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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의 옛 직천초등학교가 왁자지껄 소란스러웠다. 그 이유는 40년이 넘게 이어져 이제는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고 이야기할 만큼 역사가 깊은 '직천주민체육대회'(41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왜 하필 8월 15일 광복절인가 하니, 선수급인 이곳 주민 배구팀이 우승을 한 날이 바로 8월 15일이라고 한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체육대회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체육대회 열흘 전부터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영을 하면서 합숙훈련까지 했다니, 배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한 마을 체육대회

90년대 후반에 폐교되어 현재 도자기 체험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옛 직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매년 8월 15일이면 열리는 직천 주민 체육대회가 마흔한번째를 맞이했다.
▲ 마흔한번째 직천 주민 체육대회 90년대 후반에 폐교되어 현재 도자기 체험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옛 직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매년 8월 15일이면 열리는 직천 주민 체육대회가 마흔한번째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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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부터 각 마을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운동장 곳곳에 펼쳐졌고, 음식을 준비하는 부녀회원들과 배구 경기를 위한 코트를 설치하는 동네 아저씨들이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런데 매년 이곳에서 열리는 주민 체육대회엔 단순한 친목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재 무건리 훈련장 확장으로 인해 주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이곳 오현리는 옛 직천리에 살던 주민들 다수가 이주를 해서 정착한 곳이다. 

옛 직천리에는, 1980년 당시 정부가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만든 무건리 훈련장이 자리 잡고 있다. 탱크들이 다니고 포탄 및 실사격 훈련 등으로 사람이 살던 마을의 흔적이 사라진 지 오래다. 한동네에 살다가 강제로 쫓겨난 주민들은 한꺼번에 한 마을로 정착하지 못하고 일부가 흩어져 살게 되었고, 8월 15일에 열리는 주민체육대회는 바로 흩어져 살게 된 옛 동네 주민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주는 하나의 계기로 자리 잡고 있다.

배구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시작된 체육대회인 만큼 이날의 중심 행사는 배구 경기였다. 규격을 맞춘 흰색 라인 안에 선 주민 선수단은 각오가 비장한 모습들이었다. 단체복을 맞춰 입고 경기에 참가한 팀도 있었다.

주민체육대회의 꽃은 바로 배구시합. 선수못지않은 실력들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 배구시합 주민체육대회의 꽃은 바로 배구시합. 선수못지않은 실력들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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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 위로 점프하는 주민들의 모습에 응원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신이 나고, 5~6개 마을별 천막에서는 선수들을 위해 음료수를 쟁반에 가득 담아 우리편 상대편 할 것 없이 함께 나누어 먹는다. 역시 시골 인심이라 후하다.

배구 경기가 끝나고 곧이어 어르신들을 위한 공 굴리기 게임이 이어졌다. 키를 훌쩍 넘는 큰 공을 굴리면서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한참 이기고 있던 눈꽃마을팀에서 마음대로 공이 굴러가지 않자 '에라 모르겠다' 냅다 공을 집어 들고 뛰는 바람에 반칙 판정을 받으면서 결국 상대편인 오현 2리 마을이 우승을 차지했다.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공굴리기 경기가 있었다. 처음엔 공을 굴리다가 나중엔 제멋대로 굴러가는 공을 쫓아다니기도 하면서 마냥 신이난 어르신들.
▲ 공굴리기 시합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공굴리기 경기가 있었다. 처음엔 공을 굴리다가 나중엔 제멋대로 굴러가는 공을 쫓아다니기도 하면서 마냥 신이난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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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굴리기 경기에서 이긴 오현리 주민들의 얼굴에 싱글벙글 웃음이 피어났다.
▲ "우리가 이겼다~ 만세!" 공굴리기 경기에서 이긴 오현리 주민들의 얼굴에 싱글벙글 웃음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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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받지 못한 손님

젊은이, 어르신 할 것 없이 한참을 함께 즐기고 화기 애애한 분위기가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가운데 달갑지 않은 몇몇 손님들이 찾아왔다. 내빈석이라고 차려놓은 천막으로 다가온 사람들은 다름아닌 한나라당 소속 황진하 파주시 국회의원을 비롯한 김영기, 신충호, 김광선 등 파주시와 경기도 소속 의원들이었다.

이들이 천막에 들어서자 오현리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못하다. 그것은 훈련장 확장을 위해, 도자기 나라로 활용되고 있는 폐교된 옛 직천초등학교 건물 사용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 통보하고 수백만원의 벌금을 물린 교육청 관계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무건리 훈련장 확장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5일, 지역갈등 조장하는 반미선동 단체들은 촛불데모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보도자료가 올라온 한나라당 소속 황진하 국회의원 홈페이지
 지난 8월 5일, 지역갈등 조장하는 반미선동 단체들은 촛불데모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보도자료가 올라온 한나라당 소속 황진하 국회의원 홈페이지
ⓒ 황진하의원홈페이지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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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황진하 국회의원은 지난 8월 5일, 훈련장 확장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주민 촛불행사를 외부 단체들이 선동하여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다시 말해 확장 예정 부지에 거주하고 있는 오현리 주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건리 훈련장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오현리 주민이자 무건리 훈련장 확장 반대 주민대책위 주병준 위원장과 심문기 오현지킴이 회장 등 몇몇 주민들이 이들과 동석하여 주민들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주병준 위원장은 "우리 오현리 주민들은 보상이나 이주를 원하지 않는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민들의 의견은 훈련장 확장을 반대하는 것이다. 여기 이렇게 황진하 의원을 비롯하여 시의장, 도의원님들이 계시니, 이 자리에서 물어보는 것이다"라고 물었다.

오현리 마을에서 준비한 내빈석으로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한나라당 소속 황진하 국회의원(오른쪽 가운데)을 비롯한 시,도의원들. 이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 환영받지 못한 손님들 오현리 마을에서 준비한 내빈석으로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한나라당 소속 황진하 국회의원(오른쪽 가운데)을 비롯한 시,도의원들. 이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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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시, 도의원들에게 옆에 있던 주민들이 재차 "주민들의 의사가 그러한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하면 어떡하냐"고 다그치자 이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버렸다고 주 위원장이 말했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귀담아듣고 일해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꽁무니를 빼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민들은 나지막히 읊조렸다.

"무건리 훈련장이 확장되면 이젠 이 체육대회도 여기서 할 수 없게 되잖아…."

"무건리훈련장과 관련해 어느 주민, 어느 단체가 지역 현안에 관여하고, 갈등 조장을 부추기는 선동을 하도록 요구했는가?"라며 보도자료까지 냈던 황진하 의원의 주장에 직접 반박이라도 하듯이 이날 저녁 8시 30분이 되자 오현삼거리에서는 50여 명의 오현리 주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태그:#무건리 훈련장, #오현리, #직천리, #체육대회, #도자기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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