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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참가자들이 거리에 있는 동안 싸우는 대상은 비단 '이명박'과 '경찰 병력'만은 아니다. 주변부 요소, 즉 날씨와 배고픔도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여름이 아니라서 그런지 새벽이 되면 여전히 춥다. 그리고, 배고프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순간 가장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초코바를 자주 챙겨가는 편이다.

그런 부담을 걱정했기 때문일까? KBS 본관 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이던 시위참가자들이라면 근처에 주차돼 있는 용달차 한 대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용달차 맨 위에 써진 문구도 인상적이다.

"내가 쏜다 Friends 돈은 니가…."

KBS 본관 앞, 커피와 라면을 끓여 나눠주는 자원봉사를 하던 '다인아빠'의 용달차
 KBS 본관 앞, 커피와 라면을 끓여 나눠주는 자원봉사를 하던 '다인아빠'의 용달차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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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달차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시위 도중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까? 그 용달차의 위에서, '다인아빠'는 시위 참가자들의 추위와 허기를 채워주고자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무료'로 나눠주는 커피와 생강차

커피와 라면을 끓여나눠주던 '다인아빠'
 커피와 라면을 끓여나눠주던 '다인아빠'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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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아빠'와 그를 돕기 위해 손을 걷어붙인 사람들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커피와 생강차를 끓이고자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와중에 뜨거운 물을 쉴새없이 끓이면서 그의 이마에 구슬땀이 끊임없이 흐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피곤같은 것은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가 왜 '다인아빠'일까? 간단한 인터뷰를 거치면서 그의 이름도 묻고자 했지만, 그는 한사코 이름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다인'은 그의 여섯살 먹은 딸아이 이름이며, 생중계 사이트 '아프리카'에서의 대화명이 '다인아빠'라고 한다.

궁금했다. 그가 그렇듯 따뜻한 정이 넘치는 봉사를 하게 된 이유 말이다.

"6월 1일이었던가요. '라쿤'님의 '아프리카' 생중계 방송을 보던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시작했어요."

6월 1일이라면 경찰의 과잉진압이 가장 극심했던 그날이다. 시위 참가자들의 숱한 자유발언들을 돌아보면 상당수가 '6월 1일'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의 과잉진압이 그때만 해도 시위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인아빠'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방송의 당사자 '라쿤'도 그 근처에서 여전히 '생중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비와 후원금 모아 '라면'까지...

커피와 생강차를 나눠주던 '다인아빠', 하지만 지난 13일 밤부터는 더 큰 결심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추위 못지 않게 허기와 싸우는 것을 생각하며 즉석에서 라면을 끓이기 시작한 것이다. 좁은 용달차 안에서 그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만들어내는 마술은 커다란 종이컵 속에서 군침 돌게 익은 '라면'으로 태어났다.

그 자리에서 끓인 라면만 해도 500개 이상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용달차 근처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이 일회용 가스레인지와 냄비를 이용해 그를 보조하고 있었다.

'다인아빠'와 자원봉사자들이 끓이는 '라면'
 '다인아빠'와 자원봉사자들이 끓이는 '라면'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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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는 그저 라면 봉지 속 내용물만 들어 있지 않았다. 커다란 버섯 조각과 잘 익은 김치 등, 그의 정성이 한껏 느껴진다.

"어제(13일 밤에서 14일 새벽)는 60만원 가량 들었는데, 오늘은 150만원 이상을 쓴 것 같아요. 제 사비에 '다음 아고라'에 도움을 요청해 후원받은 돈으로 끓인 라면이에요. 제가 이 인터뷰 왜 하는 줄 아세요? 아무래도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아서요."

기사를 통해 누군가의 광고를 해본 적이 없는 나, 그의 '도움 요청'으로 그 금기를 깨본다. '아프리카' 사이트에서 대화명 '다인아빠'를 찾는다면 그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독자 여러분 중에서 생각이 있으신 분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다인아빠'의 라면과 '음식갤'에서 보내온 김밥

'다인아빠'와 자원봉사자들이 라면을 끓이기 이전엔, 디씨인사이드 '음식기타갤러리' 회원들이 김밥과 생수를 보내왔다. 모자라지 않게 넉넉히 보내온 것 같았다. 그들의 정성으로써 KBS 본관 앞 시위참가자들은 든든한 밤참을 먹을 수 있었다.

디씨인사이드 '음식기타갤러리' 회원들이 KBS 본관 앞 시위참가자들에게 보내온 물과 생수
 디씨인사이드 '음식기타갤러리' 회원들이 KBS 본관 앞 시위참가자들에게 보내온 물과 생수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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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참을 먹고 시위참가자들은 여전히 '자유발언'을 통해 격론과 노래를 쏟아낸다. 즉석에서 쏟아졌던 그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음미해보자.

