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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자 뉴스를 보니, 대기업 연구기관장들까지 나서서 정부의 환율상승정책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환율상승이 수출증가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라는 언급도 하고 있다.

 

안 그래도 지난 5년간 수출실적은 매년 평균 17% 폭등해 왔는데 새정부 경제팀이 환율을 올려 성급하게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것에 대한 비판이다.대기업들조차 정부 정책에 우려를 나타낸 것은 환율상승으로 인해 안 그래도 폭등하고 있는 원자재·원유가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는 환율이나 금리같은 거시경제지표만으로 경기부양을 시키려는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 지금은 미시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때다. 예컨대, 영국처럼 창업·혁신부를 만들어 창업을 활성화하고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그리고, 싱가포르 같이 빠르면 1일만에 기업설립이 가능하게 공무원을 중소벤처기업의 서비스맨으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현장에서 발로 뛰는 공무원이라면 얼마든지 더 늘려도 된다. 정확히 맥을 짚는 경제정책이 아쉽다.

 

뗏목을 산으로 끌고 가는 급조된 공약 

 

한편, 정부는 총액출자제한 완화나 금산분리 완화, 통신방송 겸업허용, 공기업 민영화, 수도·전기 등 공공재에 대한 민간개방, 의료보험 민영화 등 미국내에서도 비판받고 있는 '공화당식 정책'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고용의 90%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중소벤처, 자영업자 중심의 기초경제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

 

747, 한반도 대운하, 비핵개방 3000 등의 공약은 좋게 봐줘도 정권투쟁을 위한 '뗏목'이었을 뿐이다. 오죽하면 <조선일보>가 대통령 당선 직후 사설( 2007년12월 24일자 '당선자 공약 타당성 재검토 기구 둘 만하다')에서 747과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대한 재검토를 주문했겠는가? 그런데도 집권을 하고나서 이를 손보지않고 그대로 집행하려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하다. 한마디로 산으로 뗏목을 지고가는 우를 범하는 꼴이다.

 

돌이켜보건대, 한나라당이 내세운 정책들은 보수일색으로 대부분 보수언론들이 참여정부를 비판하느라 급조해낸 논리를 담은 것이다. 최근 쇠고기 파동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보수언론들은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180도로 입장을 바꾸는 표리부동한 자들이다. "신문을 보고 정치하지 마라"는 말은 현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최근 쇠고기 문제에서 시작된 민심이반 사태로부터 현 정부가 진정한 교훈을 얻었다면, 보수일변도의 저급한 정책들을 대청소하는 방향으로 대대적인 국정쇄신을 해야 한다. 그것은 장관이나 수석 몇 명 교체하는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국정운영기조와 정책방향에 대한 수정만이 근본해법이다.  

 

필요하면 진보정책도 수용해야

 

진보적이기만 할 것 같았던 참여정부가 불가피하게 보수적인 정책도 폈듯이,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하려면 보수정부도 필요할 때 진보정책을 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실용주의다.

 

참여정부에서 대북송금특검수용, 이라크파병, 대연정 제안, 한미 FTA추진 등과 같은 '보수적 정책'들이 정치개혁, 국방개혁, 사법개혁, 사학법 개정, 복지예산 2배 증액 등과 같은 진보정책과 왜 병행 추진되었겠는가? 국방비를 매년 8%씩 늘려주는 친북좌파가 있을 수 없듯이 이같은 정책기조는 '빨갱이 좌파' 이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또한 보수층 반향은 없고 진보지지층이 떨어져나가는 줄 뻔히 알면서 이런 정책들을 추진했기에 포퓰리즘으로는 더더욱 설명이 안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 100일간 '반참여정부정책, 반노무현 정서'로만 일관해왔는데, 많은 국민들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매우 이념적인 노선을 걸어온 셈이다. 인사도 보수적인 인물, 그것도 코드가 맞는 측근만 기용해서 '강부자 내각, 고소영 참모'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실용주의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 때 일하던 사람들을 청와대에 상당부분 그대로 두고 같이 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국방, 치안, 경제분야 책임자 및 일부 청와대 참모에 보수적인 인사를 앉혔다. 외교정책 명칭도 '균형적 실용외교'였다. 즉, 정책과 인사에서 진보·보수, 네편·내편을 떠나 필요하면 갖다쓰는 것이 바로 진정한 실용주의다. 

 

이명박 대통령은 왜 '지지율이 17%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치 비호하는 듯이 "청와대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 이명박대통령이 일을 잘 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는지를 헤아려 봐야 한다. 일부 '노명박'이라는 오해를 무릅쓰고 또 '손해보는 장사'를 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진정성은, 이명박 대통령을 특별히 위한 것이 아니었다. 민주헌정질서를 존중하자는 것이었다고 본다. 그런데도 여기에 '참여정부 설거지론'을 갖다대는 것은 격이 맞지 않는다.

 

스스로 만든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작금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지난 정부의 국정운영기록이 요긴할 것인데, 현 정부가 참여정부의 국정기록 인수인계를 거부하여 수만 건의 소중한 국정 보고서가 국가기록원으로 직행해버린 것이 많이 아쉬울 것이다.

 

참여정부 기간에 1인당 국민소득(GNI) 2만불 달성, 주식 3배, 외환보유고 2배, 수출 2배로 폭등한 것이 세계경제가 호황 때문이라거나 참여정부가 쇠고기 수입문제를 잘 처리했으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식으로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에 대한 차별화나 떠넘기를 하면 할 수록 문제해결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참여정부 기간에 국제유가는 배럴당 25달러에서 100달러로 4배나 폭등했고, 세계경제의 엔진인 미국은 매년 수천억 달러의 쌍둥이 적자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위기 상태였다. 우리 무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대에서 13%까지 떨어지고 달러가치가 떨어져 원달러환율은 1200원대에서 900원까지 떨어진 상태에서도 견실한 경제성장을 이뤄낸 것이 참여정부 경제성적표다.  

 

또한, 지방혁신도시나 행정복합도시 건설, 공기업 이전 등은 모두 한나라당이 '손질해서' 여야합의로 통과한 법에 의해 추진돼온 것이다. 마치 이를 '참여정부의 사생아' 정도로 취급하고 모두 없었던 일로 하려다가 최근 광범위한 지역의 반발을 가져오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 '노무현의 덫'이라고 하는데,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명분있는 정책들일 뿐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정권은 짧지만 정부는 영원하기에, '비전 2030', '국방개혁 2020' 등 정권과 관계없이 대한민국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 문건들을 다시 한번 들춰보기 바란다. 이를 자신의 공으로 만들어 갈지 아니면 스스로 파놓은 늪에 빠질지는 순전히 이명박 정부가 선택할 몫이다.

덧붙이는 글 | 임춘택 기자는 참여정부에서 안보전략비서관실 행정관(국방정책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카이스트 교수입니다. 


태그:#실용주의, #보수정책,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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