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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가 일깨운 '꽃'

 

 

'미국산 쇠고기'로부터 촉발된 촛불문화제는, 한편으로는 강력한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다. 시위참가자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계기로 한자리에 모였지만, 그들의 성토 대상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만은 아니다.

 

'각종 공공부문 사유화'와 지나침의 선마저 넘어선 '비지니스 프렌들리' 논리 속에서 느끼는 생존의 위협, 부패와 거짓의 상징으로 변해버린 '보수정치'와 '조중동'에 대한 문제제기 등, 대한민국 사회 전반의 부조리를 거론하는 '만민공동회' 성격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조중동'과 경제신문의 오랜 인상 유도로 인해 시위나 파업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주로 내놨던 한국인들의 인식 자체도 바뀌고 있다. 최근 시민들은 다름아닌 '화물연대'의 파업에 호의를 넘어선 진심어린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라.

 

생존권 자체를 위협받는 그들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는 것도 주목할만 하지만, 화물연대 측도 "미국산 쇠고기 운송 거부 선언"으로 인해 시민사회가 깊이 공감할만한 연대의 신호를 보낸 것도 메가톤 급이다. 촛불문화제 전반에 걸쳐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갈가리 찢겨졌던 '시민=노동자'의 공식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으며, 시위 과정 전반에서도 '비폭력'의 명분을 중시하는 가운데 가끔씩 돌출됐던 오류를 스스로 고쳐나가고 있다. 게다가, 그 과정 역시 '난상토론'으로써 직접 민주주의의 원칙을 확인시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칭 보수'들이 아무리 승합차에 가스통을 메달고 돌진하더라도, '조중동'이 끊임없이 트집을 잡아도 해외언론에서도 주목할 정도로 놀라운 과정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 시위참가자들에 대해서는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까지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을 정도인데 더이상 무슨 이야기가 필요할까. 이제 우리가 그 반응을 주목해야 할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시위참가자들 사이에서 '이명박 하야'는 대세처럼 자리잡은 구호다. 

 

물론, 일부 시민들은 이 '이명박 하야'라는 구호에 대해 "당신들 스스로 투표를 통해 뽑아놓고 이제 와서 '하야'를 요구하니 반민주적"이라는 주장도 내세운다. 하지만, 국민의 참정권을 위임받은 입장에서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 정책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세우는 통치자를 향해 목소리를 내세우고, 그 목소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경우엔 더욱 강한 구호로 나서는 것이 왜 '반민주적'일까?

 

그렇게 따지면 4·19 혁명도 반민주적일 수 밖에 없다. 해외에서 자주 목격하는 '정권 퇴진 시위'도 반민주적이라는 이야기 밖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은 해외의 이야기가 있다.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이야기다.

 

2008년 대한민국이 참고하기 좋은, 프랑스의 CPE 사태

 

극우파 장 마리 르펜을 몰아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연대' 덕분에 좌파들까지 지지운동에 나서 결선투표에서 82%를 득표한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그가 '우파'였으며 현재의 대통령인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그의 휘하에서 내무장관을 역임했다는 것을 기억하라. 자크 시라크도 당선 이후 강도높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2006년 1월, 당시 총리였던 도미니크 드 빌팽은 기회균등법 제 8조, 이른바 '최초고용계약(CPE:Contrat Premiere Embauche)'의 도입을 시도한다. 이 조항은 일종의 '비정규직 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26세 이하의 피고용인은 수습기간 2년 동안은 정당한 이유 없이도 고용인이 쉽게 해고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 이전에는 '해고 입증 책임'을 고용인에게 부여했던 것과는 달리, 그 관계를 역전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학생과 노동자, 심지어 교사들까지 강력하게 반발했다. 참고로 프랑스의 중고교 고사들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érieure)' 출신으로써 프랑스 사회 최고의 엘리트로 평가받는다. 유명 철학자 미셸 푸코와 장 폴 샤르트르도 이 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서 교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듯 연일 이어진 시위에서 주최 측 집계 300만, 프랑스 경찰 측 집계만으로도 100만이 넘는 인파가 꾸준히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에 나섰던 것이다. 그들은 프랑스 경찰의 강력한 진압으로 인해 유혈충돌사태까지 빚어졌음에도 망설이지 않고 거리로 나와 CPE의 전면 철회를 요구했던 것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까지 나서 2006년 3월 31일에 "수습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해고 사유 설명도 의무화하도록 하겠다"는 수정안을 제시했음에도 시위대는 법안의 완전 철회 요구 입장을 지속했다. 뭔가 비슷해보이지 않는가?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관철시키는 시위참가자들을 향해 온갖 꼼수를 다 동원해가면서 '추가협상'이라는 표현을 활용하는 이명박 정부의 이미지가 겹치는 것 같다.

 

당시, 프랑스의 시위참가자들은 경찰의 곤봉과 최루탄에도 불구하고 보도블럭을 깨가며 시위를 유지시켰고 뿐만 아니라 두 달 넘게 수백만의 인파가 거리로 나와 학생과 노동자의 연대를 굳건히 유지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학생과 노동자로도 모자라 야당까지 합세해 굳건했던 시민사회의 연대가 무너지지 않자 결국 항복했던 것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였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2006년 4월 10일에 "곤경에 처한 젊은이들의 취업에 유리하게 대체하기로 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애초에 법안의 주도자였던 도미니크 드 빌팽의 제안에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 흥미롭다.