"강경진압을 보고 너무 화가 나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대구에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100분 토론'을 보니 한나라당은 '소통' 핑계를 대던데 그게 더 화가 나더라. 소통이 문제가 아니다. 잘못을 알면서도 숨기는 건지, 정말 모르는지 그게 아리송하다. 우리는 이 촛불문화제를 목표 달성 때까지 즐기면서 하자."

"'중앙일보'를 보다가 절독했다. '조중동'에 속은 것을 알고 나니 화가 나더라."

"이명박이나 쇠고기뿐만이 아니라 자칭 '보수세력'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 이 자리에 나왔다."

"우리는 정연주 개인을 지키러 나온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이명박의 낙하산 인사'에 의해 정연주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 됐지만 '본질'을 잊지 말자. 참가자 개개인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활이 무엇인지 찾는 것도 중요하다."

"사안별로 매번 이렇게 장소를 바꿀 것이냐. '언론문제'가 터져서 KBS 본관에 오게 된 것인데, '상수도 민영화' 문제 터지면 수자원공사 앞에서 시위할 것인가. 제일 실용적인 것은 '이명박 하야'다."

광화문 새벽 현장, 경찰의 허 찌른 시위참가자들

몸은 KBS 본관 앞에 있었지만, 마음은 나 자신을 2개로 나눴다. 광화문 시위현장에 있던 지인과의 문자메시지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상황 정보를 얻다가 새벽 3시경에는 아예 광화문으로 건너갔다.

지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던 통화가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점, KBS 본관 앞은 별다른 이상이 없을 것이란 점을 믿고 광화문으로 건너간 것이다. 이상한 것은, 확실히 '일요일 새벽'에 인상적인 경찰 진압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 악명높은 6월 1일도 '일요일'이었다.

15일 새벽에 있던 '경찰 진압'은 수위가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찌감치 나섰다는 점이 의미심장했다.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나 광화문에서나 일부 시위참가자들은 농담 섞어 이런 이야기까지 했다.

"'각하'께서 '새벽기도' 드릴 시간이라 그런 것 아니냐."

세종로 네거리에서 '횡단보도 시위'를 벌이는 시위참가자들
 세종로 네거리에서 '횡단보도 시위'를 벌이는 시위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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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현장을 가보니 시위참가자들은 인도로 완벽하게 밀린 상황, 그중의 일부는 '횡단보도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경찰 병력이 하나하나 철수하던 광경을 보고 일부 강경 시위 참가자들이 그 허를 찌른 것이다. '무단횡단'을 감행하면서 순식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앞까지 뛰어갔다.

경찰도 깜짝 놀라 급하게 잔여병력을 동원해 포위대형을 만들었다. 다행히도 우려했던 상황은 오지 않았지만, 시위 참가자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이명박 아웃" 등의 구호를 목청껏 내지른다.

병력을 이끌던 경찰 간부 한 사람은, 카메라를 들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을 차고 있던 내 모습을 어떻게 본 것인지, 순간 나를 쳐다보며 '하소연'한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잠도 안 잔답니까?"

뭐라 해줄 말이 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위 참가자들도 자제한 편이었다. 1시간 가량 연좌시위를 벌이다가 점차적으로 해가 뜨면서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 '장기전'이 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글쎄, 이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아참, '새벽기도'는 무사히 드렸을까? 일부 시위참가자들이 무척이나 궁금해하더라.

기습적으로 이순신 장군 동상 앞까지 진출해 연좌한 시위참가자들
 기습적으로 이순신 장군 동상 앞까지 진출해 연좌한 시위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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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본관 앞 시위의 의미

최근의 촛불시위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이슈의 범위를 확장시켰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언론계 낙하산 인사'에 반발해 KBS 본관 앞에서 촛불시위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시발점은 '쇠고기'였지만,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인 정책 모든 것이 문제로 작용했으며, 시위참가자들의 이슈 대처 범위도 그에 따라 확장된 것이다.

게다가, 거짓과 왜곡을 일삼는 언론은 국민의 손으로 직접 단단히 혼을 내주고 권력의 부당한 압력도 직접 차단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보인 것이다. 언론 불신은 결국 "우리 손으로 '왜곡된 언론의 탄생'을 막자"는 다짐을 일궈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귀를 여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봉고차에 가스통을 메고 돌진하더라도 굴하지 않는 촛불민심 아닌가. 부탁이다. 제발 '척'이라도 해달라.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조심스레 이야기해본다. '척'이라도 해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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