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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앞에서 '부시 방한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 시민이 경찰관 기동대대원들에게 강제연행되고 있다.
 5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앞에서 '부시 방한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 시민이 경찰관 기동대대원들에게 강제연행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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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서 돈 되면 좋고 아님 그냥 풀어주면 되고

장사라면 이건 대박이다. 2만원에서 5만원을 들여서 200만원에서 500만원을 번다면 이 몇배의 이윤인가? 이런 장사가 있다면 땅 팔고 집 팔아 당장이라도 덤벼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촛불 집회에서 연행된 사람이 천명을 넘어 섰다고 한다. 그들 중 선별하여 200만원에서 500만원 벌금을 부과한다는 기사도 있었다.

작게 잡아도 천명에 200만원이면 20억. 뭐 이 정도 수익을 내고 재투자라 생각해서 2만원, 5만원 주는 거야 너무 적으면 적었지 많다고 타박할 일은 아니다. 장사라면 말이다. 그러나 국가 기관에서 설마 국민을 상대로 이런 파렴치한 장사를 기획했을까? 국가가 싼 값으로 경찰들 앵벌이짓을 시킨다는 비아냥거림도 그야말로 유언비어이고 악의적인 모함이리라.

논란이 있자 경찰은 포상금을 현금 지급 대신 마일리지로 적립하고 일정 마일리지 이상이면 표창하고 상품권 등을 지급한다고 한다. 현금 대신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상품권 지급으로 지급해 준단다. 그럼 해결된 건가? 아니 그렇지 않다. 마일리지를 쌓아 상품권을 주는 것과 당장 연행자 한명 한명을 계산하여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 둘 다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 현금이 상품권으로 바뀐 것뿐, 그 상품권은 언제든지 현금처럼 쓸 수 있고 상품권을 일정 수수료만 제하고 현금으로 바꾸어 주는 곳도 길거리에 널려 있다.

마일리지가 상품권으로 지급되는 날 경찰서 앞 구두방에는 상품권으로 돈으로 바꾸려는 꼴불견 장사진이 펼쳐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속 좁은 상상이 든다. 본질은 시위대 한명 한명을 잡는 것이 진급과 포상에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법이든 아니든, 인권이고 뭐고 우선 잡고 보자는 연행 만능주의가 판 칠 것이다. 잡아서 돈 되면 좋고 아님 그냥 풀어주면 되고….

91년 토끼몰이 비극이 생각 나 

5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앞에서 '부시 방한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 시민이 경찰관 기동대대원들에게 강제연행되자 시민들이 순찰차를 가로 막고 있다.
 5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앞에서 '부시 방한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 시민이 경찰관 기동대대원들에게 강제연행되자 시민들이 순찰차를 가로 막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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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저녁 부시 대통령 방한에 맞춰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국민들에게 보인 경찰의 태도는 이전의 시위 대응 태도와 달랐다. 벌써부터 경찰 기동대의 창설, 색소 물대포, 최루액 발사. 시위대 끝까지 검거 등등의 발표가 있어 다를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날 저녁 경찰의 대응은 나의 사고를 10년보다 훨씬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붉은 색소가 섞인 물대포는 길거리를 피가 흘러 넘치는 것 같이 만들어 놓았다. 마치 올림픽 선수들이 전력질주 하듯 뛰어서 시민들에게 달려드는 전경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골목으로 쫓겨 들어가는 시위대, 곤봉과 방패가 따라 들어가고 고함소리, 비명소리.

나는 거기서 91년 토끼몰이 비극이 떠올라 두려움에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 되었음직한 아이가 끌려 나와 시민들이 어린아이를 놓아 주라고 소리쳤다. 경찰들은 인도로 안 올라가면 다 연행할 것이라고 맞받아 소리친다. 나도, 시민들도 그 살벌함에 끌려가는 아이를 멍하니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전쟁이론 중에 미치광이 이론(Mad man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적들에게 우리가 미칠 수도 있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가공할 파괴력을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만들어, 그들이 겁에 질려 우리의 요구에 순응하게끔 만드는 것이 이 이론의 뼈대다.

미국은 이 이론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참혹한 전쟁으로 적국이 된 나라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혹시 지금 우리나라 경찰들이 이 미치광이 이론을 흉내 내는 것은 아닌지, 시위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극심한 공포를 유발하여 거리로 아예 못 나오게 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최근 경찰은 대응을 보면서 이러한 의심을 감출 수 없다.

시위대는 적이 아니다

그러나 시위대는 적이 아니다. 토끼몰이로 몰아 댈 사냥감이 아니다. 토끼몰이 대응방식의 말로가 어떻다는 것은 누구보다 경찰들이 더 잘 알 것이 아닌가? 지난 10년 동안 인권경찰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인권이 어디가고 공권력의 인내는 어디로 갔는가?

촛불집회 기간 내내 이렇다 할 조직화 된 무장 세력이 있었던가? 그런데도 5·6공식 시위 진압방식을 앞세우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공포 정치를 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진압 방식은 실패한 역사의 퇴물이다.

실패한 역사의 퇴물이 2008년 촛불을 이길 수는 없다. 토끼몰이의 말로를 안다면 민중의 지팡이 대한민국 경찰이여! 진압복 대신 인권의 조끼를 다시 입으라! 그리고 시위대 앞에서 만인이 인정할 수 있는 공평한 잣대를 들고 당당히 서라.


태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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