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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는 책이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엄마와 딸은 항상 토닥거리면서 살아가지만 결국 딸은 근본적으로 엄마의 고독감과 그 무언가를 이해하게 된단다. 나 역시 그랬다. 22년이라는 시간을 엄마와 늘 다투며 살아왔다. 지금은? 창가에 서서 멍하니 있는 엄마의 모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서로에게 짜증을 부리고 의견이 맞지 않는 우리. 이런 과도기에 나는 감히 엄마와 대담을 해보기로 했다. 다음은 애교 하나 없는 무심한 딸과 애교 넘치는 엄마와의 지극히 사소한 대화 내용이다.
 
대담 장소는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의 한 아파트, 대담자는 나(이보라,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 22)와 엄마(황인숙, 직장인, 47) 두 명.

 

여자는 외박을 하면 안 된다?!

 

 "엄마. 우리는 왜 이렇게 싸웠던 걸까. 엄마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없었어요? 아들은 엄마와 가깝고, 딸은 아빠와 더 친하다는 말이 있어. 왠지 정말로 그런 것 같아. 엄마는 남동생 승주와 참 친밀한데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그 말이 참 섭섭했어요.

 

특히 밤에 외박을 하거나 술을 마실 때, 승주와 내게 적용되는 기준이 너무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엄마도 기어코 우겨가며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는 내가 많이 야속했겠지. 그래서예요. 오늘은 엄마와 '싸움'이 아니라 '이야기'를 해보려고. 물론 중간에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겠지. 하지만 무조건 싸우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 "그래, 나도 원했던 바야. 우리 얘기 좀 해보자고. 일단 외박하는 거에 대해서는 내가 항상 얘기했던 것과 같아. 남자랑 여자랑 동등하다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게 맞지.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회에서 그 생각이 적용 안 되는 것 같아. 여자 같은 경우에 외박하다가 강간을 당하거나 그럴 확률이 크기 때문에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

 

남자들은 대외적으로 활동을 많이 하도록 만들어졌고, 여자는 집 안에서 정적인 활동을 하게끔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물론 엄마 말이 보수적이라는 건 알아. 그래서 너랑 내가 충돌이 이루어졌던 것 같아."

 

"그런데 엄마 말은 그러면 생리적인 구조 때문에 내가 외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에요?"

엄마 "그렇지. 세상이 어지럽고 무섭기 때문에."

"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면. 여자가 임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네요?"

엄마 "사실 그런 이유가 크지. 하지만 임신을 떠나서 밤에 외박을 하다 보면 의지와는 다르게 일어날 다른 위험한 일들 때문이 더 커.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성별 때문에 너와 승주를 대하는 게 다른 거야."

 

 "음…. 그럼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어땠어? 외할머니가 엄마를 많이 풀어주는 편이었나? 아무래도 4남매니까 관심이 네 명으로 분배되는 만큼 좀 덜 신경 썼을 것 같은데요."

엄마 "아니, 엄마가 지금 너한테 하듯이 외할머니도 나한테 그러셨어. 어쩌면 그런 환경

때문에 지금 내가 너한테 행동하는 것 같아. 사실 세상이 변했지. 엄마가 보기에는 너네 시대가 참 좋은 시대 같아. 너네처럼 자유로운 시대가 없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더 걱정하는 걸 수도 있어."

 

 "그러면 외할머니가 그렇게 엄하게 할 때 엄마는 대체로 순응하는 편이었어, 아니면 나처럼 바락바락 대드는 편이었어? 이모들한테 옛날에 듣기로는 엄청 대들었다고 하던데~"

엄마 "반반이었어. 엄마도 우리 딸 정도로 외할머니한테 대든 것 같아. 하지만 너처럼 자주 대들지는 않았어!"

 

 "내가 뭘 그랬다고~ 그러면 엄마는 내 마음을 이해할 거 아냐?"

엄마 "이해는 하지. 근데 너도 마음을 돌려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줬으면 좋겠어. 밖에서 자는 것도 습관이야. 외박하는 걸 별스럽게 생각 안하면 집에 올 수 있는 상황에도 외박하게 되잖아. 그렇게 외박을 많이 하게 되면 그게 너의 습관이 되고 성품이 될 거 아냐. 엄마가 우려하는 건 그거야."

 

미래의 청소년 상담사, 우리 엄마

 

 "엄마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 지금 생각해 보면 뭐가 제일 아쉬워요?"

엄마 "엄마의 꿈? (허공을 보며 눈을 빛내다가) 그 당시에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는데, 막연한 꿈이었지. 되려고 많은 노력은 안한 것 같아. 지금은 (망설이다가) 나이가 들면서 꿈을 자꾸 접게 되는 것 같아. 나보다는 가족에 대한 생각을 워낙 많이 해서."

 

 "그러면 엄마가 지금 원하는 건 없어? 가족에 대한 거 말고."

엄마 "선생님이 된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청소년 상담 교육을 받아봤잖아. 그때 잠깐 아이들 가르치면서 심리학이나 교육학을 공부하고 싶었지. 그래서 청소년 상담소를 운영하고 싶어. 그렇지만 경제적 여건이 안 돼서 현실적으로 어렵지."

