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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반시장, 반기업' 표현이라면서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에 건넨 '교과서 수정안' 가운데 상당 부분이 교과서 앞뒤 내용을 감춘 채 입맛에 맞는 부분만 뽑아낸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또한 이 같은 대한상의 수정안을 교과부로부터 건네받은 해당 교과서 집필자는 9일, "그 쪽의 의도(대한상의와 교과부)에 맞춰준 것 같다"라고 말해 교과서 수정 사실을 시인했다.

 

상의가 꼽은 대표수정안 절반 이상이 '이상하네'

 

현재 교과부는 대한상의가 건넨 337개 수정안을 경제, 사회, 역사 교과서를 낸 출판사와 필자들에게 넘겨 '사실상 수정 강요 행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교조 참교육실은 대한상의가 지난 3월 31일 '대표적인 원문 오류 사례'라면서 보도자료에까지 따로 뽑아놓은 42개 항목에 대한 반박 분석결과를 최근 내놨다. 반박 내용을 보면, 일부를 발췌해 내용을 오도하거나 편파적인 왜곡 사례 등을 보인 대목으로 28개 항목이 지목됐다.

 

대한상의는 자료에서 "일반적으로 경제 안정면에서 계획 경제가 시장 경제보다 우위라고 한다"(<고교경제>, 천재교육 간행, 47쪽, 사진)라는 교과서의 한 문장만을 끄집어낸 뒤 '반시장'이란 꼬리표를 붙였다.

 

하지만 이 내용 바로 뒤에는 "그러나 구소련에서도 극심한 소비재 부족으로…내부 실상을 볼 때 실업 상태와 마찬가지다"라는 계획 경제에 대한 매서운 비판 내용이 세 문장이나 실려 있다. 일곱 문장이나 차지한 앞 문장도 "능률을 향상시킬 소지나 의욕을 없게 한다"라는 등 계획경제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대한상의는 필자가 '계획 경제'를 비판하기 위한 장치로 설정해 놓은 단 한 문장만 따로 떼내 '반시장'이라 비판해 '짜깁기' 행태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교과서의 문제 대목을 집필한 전홍렬 춘천교대 교수(사회과교육)도 "한 문장만을 떼어내 교과서 맥락과 정반대로 해석한 것은 불만이며 단견"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그 쪽(대한상의와 교과부)의 의도대로 해당 내용도 맞춰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어 어떤 글귀로 바꿨는지는 말할 형편이 못 된다"라고 덧붙였다.

 

비판 위한 전제 문장 갖고 정반대 내용으로 왜곡

 

대한상의가 문제 삼은 다음과 같은 내용도 비슷한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화와 결합한 자유 무역의 확대 등으로 인해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고교경제>, 대한교과서 간행, 43쪽)

 

하지만 이 내용은 한 문장을 반 토막 낸 것이다. 원래 문장은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경제 정책은 효율성 향상과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는 면은 있지만, 정부의 복지 지출 감소, (세계화와 결합한 자유 무역의 확대 등으로 인해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로 되어 있다.

 

교과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을 먼저 서술한 뒤, 이어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대한상의는 긍정 서술 부분을 보도자료와 건의문에서 숨긴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가 지적한 또 다른 내용인 "지나친 경제 활동의 자유는 심한 소득의 불평등을 가져와 계급 간의 대립을 격화시켰다"(고교경제, 대한교과서 간행, 40쪽)라는 내용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바로 앞부분에 시장경제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설명한 대목이 대한상의가 문제로 꼽은 내용보다 5배 가량이나 더 많이 적혀 있었던 것.

 

전교조 "도덕성 망각"...대한상의 "꼬투리 잡기"

 

천희완 전교조 참교육실장은 "대한상의는 보수적인 필자들이 쓴 친시장 내용의 교과서까지 극히 일부분을 발췌한 뒤, '반시장'이라는 주장을 펼쳤다"라면서 "이는 교과서 원문의 맥락을 왜곡한 것일뿐더러 학문적 도덕성도 망각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진경천 대한상의 과장은 "우리가 낸 수정안의 줄기를 보지 않고 일부 내용을 꼬투리 잡아 벌이는 역공"이라면서 "지면관계상 뺀 부분을 의도적인 짜깁기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말"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민병관 교과부 교과서선진화팀장은 "교과서 수정 결정을 하는 곳은 교과부가 아니라 출판사와 필자들"이라면서 "교과부는 대한상의 수정안 내용의 문제 여부와 상관없이 가급적 드라이하게 행정 처리만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교과부에 교과서 수정을 공식 요구한 단체는 대한상의가 유일하다"라고 민 팀장은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교조에서 발행하는 주간 <교육희망>(news.eduhope.net)에 쓴 내용을 상당부분 깁고 더한 것입니다. 


태그:#대한상의 ,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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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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