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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뮌헨(Munich)의 한낮을 즐기기 위해 뮌헨의 중심가, 노이하우저 거리(Neuhauser Strasse)로 향했다. 우리가 탄 차가 뮌헨역 앞을 지나 소넨 거리(Sonnen Strasse)로 들어서자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소넨 거리에서 노이하우저 거리로 막 들어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경적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서 순식간에 자전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 자전거에 탄 사람은 내 앞을 지나가며 인상을 쓰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 녀석은 내 앞을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방금 전까지 상쾌했던 기분에 심한 불쾌감이 끼얹어지고 있었다.

순간, 독일에서는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 통행을 방해하는 하는 사람도 고발한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지나갔다. 자세히 보니 자전거 신호등도 따로 있었다. 아무래도 그 녀석은 나에게 왜 자전거 도로에 서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독일어를 알아야 그 녀석이 욕을 했는지 알 것이고, 욕을 했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인데, 이래저래 기분이 상했다.

아니, 그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아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야 따지더라도 따지지!"

신영이를 위해 노이하우저 거리 입구의 장난감 가게, 오브레터(Obletter)에 들어갔다. 1825년에 설립된 전통을 자랑하는 장난감 가게였다. 지상 1층과 지하 1층으로 이루어진 큰 장난감 가게인 오브레터는 신영이의 천국이었다. 신영이는 이 가게에서 미니어처 가구들을 샀다. 딸 아이는 이 작은 가구들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할 생각을 하며 너무 행복해 했다. 하지만 나의 머리 속에는 아까 자전거 도로에서 그 녀석이 나에게 뱉었을 말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돌며 마음이 불편했다.

카를문을 지나면 뮌헨의 번화가 노이하우저 거리가 펼쳐진다.
▲ 카를문과 노이하우저 거리. 카를문을 지나면 뮌헨의 번화가 노이하우저 거리가 펼쳐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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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뮌헨성의 성문이었던 카를문(Karlstor)이 보였다. 카를문을 지나면서 신시청사가 있는 마리엔 광장까지 쭉 이어지는 보행자 도로, 노이하우저 거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레스토랑과 쇼핑가가 늘어 선 시내의 큰 길은 다양한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뮌헨 구시가가 다가오자 내 마음은 점점 평상심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 보행자 도로는 내가 본 보행자 도로 중에 가장 넓은 곳 중의 하나였다. 뮌헨시에서 이 넓은 도로를 보행자 도로로 만든다고 했을 때 뮌헨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뮌헨의 가장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현재는 보행자 도로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사람 많은 날에는 서로 어깨를 스치면서 힘들게 지나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인도를 생각하면 참으로 부러운 길이다.

뮌헨은 유럽 내에서도 문화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이 거리에는 거리의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역시 노이하우저 거리 한 가운데에서 현악 4중주단의 수준 높은 거리 공연을 만날 수 있었다. 사복을 입고 샌들을 신은 자유로운 영혼의 연주자들은 한낮의 노이하우저 거리를 풍요롭게 하고 있었다.

문화의 도시 뮌헨은 거리 공연의 수준이 높다.
▲ 노이하우저 거리의 공연. 문화의 도시 뮌헨은 거리 공연의 수준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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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신영이는 이 거리의 바이올린 연주에 발걸음이 멈춰버렸다. 거리 중앙 화단 주변의 여행자들도 철제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거리의 음악을 즐기고 있다. 인상 깊은 것은 길 가던 많은 젊은 남자들이 진지하게 클래식 음악공연을 감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음악의 바탕이 탄탄한 도시, 뮌헨의 젊은이들은 거리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아내의 눈에 칼슈타트(Karstadt) 백화점이 들어왔다. 독일 전역에 120여개 매장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대표적인 백화점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백화점 체인이다. 1881년에 독일 바이마르(Weimar)에서 처음 설립된 역사를 가진 이 백화점은 한국 사람들이 독일에 오면 꼭 들르게 되는 백화점이다.

실용적인 제품이 많은 독일 최대의 백화점 체인이다.
▲ 칼슈타트 백화점. 실용적인 제품이 많은 독일 최대의 백화점 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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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큰 불곰 인형이 고객을 반기는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 백화점 입구에는 현재 세일 중이라는 뜻의 'SAL€'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신영이는 'SALE'의 'E'를 유로화를 뜻하는 '€'로 표기해 놓았다며 키득거리며 웃었다. 호기심이 많은 어린 신영이는 유럽의 화폐단위가 '€'인 것을 유럽여행을 통해서 배우고 있었다. 

