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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데아
▲ 내가 루마니아를 사랑하는 이유 오라데아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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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를 타고 여행하면서부터 새로 생긴 취미가 하나 있다. 대형 마트 구경하기다. 대게 생수나 식료품 등 그때그때 필요한 물품을 사기도 하기만, 실은 물가 비교나 그 나라만의 특산품들을 둘러보는 것이 더 주요한 이유다. 아마 유럽에서는 야외시장이나 '시골장'을 만나기 힘들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가장 먼저 그 나라 상표를 붙인 맥주를 맛본다.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라면을 보면서는 아시아 이민자들의 구성 비율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독일 소시지가 줄어들고 게맛살이나 깡통 새우가 넘쳐날 땐 우린 지중해변의 어느 도시를 달리고 있었다. 또 미리 사둔 치즈의 가격이 대폭 떨어지거나 올라갔을 때는 애통해 하거나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국경이 만들어 놓은 '마법'에 빠져들곤 했다.

대형 마트를 구경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부쩍 더워진 날씨 때문이었다. 에어컨이 없는(독일의 중고차들은 대부분 에어컨이 없었다) 애마 안에서 삐질삐질 땀을 흘리다 대형마트를 발견하면 삼복더위에 동해바다에 도착한 것처럼 미친 듯이 마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루는 루마니아 국경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역시 대형마트는 우리의 피서지가 되어 주었는데, 그날은 아내가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노란 알이 꽉 찬 배추! 백열전구가 머리 위에서 반짝 켜지는 만화 같은 장면은 이런 순간이 아닐까. 방금 시뻘건 양념으로 버무린 포기 김치가 우리 둘 머리 사이에 두둥실 떠있었다.

부쿠레슈티
▲ 오늘은 어린이 날 부쿠레슈티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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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배추 한 포기와 베트남 젓갈을 샀다. 그리고 루마니아 국경을 넘었다. 처음으로 나타난 트럭 휴게소에 들어가 아내는 김치를 담기 시작했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는 사이에 어둠이 내렸고 곧 보름에 가까운 달이 떠올랐다. 주차장은 달빛을 받아 은은했고 식당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 승용차가 한 대 서있었을 뿐 트럭은 한 대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달빛을 머금은 김치! 세상에 이 보다 더 맛있는 김치가 있을라고!"

내가 호들갑을 떠는 사이에 누군가 다가왔다. 덩치가 아주 큰 중년 남자였다. 그가 빠르게 뭐라고 말하는데, 독일어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 차의 번호판을 가리키며 계속 독일어로 얘기했다. 독일 번호판을 달았으니 독일 시민이라 여긴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난 영어, 그는 독일어로 '동문서답'형 대화가 시작되었다.

"미안합니다만, 저 독일어 못하거든요."
"음, 그래. 독일에서 온 양반들이구만."

"휴게소가 널찍하니 아주 좋습니다."
"그래, 하루 묵어간다고? 그럼 하룻밤 주차비 내야지."

"네? 아~ 이거요, 달빛에 담근 김친데 어디 한 번 맛보실래요?"
"뭐? 아, 그래 알았어. 돈은 내일 아침에 받기로 하지."

(물론 이 대화는 다음날 오후에 재구성해본 것이다) 다음날 아침, 출발하려는데 그가 주차비 영수증을 내밀었다. 한 번도 도로변 휴게소에서 주차비를 낸 적이 없는 우리는 기분이 다소 상했다. 

"어젯밤에 진작 얘기하셨어야죠. 김치까지 맛보시고 친절하게 대하시더니…."

부쿠레슈티
▲ 루마니안 정교의 화려한 교회 부쿠레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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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 활기찬 도시 오라데아 루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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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만스럽게 얘기하니 그가 오히려 황당하다는양 어깨짓을 해보이더니 그럼 그냥 가라고 손짓을 했다. 아침부터 기분 잡쳤다는 둥 감히 베테랑 나그네를 어떻게 보고 사기를 치려했다는 둥 한 참을 투덜거리며 달려가는데 전날 밤의 일들이 떠올랐다.

찬찬히 상황을 재구성해 보니 이런, 그는 하얀 달빛을 받으며 휴게소 관리인으로서 해야 할 얘기를 이미 다 했던 것이었다. 아, 이렇게 미안할 수가…. 허나, 어쩌겠는가. 다음에 다시 루마니아에 들르거든 꼭 갚아드리리다.

활기찬 도시 오라데아(Oradea)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다시 수도 부쿠레슈티(Bucuresti)를 향해 달려갔다. 점심 때쯤에 두 번째 도시 나포카(Napoca)에 가까운 어느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웅성웅성 '시골장'이 열리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는 법. 유럽에서는 처음 만난 시골장이었다. 마을 입구 한 쪽에 차를 세우고 군것질거리가 없을까 두리번거리며 시장판에 들어섰다.

시장은 아주 작았고 머리에 보자기를 두른 할머니들이 양배추, 감자, 파 등의 야채를 조금씩 가져 나와 팔고 있었다. 파 한 뿌리를 사며 할머니께 사진 한 장만 찍자고 부탁하자 뽀빠이처럼 파를 불쑥 들어 올리며 포즈를 잡아주신다.

