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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값이 2주일 만에 2.5% 넘게 올라 갤런당 4달러에 육박했던 5월 28일, 기자가 거주하는 해리슨버그의 한 주유소. 지금은 4달러를 넘어섰다.
 기름 값이 2주일 만에 2.5% 넘게 올라 갤런당 4달러에 육박했던 5월 28일, 기자가 거주하는 해리슨버그의 한 주유소. 지금은 4달러를 넘어섰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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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셋 있는데요. 데이트하러 나갈 때 차를 못 가지고 나가게 해요. 기름값이 너무 비싸니까요. 대신 남자친구더러 우리 집으로 와서 데리고 가게 해요." (미겔, 플로리다)

"외식도 줄였어요. 이제는 웬만하면 모두 홈메이드로 해결하려고 해요. 홈메이드 햄버거, 홈메이드 프렌치 프라이즈, 그리고 맥주 대신 콜라를 마실 거고요." (케이티, 새크라멘토)

"그동안은 중산층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비싼 기름 값 때문에 그냥 월급 받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기름값이 오르면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이젠 채소도 직접 길러 먹고 고기도 양을 제한해야 할 것 같아요. 올 여름에는 어디에도 안 가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거예요. 아이들에게도 왜 우리가 집에 있는지를 설명해야겠지요." (제나, 네브라스카)

브라이언 윌리엄스가 진행하는 NBC-TV <나이트리 뉴스(Nightly News)>에 나온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이들은 지난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미국 현충일) 연휴 때 치솟는 기름 값이 연휴에 영향을 줬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응답했다. 기름과 관련해 대답하는 사람들 모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꽃 대신 기름으로 청혼하는 남자!

비싼 기름 값 때문에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종종 TV 코미디 프로나 일간지 만평에도 등장한다. 최근에 나온 신문 만평 가운데 웃음을 자아냈던 것은 바로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하는 장면이다.

"사랑합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가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자에게 무엇을 건네고 있을까. 장미꽃 한 다발? 달콤한 초콜릿? 아니면 고급 스포츠카?

모두 아니다. 여자에게 건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기름 한 통'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기름을 본 여자의 반응이다. 여자 역시 남자가 건넨 뜻밖의 프러포즈 선물을 받고 난 뒤,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한다.

"오, 프랭크, 멋져요."

만평인 만큼 그저 웃고 넘어갈 일이긴 하지만 기름 한 통에 마음이 쏠리는 여성의 심정이 바로 최근에 기름 값 폭등을 겪고 있는 이곳 사람들의 심정일 것이다.

최근 한 미국 신문에 실린 만평. 남자가 꽃 대신 기름(Gas)으로 프러포즈하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기름 값으로 고민하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최근 한 미국 신문에 실린 만평. 남자가 꽃 대신 기름(Gas)으로 프러포즈하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기름 값으로 고민하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 DNR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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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등장한 스쿠터... '공짜 기름'이 최고야!

"엄마, 저 아저씨 좀 봐. 우리나라 생각나."

바로 엊그제, 집 앞에 있는 1차선 도로로 나갔을 때 작은 스쿠터를 보았다. 미국에 와서 처음 보는 스쿠터였다. 딸아이는 한국에 살 때 이따금 보았던 스쿠터를 다시 보게 되자 한국의 한적한 시골길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런 스쿠터의 등장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지난 6월 2일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기름 값이 오르면서 전국적으로 스쿠터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고 한다. 뉴욕 같은 대도시 역시 기름을 조금만 먹는 작은 스쿠터가 인기라고 한다. 그래서 스쿠터 판매량이 2008년 1/4분기 동안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이런 증가 추세는 기름 값이 갤런당 4달러가 되기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근에 소비자들의 고개를 번쩍 들게 할 만한 매력적인 두 단어는 무엇일까? 'Get Rich(부자가 되세요)?' 아니면 'Lose Weight(체중을 줄이세요)?' 둘 다 아니다. 바로 'Free Gas(공짜 기름 넣으세요)'다.