 

 "왜? 공부하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엄마 "그렇지."

 

 "그런데 왜 하필 청소년 상담이야?"

엄마 "어른들은 이미 성장을 다해 버려서 변하기가 쉽지 않잖아. 그런데 아동이나 청소년들은 바뀔 가능성이 많아. 그래서 올바른 조언자가 있다면 조금 더 청소년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교육 받으면 우리 아들 딸처럼 훌륭한 정서를 가진 사람이 되겠지(웃음)." 

 

"나는 지금 기자가 되고 싶은 게 꿈이잖아. 인턴을 하면서 보니까 기자는 글을 뛰어나게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발품 팔고 고생도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아빠는 항상 선생님이 되라고 하잖아요."

엄마 "사실 네가 힘들 게 사는 것보다 힘 덜 들이면서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길게 봤을 때 어느 쪽이 더 미래를 위해 좋을지 생각했으면 좋겠어. 기자는 밤낮 없이 뛰어야 하는 것 같던데?"

 

 "엉. 인턴하면서 좀 그런 면을 느꼈어."

엄마 "응. 그래서 네가 좀 고생을 덜 했으면 좋겠어."

 

 "그래도 내가 기자를 무조건 한다고 그러면 뜯어 말릴 거야?"

엄마 "뭐…. 어쩔 수 없지. 네가 하고 싶다면 하라고 그래야지."

 

외박, 쌍방 합의에 도달하다

 

 "다시 외박에 대해 얘기할게. 엄마는 내가 공부하느라 밤샌다고 그러면 대체로 괜찮다고 하는 편이잖아. 그런데 왜 친구네 집에서 잔다고 하면 싫어해?"

엄마 "그거야 너의 발전을 위한 일이면 밤을 샐 만한 가치가 있지만 친구들은 평소에 굳이 밤새지 않아도 되잖아."

 

 "그럼 어느 정도 기준이 좋을까. 외박을 허용하는 거는?"

엄마 "네가 생각했을 때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꼭 밤을 새야 우정이 두터워지는 건가?"

 

 "그래도 친구들끼리 모여서 밤에 파자마 입고 누워서 수다 떠는 거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

엄마 "사실 엄마가 그런 적이 없어서 널 이해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친구들이랑 그렇게 밤을 새면서 얘기해본 적이 없거든."

 

 "그러면 미리 누구누구와 밤에 집에서 놀기로 했다고 얘기를 해놓으면 어때?"

엄마 "그래. 그날 밤에 갑자기 연락해서 '밤 샌다'하지 말고 아침에라도 미리 얘기를 해놔. 그리고 솔직히 공부하고 취재하느라 밤 샌다는 것도 엄마는 의심이 되는데, 그냥 네 양심에 맡기는 거지. 친구들이랑 노는 건 일 년에 두 번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취재하거나 공부하느라 밤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기준은 너의 양심에 맡길게."

 

나 "그래, 그럼 친구랑 노는 건 일 년에 두 번, 공부와 그 외 사항에 대해서는 나의 양심에 맡기는 걸로 합의를 할게요." 

 

22년 만에 귀와 마음을 열다

 

"너무 내가 섭섭한 것만 얘기한 것 같네. 엄마는 나한테 제일 화날 때가 언제예요?"

엄마 "(한참 웃고 난 뒤) 기껏 다 얘기해 놓고 미안하데…. 밖에서 잔다고 그럴 때 이상하게 제일 화나더라. 요즘은 크게 부딪치는 게 외박 말고는 없는 것 같아서."

 

"뭐야~ 그럼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마지막으로 해 줘요."

엄마 "대학 생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뻐. 풍부한 경험 쌓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사실 요즘에는 다 예뻐 보이지. 부탁하고 싶은 건 부지런히 살아달라는 거. 친구들 너무 자주 만나는 것 같아. 너를 위해 좀 더 투자하고 노력하길 바라." 

 

엄마와의 대담은 이렇게 끝났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은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엄마는 여전히 '아들과 딸은 다르다'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나는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답답해했다. 다만 앞으로 차차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를 통해 얻게 됐다.

 

엄마와 나는 자란 시대가 다르다. 엄마도 외할머니에게 "왜 내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거야"라고 울면서 대들 때가 있었고, 나도 훗날 엄마가 되어서 "너도 커서 너 같은 딸 낳아 봐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차이는 근본적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와 딸에게 필요한 건 예의가 아닐까.

 

사실 우리는 서로 대화 상대자로서 예의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가족이라고 해서 막 대해도 되는 게 아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들은 서로의 말에 귀와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십 년 동안 엄마의 취미가 무엇인지도, 딸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도 모르고 살 수도 있다.

 

청소년 상담가가 되고 싶다는 엄마, 우리 엄마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뻔하디 뻔한, 그러나 딸과 엄마가 지키기 어려운 그것.

 

"엄마, 이제 우리 정말로 대화다운 대화를 해요. 대화하다가 또 버럭 하면서 싸우더라도 노력하려는 마음만은 잃지 말아요, 우리."


태그:#엄마와 딸, #외박,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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