그 사이에 시장 사람들이 몽땅 모여들어 동양인 부부에게 '솰라솰라' 질문을 퍼붓는다. 이제 아내와 난 알고 있다. 이럴 땐 그네 말을 모른다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그들은 모든 언어는 근본으로부터 소통하고 있다고 믿는 듯이 묻고 또 물어올 것이다. 그것이 세상 어느 곳이든 순박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우리에게도 만국 공통어가 있으니, '웃음'이다.

루마니아 시우세아
▲ 동유럽의 시골장 루마니아 시우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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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코리아(에서 왔어요). 하하하. (엄지를 세우며) 루마니아 굳. 하하하, 안녕."

시장을 빠져나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손을 잡아 이끈다. 작은 정원을 가진 집은 깔끔했지만 할아버진 혼자이신 것 같았고 어딘지 모르게 외로움과 궁색함이 배어 있었다. 빵, 소시지, (냄새가 엄청 독한) 치즈, 우유, 과일 등 나그네를 대접하는 손길이 바쁘다. 자리에 앉으며 내게 보드카를 한 잔 권한다. 잔을 드는 할아버지의 손이 심하게 떨리는 걸로 보아 알코올 중독인 모양이었다.

탁자에 놓인 가족 사진을 가리키며 가족은 어디 있냐고 묻자, 아내는 사별하고 자식들은 도시(부쿠레슈티)로 나갔다며 보드카를 마저 비운다. 외로움이 그만 나그네에게도 전해져 가슴이 찌릿해 온다. 그만 일어서려는 우리 부부에게 사과를 싸 주시며 엽서 한 장을 내민다. 꼭 편지를 하라는 손짓과 함께. 엽서에는 '시우세아Ciucea'라고 이 마을 주소가 적혀 있었다.

나포카 가는 길
▲ 거리의 예수 나포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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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 시우세아
▲ 뜻밖의 초대 시골마을 시우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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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포카에 도착해서 외곽에 위치한 캠핑장을 찾아갔다. 캠핑장은 중고차 여행을 떠나고 프라하 이후 두 번째였다. 낮은 산자락에 잔디가 넓은 곳이었다. 샤워장이나 세탁실도 넓고 깨끗했다. 안내 직원의 깔끔한 영어 실력도 마음에 들었다. 우린 그곳에서 2박3일 동안 쉬어가기로 했다.

자동차로 유럽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캠핑장은 아주 좋은 선택이다. 호텔에 비하자면 월등히 싼 가격에 대부분 계곡이나 강, 산자락에 있어 경치도 아주 그만이었다. 뿐만 아니라 샤워장, 세탁실, 취사장, 매점 등 시설도 기대 이상이다.

보통 캠핑장도 호텔처럼 별이 하나부터 다섯까지 매겨져 있는데, 세 개 이상의 경우에는 수영장이 갖추어져 있는 곳도 흔하다. 파리나 베니스처럼 유명한 관광도시에는 도심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아내와 난 독일을 떠나기 전에 반팔 티셔츠를 몇 장 더 구했다. 하지만 점점 더 더워지는 날씨에 에어컨이 없는 애마와 씨름하다 보면 빨래는 쌓여갔다. 그러면 샤워가 간절해지는데 그때마다 캠핑장을 찾아갔던 것이다.

나포카
▲ 캠핑장에서의 하루 나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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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포카에서의 이튿날, 하루 종일 캠핑장에서 뒹굴었다. 오전에는 샤워하고 빨래하고 차 안의 모든 물품들을 끄집어내어 햇볕 아래 널어놓고, 오후에는 잔디밭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 낮잠을 잤다. 그리고 점심에는 스파게티에 달빛을 담은 김치를 먹었다. 당시 우리 부부에게 이보다 더 행복한 시간은 없었다. 

그날 오후였다. 세 대의 차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그들 중 절반의 사람들은 장애인이었다. 휠체어가 내려지고 그들이 움직이는데 그때서야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이곳 캠핑장에는 계단이 없다는 사실. 매점도 샤워장도 게스트용 통나무집도 계단 대신에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경사진 통로가 있었다.

그날 저녁, 사람들은 작은 통나무집 앞에서 의자 혹은 휠체어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카드놀이를 했다. 해가 지며 만들어낸 붉은 기운과 함께 그들의 자리가 참 아름답게 보였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루마니아. 그러면서도 소수자와 더불어 사는 문화를 가진 루마니아. 내가 루마니아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나포카 캠핑장에서
▲ 우리가 루마니아를 사랑하는 이유 나포카 캠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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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양학용 기자는 아내 김향미님과 함께 2003년에서 2006년까지 3년 동안 배낭 하나씩 둘러매고 세계여행을 했습니다. 그 중 유럽에서는 중고차를 타고 6개월 동안 유럽 19개국을 여행했습니다.
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



태그:#중고차여행, #유럽자동차여행, #루마니아, #김치,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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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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