지. 더없이 반가웠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이렇게 어렵사리(?) 쪽지를 보낸 것은 약속을 잊은 내 실수 때문이었다.

한달 전 일이다. 나는 비오는 날의 덕수궁 돌담길을 취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주르륵, 주르륵 내리는 날씨에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든 채(입에는 수첩을 물고)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날씨도 좋지 않아 얼른 취재를 끝내고 싶었지만 바람대로 진행 되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람들은 바쁘게 길을 걷고 있었다.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간 "흥, 싫어요" 라고 거절당하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절박한 내 마음을 알고 하늘이 도와준 것일까? 눈에 띄는 한 연인이 있었다. 바쁘게 길을 걷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느릿느릿 걸어왔다. 멀리서 보긴 했지만 부탁을 하면 "네. 좋아요" 할 것 같은 착한 인상의 사람들이었다. 기쁜 마음에 나는 이것저것 잴 겨를도 없이 그들에게 총총 달려가 말을 걸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데요. 비오는 돌담길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데 사진 촬영을 부탁해도 될까요?"
"아 정말요? 네, 지금 어디 가는 길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세요."

역시나 내 판단은 딱 들어맞았다. 그 연인은 사진 촬영을 흔쾌히 승낙한 것이다. 천사같은 그들은 이것저것 귀찮은 요청에도 그저 밝게 웃으며 사진 촬영에 응해줬다. 결국 해피엔딩. 그들 덕분에 나는 만족할 만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다행스럽게 취재가 끝이났다. 나는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고 했다. 그런데 김성재라는 분이 주섬주섬 하며 말을 꺼냈다.

"저…죄송스럽지만 찍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줄 수 있으세요? 간직하고 싶어서요." 

촬영한 사진을 갖고 싶다는 부탁, 물론 그때 난 흔쾌히 승낙을 했다. 식은 죽 먹기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꼭 보내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이메일 주소까지 받아 적고 헤어졌다.  

하지만 왜였을까? 작은 약속임에도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하루 이틀 미루다가 그들의 이메일 주소를 적은 종이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괜히 그 연인의 기대감만 잔뜩 부풀여 놓고 실망을 시킨 셈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쩌랴. 그들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혼자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게는 무척 작은 약속이었지만 그 연인에게 그것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었던 모양이다. 무려 한달이 지났지만 그들은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내 쪽지함으로 사진을 보내 줄 수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묻기까지 했다.

그들의 요청에 너무 미안했다. 어렵사리 <오마이뉴스>를 찾아 쪽지를 보낸 그들을 보며 나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부랴부랴 이메일 주소를 받아적고 내 컴퓨터 파일을 한참을 뒤져 그들의 사진을 찾아냈다. 다행히 그 연인의 추억이 남긴 사진들은 내 컴퓨터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들에게 보낸 이메일 편지에 나는 미안하다는 내용도 함께 적어넣었다.

'작은 약속도 소중하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이다. 정말 앞으로 사소한 약속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내게는 그저 사소한 일이 누군가에는 아주 중요한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태그:#작은 약속, #덕수궁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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