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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도 상관없이 방학이면 더 바쁜 ‘꿈쟁이 지역아동 센터’ 아이들이 지리산 준령에 둘러싸인 경남 산청으로 래프팅을 떠났다. 꿈쟁이 지역아동 센터는 여수시 화양면 나진 초등학교에 다니는 40여명의 학생들로 구성됐다.

 

80%의 학생들이 저소득층 결손가정과 한 부모, 조 부모 가정의 아이들로 구성돼 집에 돌아가도 공부를 돌봐줄 사람이 거의 없다. 학교가 파하면 곧장 센터에 와서 엄마 같은 주순미 선생님이 차려주는 밥을 함께 먹고 부족한 공부와 독서를 한다. 나진 꿈쟁이 지역아동센터는 주순미 교사가 사비를 들여 설립한 곳으로 아직 시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4일은 월요일이지만 한화석유화학 여수 공장은 노동조합 창립기념일이라 휴무일이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항상 편안한 웃음을 보내 마음씨 좋은 시골 이장 같은 모습의 김기원 대리에게서, "시간 있으면 아이들과 회사 아름다운 동행팀이 산청 경호강으로 래프팅을 떠나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김 대리는 숲 해설가로도 봉사활동을 한다. 

 

 

한화석유화학 이광식 대리와 직원들은 경남 산청의 나환자 보호시설을 방문한 뒤 뭔가 사회에 보람있는 일을 하자고 의기투합해 '아름다운 동행팀'을 결성했다. 이들은 매월 오천원씩 모은 돈과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기금을 모아 센터에 월 10만원 상당의 학습지를 지원하고, 여름과 겨울 캠프 및 봄·가을 운동회를 통해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있다.

 

이광식 대리는 "심리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애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니까 나만 보면 안기는 애들이 있어 마음이 안타깝다. 이 애들 중에서 지역의 훌륭한 인재가 나타나면 보람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아침 10시. 회사에서 대절한 관광버스가 도착하자 차창 속에서 아이들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차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녕하세요?" 하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이들에게는 낯익은 회사 아저씨들이 고마운 존재다. 아이들은 이들이 3일 연휴인데도 자신들을 위해 봉사하러 기꺼이 나온 사실을 알까?

 

 

말로만 듣던 래프팅을 한다는 기대감에 들뜬 아이들은 여수에서 산청까지 가는 내내 큰소리로 노래를 한다. 동요와 교회 찬송가 속에서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린다. 애들이 독도가 주는 의미를 알까? 아니면 자신들처럼 외로운 독도가 가슴속 켜켜이 밀려오는 걸까?

 

산청의 래프팅 장소에 도착해 가이드들의 주의사항과 장비 착용법을 듣는 동안  장난꾸러기들은 벌써 노를 들고 자갈밭에서 삽질을 하며 딴청이다. 헬멧과 구명복을 입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깔깔거린다.

 

강가에 놓인 90kg의 8인승 보트를 강가로 운반하는 아이들이 낑낑대며 무게가 장난이 아니란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은 가이드들이 '일어서 앉아'를 명령하며 준비운동을 하면서 뿌려주는 물장난이 싫지가 않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악을 쓰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로 들려 안쓰럽다. 앞뒤로 노젓기 훈련을 마친 후 서서히 강물을 따라 내려가는 이들의 얼굴이 마냥 즐겁다.

 

업체사장에게 물었다.

 

- 언제부터 산청에서 래프팅이 시작됐어요?

"15년 전인 1993년부터 시작했어요. 사실 정선의 동강보다 우리가 3년 먼저 시작했는데 거기는 소문이 많이 나고 산청은 별로 안 나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죠. 현재 28개의 업체가 있어요. 중부지방에는 비가 많이 왔지만 요즘 가물어서 사람들이 많이 안 와요. 래프팅도 물이 많아야 즐겁죠. 동강, 한탄강, 경호강을 래프팅 3대강이라고 불러요. 인제 내린천은 마니아들만 타는 위험한 곳이에요. 해마다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는 곳도 내린천이죠."

 

 

사장이 래프팅의 요령을 간단히 설명해 준다. 래프팅을 즐기려면 우선 흐름이 완만한 강이나 호수에서 급류타기에 필요한 기술이나 감각, 안전수칙 등을 익혀야 한다. 노를 젓는 방법, 팀원들이 일치된 동작으로 노를 저으며 급류타는 방법, 바위 등의 충돌시 대처법, 물에 빠진 대원을 구조하는 방법 등을 익혀야 비로소 스릴과 스피드 모험을 즐길 수 있다. 

 

물살이 가장 빠른 다리 밑을 통과하는 순간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며 환호한다. 재미있는 아이들은 급류를 이미 내려 왔는데도 "다시 저기로 돌아가요" 하며 보챈다. 5학년인 지은이에게 물었다.

 

"재미있었어?"

"예, 너무나 재미있었어요."

"얼마나?"

"하늘만큼 땅만큼. 제 손을 보세요. 얼마나 노를 저었는지 물집이 잡혔어요."

 

물을 먹기도 하고 물에 빠져 생쥐 모습을 한 아이들은 또다시 오겠단다. 탈의실에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데  한 여학생이 물에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옷을 갈아입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고개를 숙이며 갈아입을 옷을 안 가져 왔단다. 주 선생님이 다가와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할머니하고만 사니 깜박 잊고 못 챙겨 주신 것 같아요"  부모가 다 챙겨주는 아이들은 부모의 고마움을 알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6학년인 혜원이에게 지역아동센터와 고마운 사람들의 의미를 들었다.

 

"우리를 잘 이끌어 주고 도와주시는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커서 선생님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줄 거예요."

 

조부모하고 살며 공부도 잘하는 조모군은 도둑 잡는 경찰이 꿈이다. 영어 음악 체육이 제일 재미있다는 그는 "저도 커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겁니다"라고 다짐한다. 피곤에 지친 아이들은 곧 잠에 골아떨어졌다. 어른들 같으면 미리 대비를 하던지 화장실에 가자고 말했을 텐데 순진한 아이들이 사고를 쳤다. 

 

 

"선생님 xx가 옷에다 오줌 쌌어요. 신발에까지 흘렀어요."

 

기사아저씨는 하는 수 없어 국도변에 세웠다. 몸이 가려지는 곳에서 여학생들은 소변을 보고 회사 사택에 돌아와 차에서 내렸다. 각자 마실 물 한 병을 지급했기 때문에 물병을 들고 내리는 데 남자애들이 갑자기 시끄럽다.

 

"얘들아 왜그래?"

"아저씨 마실래요?"

"뭔데 색깔이 다른데?"

"오줌이에요. 참을 수가 있어야죠."

 

회사 영빈관에서 손으로 만든 맛있는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 엄마가 말했다.

 

"촌놈들이 말로만 듣던 래프팅을 언제 해 보겠습니까? 저도 출세했습니다. 보트도 타고 저녁도 먹여 주고 항상 도와주는 아저씨들에 대해 꿈쟁이 아동센터의 아이들도 느낄 겁니다. 말할 수 없이 고맙죠."

 

 

휴일도 반납하고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아이들과 동행한 모습이 아름답다. 맑은 하늘 너머로 황혼의 노을 속에서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덧붙이는 글 |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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