은행이나 호텔, 골프채 회사 등과 같은 기업에서 내놓고 있는 판촉 상품은 바로 공짜 기름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판촉 상품을 대신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공짜 기름이 기름 값 노이로제에 걸린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유명 골프채를 생산하고 있는 캘러웨이. 이 회사는 특정 드라이버를 사면 100달러짜리 주유권을 선물로 준다. 호텔스닷컴(hotels.com)은 이 사이트를 통해 3박을 예약하는 손님들에게 50달러 주유권을 주기도 한다. 한편 자동차를 타고 온 고객들에게 자동차 기름을 채워준다고 유혹하는 호텔도 있다. 미네소타 웨이자타에 있는 TCF 은행은 새로 계좌를 트는 고객들에게 50달러짜리 주유권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기름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서 기름 값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눈물겹다. 해리슨버그에 사는 제임스씨. 그는 부인인 데브라와 출퇴근 시간이 다르지만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카풀을 시작했다.

카풀 차량은 아내가 모는 소형 승용차인 시빅. 자신의 밴보다 연비가 좋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다. 이들 부부는 될 수 있으면 차가 막히지 않는 이른 시간에 출근하고, 기다렸다가 함께 퇴근하면서 기름 값을 아끼고 있다. 사실 이들 부부의 근무 시간과 일터는 다르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살인적인 기름 값을 생각하면 그깟 불편함 정도는 서로 참을 수 있다는 반응이다. 

이들 부부는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한 방안으로 자신의 자녀들이 절대로 스쿨버스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원래 시간보다 3, 4분 먼저 아이들을 내보낸다.  

기름 값이 오르면서 스쿠터가 거리에 다시 등장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
 기름 값이 오르면서 스쿠터가 거리에 다시 등장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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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더 올려야 한다고?... "대중교통 쇄신 계기 삼아야" 지적도

치솟고 있는 기름 값 때문에 이곳 사람들이 벌벌 떨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곳 해리슨버그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데일리뉴스 레코드(DN-R)>에는 "기름값, 아직도 낮아. 그러니 우는 소리 그만해"라는 무서운(?) 독자 편지가 실리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격으로 "천만에, 기름값이 낮다고? 네가 그렇게 부자야?"라는 내용의 반론 기사도 실렸다. 

하지만 고유가 파동을 지켜보면서 이번 위기가 오히려 미국을 새롭게 할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자가 만나 본 라킹햄 카운티 주민인 스티브. 그는 미국의 기름 값은 결코 비싼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름값이 4달러를 넘었다고 아우성이지만 사실은 더 올려야 해요. 적어도 5달러는 되어야 해요. 왜냐하면 유럽의 비싼 기름값에 비하면 미국은 아직 멀었기 때문이죠."

그가 설명하는 각 나라의 갤런당 기름값을 보면 영국은 8.74달러, 프랑스는 8.93달러, 네덜란드는 9.89달러(한국은 7.38달러)다. 이에 비해 미국은 그 반값도 안 되는 4달러인 만큼 앞으로 5달러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게 스티브씨의 전망이다. 그는 왜 여느 미국 사람과 달리 기름값이 더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까.

"기름값이 비싸야 사람들이 비로소 대중교통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이곳 해리슨버그에도 트랜지트(Transit)라고 하는 시내버스가 있긴 하다. 하지만 운행 간격이 너무 굼뜨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직접 가는 게 아니고 뱅뱅 돌아가기 때문에 트랜지트를 타게 되면 보통 승용차로 가는 데 드는 시간보다 3, 4배가 더 걸린다. 그러니 다른 수가 없는 경우가 아니면 시내버스를 잘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인도(人道)가 거의 없다. 물론 최근에 개설된 차도에는 인도가 갖춰진 경우가 있지만 많은 경우 오래된 도로에는 인도가 없다. 그러니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시스템상의 문제도 있다.

이처럼 승용차 운행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제도를 탓하면서 스티브는 대중교통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기름 문제가 대단히 심각한 만큼 지금이야말로 대중교통의 개선과 쇄신을 위한 적기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승용차나 트럭 등을 몰면서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현재의 고유가 정책 때문에 한숨이 깊어지고 있는 만큼 기름과 벌이는 미국 사회의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태그:#유가 폭등, #기름 값, #대중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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