 

도미니크 드 빌팽 역시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 성명은 국내언론에는 그다지 자세히 보도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시위주도세력 중 하나였던 프랑스 대학생연맹의 대표 줄리 크드리의 "최상의 가능한 조건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대학 봉쇄를 풀 것"이라던 발언과도 연계해야 한다. 도미니크 드 빌팽의 당시 성명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신속한 행동과 강력한 해결책을 희망했다. 모든 이에게 두루 이해되지 못한 점이 유감스럽기는 해도 여전히 내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 신념으로 인해 시민사회의 연대가 무너지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프랑스가 분열되는 것은 옳지 않다."

 

국내언론에는 잘 보도되지 않았던 당시 프랑스의 상황 중 하나는, 프랑스의 일부 대학 예비졸업생들은 시위가 지속되면서 '학교 봉쇄'가 이어지고, 그에 따라 수업의 정상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자 졸업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시위는 좋은데 우리도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입장을 제기했다가 시위 주도 세력 측과 심각한 갈등이 유발됐던 것이다.

 

도미니크 드 빌팽은 '유감' 표명 정도의 입장만 내비친 채 적어도 CPE에 대해서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끝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잘못했다"는 입장을 제시한 부분은 다름아닌 "나로 인해 시민사회가 분열할 뻔 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 분열 가능성은 내 불찰'이라던 프랑스 총리, 이 대통령은?

 

 

여기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를 저술하면서 로마제국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를 호의적으로 조명하는 관점이다. 사실, 티베리우스는 독일 역사가 크리스티안 몸젠이 '가장 훌륭한 황제 중 한 명'으로 평가하기까지 폭군으로 평가받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 관점을 그대로 이어받았는데, 여기에는 시오노 나나미가 '일본인'이라는 태생적 조건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일본의 정치도 부정부패와 시대를 역행하는 흐름으로 악명이 높다. 흔히 눈높이를 아래로 맞추다가 그 눈높이를 조금만 올려도 더 높아보인다는 착시 현상을 기억하라. 시오노 나나미가 티베리우스를 높이 평가한 관점에는 그런 태생적 조건이 엿보이는 것이다.

 

논란은 분분하겠지만, 어쨌든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조차도 '교묘한 눈속임'을 활용하면서까지 '파트너'인 척 행동했던 원로원을 전면 배제하면서 섬에 틀어박혀 시민들과의 접촉도 꺼렸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 분열 가능성"에 대해 사과했고 그에 따라 정치적 타격을 입음으로써 대권의 꿈을 포기하고 총리 직에서 물러났던 도미니크 드 빌팽이 우리로서는 신선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프랑스인들은 "공직자라면 그건 당연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프랑스 사회가 '완벽하다'고 주장하진 않겠다. '완벽한 사회'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의 '연대의 원칙'에 깊이 반응하는 정치인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반면에,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 1만개는 누구의 돈으로 샀느냐"는 주장을 내세웠고 최대 인파가 몰린 시위에 대비해 '명박산성 구축'을 묵인했다. 오히려 시위참가자들을 자극함과 동시에 '주사파 발언' 논란에 노출된 바 있다.

 

"내 신념으로 인해 시민사회의 연대가 무너지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프랑스가 분열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사과 성명을 발표했던 도미니크 드 빌팽, "촛불 1만개는 누구의 돈으로 샀느냐"고 물었다던 이명박 대통령, 비교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참고로, 도미니크 드 빌팽은 여전히 프랑스 내에서 대단히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연대 분열'로써 기득권 유지하는 자칭 보수세력

 

'조중동'을 비롯한 '자칭 보수' 세력은, 여전히 시위로 인한 '교통체증 논리'를 내세우는 가운데, 보수단체는 시위에 반대한다면서 승합차에 가스통을 메달고 폭주하는 극단적인 폭력까지 내세운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 폭력을 휘둘렀던 보수단체 회원들의 '과거 공로'에 대한 지원금 제도는 그들이 '좌파 정권'이라고 비난하기에 여념없는 그 '잃어버린 10년' 동안 정착됐으며, 그들이 "대통령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를 외치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나라당은 그 제도에 반대했던 정당이라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분열 가능성에 책임을 느끼는 '보수'도 있지만, '좌파 정권'이 지원금 제도를 마련했으면서도 폭력적인 주장을 늘 내세우는 '자칭 보수'들도 있음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상식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느냐는 것이다. 과연 '자칭 보수'들이 '상식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글쎄,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참고로, '조중동'과 경제신문은 당시 프랑스의 CPE 사태도 '비정규직 법안'을 옹호하는 측면에서, 시위참가자들의 경찰과의 맞대응 과정만을 주목했다.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논제 사이에서의 논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위에 나선 이유, 즉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과연 그 '본질'을 살펴본다면, 이명박 대통령 측과 '자칭 보수'들은 얼마나 명쾌한 설득력을 내세울 수 있을까? 불가능하진 않을까? '이명박 하야'라는 목소리, 그래서 식을 줄 모르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간이 난다면 2년 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CPE 사태, 특히 도미니크 드 빌팽의 대처를 눈여겨봤으면 좋겠다. 그속에 이명박 대통령의 선택이 숨어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이명박, #명박산성, #촛불 대 명박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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