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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후임사장이 취임함으로써 이명박 정권의 '정연주 사장 축출작전'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것 같다. 물론 이정권의 일방적인 승리다.

 

후임사장 임명과정을 찬찬히 뜯어보면 정부는 초반 정연주 사장을 몰아낼 때 등등하던 기세와는 달리 반발이 덜한 인물로 연착륙을 시도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 임명된 후임 사장이 '정권과 뜻을 같이 하는 인물'로 그 동안 거론된 실력자(!)도 아니고, 이명박 정권의 관계자들과 일부 보수 언론들이 입만 열면 강조하던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초점이 맞춰진 인물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연주 몰아내기-후임사장 밀어넣기' 작전은 따라서 주변의 저항이나 말썽만 덜한 인물이면 후임은 누가 돼도 상관없고, 그저 정연주 한사람을 생이빨 뽑듯 사장자리에서 내 치는게 가장 절실했던 역점사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연주사장을 출국 금지한 것이나 KBS의 외주제작사 6곳에 대한 세무조사에서도 그 같은 지적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8월초 정연주사장을 출국금지한 검찰은 8월 20일 출국금지조치를 해제하고 본인에게 이를 통보했다.

 

이 날은 정사장을 기소한 날이고, 기소했으므로 더 이상 출국을 금지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으나 체포해 조사하는 자리에서도 정사장은 묵비권을 행사했으므로 배임혐의에 대한 피의자 조사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공소유지를 위해서도 추가 조사가 필요하고 이 때문에 출국금지 상태는 유지해야 할 텐데도 검찰은 그에게 출국을 허용한 것이다.

 

요컨대 그를 출국금지한 것은 배임혐의 조사보다도 해임과정에서의 반발 등을 감안한 압박 수단이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절실했던 역점사업의 조기완수가 그 목적이었다는 이야기다.

 

KBS에 드라마 등의 프로를 만들어 납품하는 6개 외주업체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도 한마디로 주문과 납품과정에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연주사장과의 부적절한 금품관계'를 밝혀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조사를 받은 6개 외주회사 가운데는 지난 3월 3일 납세자의 날에 성실 납세자로 선정돼 표창을 받은 회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실 납세자로 선정되면 2년간 세무조사가 유예된다. 그런데도 뒤졌다. 철저하게 뒤졌으나 없었다. 없었으니 뭐가 나올리 없었다.

 

그 같은 무리수를 강행한 것은 결국 정연주를 그대로 두고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고 이정권이 판단한 것 같다. 그 문제가 가장 절박했다는 이야기다.

 

후임 사장이 임명되자 보수신문들은 마치 제 일인 듯 기뻐하며 사설로 기사로 새 사장에 대한 기대를 쏟아놓았다. 지금까지의 KBS는 마치 악마가 만든 쓰레기 방송쯤 되는 것으로 전제하고 쓴 글들로 보인다.

 

어떤 신문은 KBS가 공영방송의 본 모습을 찾아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야한다고 했다. 공정성을 되찾고 '추락한 신뢰의 회복'(KBS는 최근 몇 년간 여론조사에서 이 나라 모든 언론 매체중 신뢰도 1위 영양력 1위를 기록해왔다)을 역설한 신문도 있었다. 왜들 그럴까.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을 일이지 그 새를 못 참아 속내를 드러내는 실수를 범한 신문이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의 요구는 그들로서는 몸서리쳐지는 토요일 밤의 프로그램 '미디어 포커스'를 우선 없애라는 것이었다. 사설과 기사에서 그렇게 썼다. 그게 '눈엣 가시'였던 것이다.

 

신임사장이 취임사에서 화답했다. 방송내용은 "사전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게이트 키핑이 이뤄지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협조체제 구축만세'라도 불러야 할 형국이다.

 

그러나 역사 앞에 겸허한 자세로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 보자. 눈을 감고 심호흡도 해 보자.

 

미디어 비평은 활성화 돼야 한다. 지난날 우리 언론이 군사독재 체제와 손잡고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해 부패와 비리를 서슴없이 저지르던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부처 기자실에서 해외여행 명목으로 거의 '수금'하듯 업체에 손을 내밀고, 사주를 중심으로 언론사가 똘똘 뭉쳐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던 사례도 우리는 기억한다.

 

이와 관련해 생각해 볼 때 한겨레신문 등장이후 이땅의 언론계 풍토가 어떻게 변했고, KBS '미디어 포커스'같은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 사회와 언론계에 얼마나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는지 부인해서는 안된다.

 

두 말할 나위없이 민주주의의 요체는 언론의 자유이고 그 언론이 건강할 때 건강한 민주주의의 기틀이 되는 견제와 균형이 자리잡게 되어있다. 때문에 타락한 언론, 부패한 언론 행태를 기적하고 고발하는 일이야 말로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 목조르기와 함께 이상한 조치들이 우리들 가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불안하다. 우선 국가정보원이 추진하고 있다는 '비밀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의 제정, 이거 수상한 법률이다. 요약컨대 전부가 비밀의 범위를 멋대로 확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 자유를 제약할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같은 통상문제도 정부가 비밀로 묶어두면 이를 취재하는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비밀 탐지 수집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17대 국회때도 국정원이 이 법안을 들고 나왔다가 한나라당의 반대로 자동 폐기됐던 것을 지금 한나라당 정부가 밀어붙인다는 얘기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설마 5공 때 그랬듯이 국정원 직원의 음주 운전 정도까지 비밀로 분류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감출게 많은 정권은 떳떳치 못한 정권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나라당이 국회에서의 단상 점거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검토중이라는 보도도 들린다. 설득이나 대화나 합의 보다는 과반의석을 믿고 너무 편하게 정치를 하고자 하는건 아닌지 역시 불안하다. 그것은 횡포다. 5공 회귀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정권은 KBS사태를 포함한 일련의 조치들이 능률과 효율의 극대화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게 전방위적인 민주주의 목조르기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금방, 불과 몇 년이면 준엄한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태그:#KBS, #정연주, #미디어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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