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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피곤해 보였다.
 늦은 시간,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피곤해 보였다.
ⓒ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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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와, 빨리!"

밤 11시 30분 대학로. 혜화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곧 있으면 막차가 끊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역내의 상점들은 벌써 문을 닫았다. 매표창구에는 '무인충전기를 이용하세요'라는 종이가 붙어있고, 아직 창구를 떠나지 않은 역무원은 창구 안을 정리하고 있었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몇몇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노곤함이 묻어났다. "띠리리링-"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하루의 끝을 잡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 역 속, 밤낮을 바꿔 일하는 사람들

 밤낮이 바뀌어 지하철역 야간 청소를 하는 허복순씨의 뒷모습.
 밤낮이 바뀌어 지하철역 야간 청소를 하는 허복순씨의 뒷모습.
ⓒ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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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장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아주머니가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지하철 역내를 청소하는 허복순(57)씨였다.

"사람이 많을 때는 청소를 못해요. 때로 사람이 많은 시간에도 청소를 하지만, 그럴 땐 물청소는 못하죠. 막차가 떠나고 사람들이 모두 역을 나가면 지하철 철로에 내려가 청소를 해요."

3교대 체제라는 지하철 역 청소. 야간팀을 맡고 있는 허씨는 아침 6시까지 근무한다고 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이 힘들지는 않을까. 허씨는 "(우리의 일은) 하루가 뒤바뀌는 것"라며 "교대하는 사람 중 휴근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이 더 늘어나기 때문에 힘들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허씨의 얼굴에는 '일하는 사람'의 건강한 미소가 가득했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 중 허씨와 비슷한 연배의 한 아저씨가 허씨에게 "아주머니, 고생하시네요"라며 말을 건네 왔다. 두 사람은 잠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삭막할 것만 같던 지하철 역의 늦은 시간에도 '우리네' 사람냄새가 있었다.

"사당행 있나요?" "사당행은 끊겼어요"

한성대입구 행 열차는 오늘의 '막차 중의 막차'였다.
 한성대입구 행 열차는 오늘의 '막차 중의 막차'였다.
ⓒ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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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5분. "지하철 없습니다, 역내의 손님들은 밖으로 나가셔서 버스를 이용해 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앞으로 들어올 지하철은 서울역 행 막차와 한성대입구 행 막차뿐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 개찰구 앞, 한 역무원이 서있다. 사람들이 "서울역 가요?" "사당행 있나요?" 하고 물어보자 역무원은 "서울역은 갑니다" "사당행은 끊겼어요"라며 막차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타고 갈 수 있는 지하철이 없다는 것을 안 사람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에게 다가가 "시민들의 질문에 일일이 응대하려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차가 끊겼는데도, 급한 마음에 무조건 교통카드를 찍고 역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렇게 설명해 드리지 않으면 뒤처리가 더 힘들어요"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다른 질문을 하려고 말을 잇자, 그는 "지금은 너무 바빠서 길게 얘기해 드릴 수가 없네요"라고 미안한 듯 말하며 지하철역 상황을 살피기 위해 급히 달려갔다.

기다리다 잠든 손님 깨워 지하철로 '모셔주는' 손길

밤 11시 50분. 8분 후에 들어올 한성대행 막차만이 남아있는 시간이었다. 토요일 밤이라서 그런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한 잔 걸친' 듯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료들과 한 잔 했다"는 염아무개씨(35)는 "집이 노원인데, 노원까지 가는 차를 놓쳐서 한성대에서 내려 택시를 타야 한다"고 말했다.

밤 11시 58분. 드디어 한성대행 막차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모두 지하철에 올라탈 준비를 했다. 그 사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든 아저씨에게 한 역무원이 다가와 아저씨를 깨웠다. 그는 잠이 덜 깬 아저씨를, 출발을 대기하고 있는 지하철 안까지 조심스럽게 부축해 주었다. 아까 잠시 마주쳤던 그 역무원이었다.

그는 "막차시간에는 만취한 손님들이 많아서 곤란한 경우가 많다"며 "그나마 혜화역은 사정이 나은 편이고, 종착역의 역무원들은 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막차에 올라타는 사람들보다, 막차를 타고 혜화역에 내리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는 "보통 막차에서 500~600명 정도 내리고, 많은 날은 1000명이 넘을 때도 있다"며 "혜화역 일대가 대학로여서 그런지 밤늦게 놀러 오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제, 지하철 역도 잠시 잠들 시간

셔터가 내리고, 지하철역도 잠시 잠들 시간.
 셔터가 내리고, 지하철역도 잠시 잠들 시간.
ⓒ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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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막차가 떠난 후, "오늘 모든 지하철 운행이 끝났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혜화역의 하루가 끝났음을 알렸다.

지하철 운행은 끝이 났지만, 역무원들의 일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무원들은 역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순찰을 시작했다. 그들은 화장실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확인해, 지하철 역 문이 곧 닫힌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새벽 0시 5분. 전등들이 하나 둘 씩 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어두워진 역. 세 명의 역무원이 모여 개찰구 기계를 점검하고, 셔터 내릴 준비를 했다. 셔터는 버튼으로 조종하는 반자동 방식으로 돼 있었다.

천천히 셔터가 내려지고, 혜화역의 하루도 막을 내렸다. 닫힌 셔터 옆, 아직 잠기지 않은 문을 통해 나오면서 역무원들과 서로 "고생하세요"라는 인사를 나눴다. 막차시간 즈음 지하철역에 머물러 있었던 나에게는 어느새 사람들의 훈훈한 '삶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태그:#지하철, #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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