독일의 백화점은 우리나라 백화점과 달리 값비싼 명품을 판매하는 구역이 없었다. 나는 백화점 내부에서 파는 제품들이 우리나라 제품들과 전혀 격차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우리나라 제품과 다른 것은 제품에 반영된 디자인의 깊이이다. 1970년대 풍의 향수를 일으키는 디자인과 함께 젊은 감각의 모던한 디자인이 생활용품의 여기저기에 물씬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빠! 엄마 어디 갔지? 안 보이는데?"
"거리 구경하다가 헤어지면 백화점 정문 앞에서 보기로 했으니까. 좀 더 구경하다가 정문으로 가 보자."

나는 뮌헨에서 생산되는 '한바그(Hanwag)' 등산화를 백화점 내부의 스포츠 용품관에서 군침을 삼키며 한동안 구경했다. 나는 딸과 함께 백화점 정문으로 가 보았지만 아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백화점을 나와서 노이하우저 거리의 한 교회에 들어갔다.

관광객이 없는 교회 안에서 신자들이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백화점으로 가서 백화점의 2층, 3층까지 모두 찾아보았지만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딸의 손을 잡고 다시 백화점 정문 앞으로 가 보았다. 아내가 태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칼슈타트 백화점 맞은편에는 컴퓨터, 카메라 등을 파는 미디어 백화점 '새턴(Saturn)'과 함께 생활용품을 파는 헤르티(Hertie) 백화점이 문을 열고 있었다. 그런데 과거의 내 기억과 달리 이 백화점들은 오후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었다. 백화점과 대형 상점들이 영업시간을 이렇게 연장한 것은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개혁의 산물이다.

독일의 개성있는 맥주잔으로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 비어슈타인 맥주잔. 독일의 개성있는 맥주잔으로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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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의 기념품 가게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실용제품들이 많은 독일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특이한 것은 맥주잔만 전문으로 파는 기념품 가게다. 이 가게에서 파는 맥주잔 중에는 유리컵은 없고 도자기 맥주잔과 부조로 돋을 새김된 주석잔이 있다.

도자기 맥주잔 중에서 여닫는 뚜껑이 달린 도자기 맥주잔이 바로 독일의 가장 유명한 맥주잔, '비어슈타인(Bier Stein)'이다. 이 맥주잔의 백랍으로 만든 뚜껑은 1400년 경 독일에 들끓던 파리 떼가 맥주잔 속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겨났다고 한다.

'비어슈타인' 맥주잔은 도자기 기술 발전으로 다양화된 디자인과 그림이 총천연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들은 수작업으로 그려져 있어서 한결 운치가 있다. 이 맥주잔은 그 외부를 아름답게 마감한 하나의 예술품이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맥주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의 수준은 천차만별이고,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의 '비어슈타인'은 판매가격이 꽤 높았다.

사실, 뮌헨을 대표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맥주다. 뮌헨은 매년 가을에 맥주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맥주를 사랑하는 도시이다. 그래서 노이하우저 거리의 노천카페에도 뮌헨의 유명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는 맥주 한 잔이 우리 부부를 유혹하고 있었다.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은 여행을 여유롭게 한다.
▲ 뮌헨 노천카페 도니즐.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은 여행을 여유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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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시청사 서편에 자리 잡은 노천카페에 들어가서 시원한 맥주를 맛보기로 했다. 우리는 그 이름 유명한 노천카페, 도니즐(Donisl)에 자리를 잡고, '아잉거(Ayinger)'의 백맥주 '바이스비어(Weissbier)'를 주문하였다. '바이스비어'는 1886년 이곳 독일 바바리아의 에딩(Erding) 마을에서 만들어진 독일 최고의 밀맥주이다. 우리 자리 주변에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앉아 여름 한낮의 여유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독일여행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바이스비어'를 마시고 있었다.

맥주를 마시지 못하는 어린 딸 신영이는 카페 바로 앞의 마리엔 광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에 빠져 있다. 신영이를 데리러 카페의 자리를 떴다가 나도 잠시 공연을 구경하였다. 잠시 후 심심해진 아내도 나를 따라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바쁘게 움직이는 카페 매니저가 맥주 값 계산 안 한 우리의 행방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우리가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자 카페 매니저가 우리를 보고 싱긋 웃었다.

여름날, 이보다 더 시원한 것은 없다.
▲ 뮌헨의 백맥주 바이스비어(Weissbier). 여름날, 이보다 더 시원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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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름날 뮌헨의 노천카페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는 맥주 한 잔도 취하는 모양이다. 맥주를 잘 마시지 못하는 아내의 볼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알코올에 취하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머리 속에 생각나는 법이다. 내 머리에 생각나는 아내는 내 눈 앞에 있었고,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신영이는 뮌헨의 광장에서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7월말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뮌헨, #노이하우저 거리, #노이하우저 슈트라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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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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