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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과 책, 기자수첩
 명함과 책, 기자수첩
ⓒ 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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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시민기자 명함이 도착했다. 온통 새빨갛게 물든 다소 도발적인 디자인에 약하게 베어나오는 물감(?)냄새. 화투갑을 연상시키는 투명 박스에 250에서 300장 정도 들어있었다. 거기에 선물인지,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라는 책 한권과 기자수첩 두 권까지. 살아오면서 달리 해 놓은 일이 없는 나,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온다. 

시민기자 명함을 받는 조건은 다소 까다롭다(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되거나 3개월 안에 버금이상 기사 5개 이상을 써야하는데, 첫 한달 동안 죽어라고 써 봤지만 메인기사는 달랑 하나. 대체 5개를 언제 채우나,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마침 진행된 촛불집회가 나에겐 기회였다.

한참을 쉬고 6월들어 처음 쓴 '집시법 개정 촉구' 기사가 '으뜸'에 선정된 것을 포함, 그 주에만 메인기사 4개를 달성하며 단박에 명함신청 조건을 채웠다. 뿌듯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이렇게 쉬웠나'하고. 하지만 그 후로 또 다시 빌빌 대며 암흑기를 걷고 있다.
오늘 도착한 명함이 일종의 자극제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잊지 못할 순간들

짧은 기간이었지만 시민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몇몇 잊지 못할 순간들이 있었다. 우선 처음으로 메인에 내 기사를 올렸을 때가 생각난다. 지난 4월 말, 성범죄자 신상공개를 반대하는 취지의 기사를 송고했는데, 놀랍게도 '버금' 등급을 받고 메인면에 당당히 올라갔다. 스스로 신기하고 자랑스러워서 화면을 캡쳐하고 여기저기에 전화를 하는 등 난리를 피웠다.

또한 이 기사는 포털사이트들에 전송되기도 했는데, 특히 싸이월드에서 댓글이 무려 247개나 달리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해 냈다. 하지만 대다수가 악플이었다. 딱히 무섭진 않았지만,'기자놈 얼굴 한번 보자'와 같은 섬뜩한 표현들도 눈에 띄었다

내가 쓴 기사에 달린 악플
 내가 쓴 기사에 달린 악플
ⓒ 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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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감동은 6월 초, 이명박 대통령이 '얼리 덕'에 빠진 상황을 분석한 기사를 올렸는데, 어떤 사람이 오마이뉴스의 '원고료 주기'제도를 통해 나에게 무려 3만원이라는 거금을 입금했다. 그렇게 잘 쓴 기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돈을 받고 보니 돈 보낸 분한테 무척 죄스러웠다. 무엇보다 혹시나 돈이 '오마이뉴스'로 들어가는 줄 잘못 알고  입금하신 게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의심. 나의 친구들 중에 누군가가 격려차원에서 돈을 입금하고 모른 척 하고 수도 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사실 강하게 의심가는 친구가 한 명 있긴 하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마지막으로, 얼마 전 '강철중의 한계, 속편의 딜레마'라는 기사를 메인에 올린 적이 있다. 이 기사 역시 포털사이트에 전송됐는데, 글을 잘 썼다는 댓글이 달렸다. 비록 2개 뿐이었지만, 글을 쓴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기분좋은 칭찬이었다.

내가 쓴 글에 달린 댓글
 내가 쓴 글에 달린 댓글
ⓒ 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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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의 위상에 대해

시민기자는 회사에 소속된 상근기자와는 다르다. 정식 직원도 아니고, 고정급료도 없다. 대신 매 기사마다 기사료가 책정된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오름: 3~5만원
으뜸: 2만4천원
버금: 1만2천원(여기까지가 메인화면에 노출되는 일명 '메인 기사')
잉걸: 2천원
생나무: 없음(정식기사로 분류되지 않음)

여기에 위에서 언급한 '자발적 원고료 주기'로 받는 돈과 우수한 활동을 한 기자에게 주는 상금 등이 더 해진다. 또한 '잉걸'이지만 '버금'이상의 기사에 딸림기사로 붙을 경우 1만원이 지급된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부분의 기사는 2천원 짜리 '잉걸'로 분류된다. 물론 글 쓰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은 높은 등급을 받고 상당한 액수를 벌 수도 있겠지만, 나와 같은 '보통' 시민기자들에게 원고료는 크게 의미가 없을만큼 작다. 나 또한 3개월 동안 지급받은 돈은 14만2천원에 불과하다. 투자한 노력에 견주어 하기 힘든 일임에는 분명하다. 솔직히 열심히 쓴 글이 2천원 짜리로 분류되면 눈앞이 캄캄해 지기도 한다. 

이런 낮은 보상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청해서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자'라는 위상이 가져다주는 뿌듯함에서 찾을 수 있다. 비록 조회수는 적게 나올망정, 일반 게시판에 쓰는 글과 '기자'라는 타이틀이 붙어나오는 기사는 소위 '급'이 다르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일반 게시글보다 훨씬 크고, 그에 따른 기자 스스로의 자부심도 남다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위의 댓글에서 보듯, 사람들은 나를 '기자'로 부르고, 내가 쓴 글을 '기사'라고 부른다. 나르시즘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기자'라는 타이틀은 '내가 주체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나 스스로의 삶을 가치있게 만든다.

또한 내 기사가 끼칠 영향력을 생각해 글을 쓸 때 한층 신중하게 접근하게 되고, 내가 쓴 기사와 배치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게 되는 등 도덕적인 성숙을 꾀할 수 있게 되는 것도 큰 매력이다.

그래서 오늘 받은 한통의 명함은 더욱 나의 어깨를 무겁게 만든다. 부디 이 명함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곳에 올바르게, 또한 현명하게 쓰이기를 나 스스로 다짐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마이뉴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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