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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씨의 금쪽같은 자식들이다.(맨위가 경자, 아래 좌측부터 혜진이, 한준이, 미나) 현지는 일요일인데도 학교에 공부하러 가느라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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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 혜진, 미나, 현진, 경자. 화자(50)씨의 다섯 자식들이다. 화자씨는 이들을 일러 '금쪽같은 자식들'이라 표현한다. 열달 뱃속에 품고 있다 죽을 것 같은 산고 끝에 품에 안은 자식. 어찌 아니 금쪽같지 않겠는가.

그러나 화자씨는 열 달 배불러 본 적도, 죽을 듯한 산고를 해 본 적도 없이 이 자식들의 엄마가 되었다. 다섯 자식들의 가슴에 얹혀진 무거운 바위덩이를 하나하나 화자씨의 가슴에 나누어 얹으며 그들을 낳았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처음 내 앞에 섰을 때 그저 한 서너 달 함께 지내며 잠시 잠깐 그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상처를 잊고 해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서너 달이 반년이 되고, 또 일년이 되고.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저를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어요.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니 저는 절로 '엄마'가 되었고,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은 절로 제 자식이 되어 있었죠."

'저절로'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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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씨와 화자씨의 금쪽같은 자식들이다.(왼쪽부터 경자, 미나, 화자씨, 한준이, 혜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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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자식 중 제일 맏이인 경자(28)씨. 올해 28살로 정신·지체 2급 중복장애를 가졌다. 어머니와 함께 살다 어머니가 자궁암 진단을 받고 병석에 눕는 바람에 화자씨에게로 오게 됐다. 원체 바지런한 성격 탓에 집안일이며 동생들 건사를 잘하는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다. 그러나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만 생각하면 시도 때도 없이 코끝이 빨개진다.

정신지체 2급 장애를 가진 미나(18). 나이는 18살이지만 4살 지능을 가진 없이 티 없이 맑은 소녀다. 처음 아빠 손을 잡고 화자씨에게로 왔을 때 화자씨는 미나의 아카시아 꽃 같은 하얀 웃음에 반해 버렸다고 한다.

4살 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줄곧 아빠와 살아왔다. 그러나 미나가 나이가 들수록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됐다. 미나는 아빠가 일하러 나가시면 하루 온종일 텅 빈 집에서 혼자 있어야 했다. 지능은 4살이어도 몸은 18살이다 보니 하루 온 종일 혼자 지내는 미나가 아빠는 점점 불안해졌고 알음알음으로 화자씨와 인연이 돼 함께 살게 됐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인 현지(16). 할머니와 함께 살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천애고아가 됐다. 한창 사춘기인 현지를 안타까이 여긴 이웃들에 의해 화자씨는 현지 이야기를 듣게 됐고, 함께 살자는 화자씨의 제의에 눈물만 보이는 현지를 화자씨는 가슴으로 뜨겁게 끌어안음으로써 모녀지간이 됐다.

한준(10), 혜진(13)이는 남매지간이다. 이혼 후, 혜진이의 아빠는 술로 나날을 보냈고 급기야 남매에게 폭행을 일삼았다. 보다 못한 이웃들은 아동폭력으로 신고까지 하게 됐고 아이들은 불가피하게 연로하신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할머니마저 몸져 눕는 바람에 화자씨에게로 오게 됐다.

다섯 인연이 굳이 화자씨에게 온 이유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것이 있다. 어떻게 하여 이 아이들이 하나 둘 화자씨에게로 오게 된 것일까. 이야기는 화자씨가 처녀적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웃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할머니를 찾아가 밥도 해드리고 빨래도 해드리고, 그러다 편찮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시게 되면 아예 집으로 모셔와 함께 살기도 했어요. 그게 연유가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아는 분들이 가끔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나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곤 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치매로 정신을 놓아 버리신 할머니들이 우리 집에 오셔서 한 서너 달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시다보면 거짓말처럼 정신을 되찾으시는 겁니다. 그리곤 가족을 찾아 댁으로 돌아가시곤 하셨어요.

그런데 한 번은 가족이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할머니께서 댁으로 돌아가시지 않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가족간의 불화가 심했었나 봐요. 결국 우리 집에서 돌아가셨는데 그때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던지 죽다 살았어요. 그 이후 할머니들이 오시게 되면 적당한 시설을 연결해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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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자씨의 환한 웃음이 초여름 햇살 만큼이나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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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화자씨는 처지가 안타까운 아이들에게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화자씨의 집은 그런 아이들의 쉼터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런데 그것도 마음 아프긴 마찬가지였다. 화자씨 곁을 잠시 스치고 가는 아이들이건만 아이들이 떠난 빈 자리는 생각보다 크다는 것에 화자씨 마음이 늘 아렸다고.

해서 식구들이 도저히 돌볼 수 없는 처지의 아이들과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처음엔 하나 그리고 다시 둘, 그렇게 다섯 자식의 엄마로 살아온 것이 어언 6년째이다.

화자씨네 여섯 식구의 생계는 화자씨의 밥장사로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화자씨가 밥장사를 시작한 건 5년 전. 밥장사를 하면 아이들 배 곯릴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화자씨의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화자씨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배불리 밥 먹이는 거,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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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와 화자씨의 정겨운 모습. 아카시아 꽃같은 미나의 하얀 웃음을 보곤 첫눈에 반했다는 화자씨...둘의 웃는 모습이 붕어빵처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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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늘 아이들에게 미안하단다. 인근 공장에 점심배달을 해주고 버는 돈으론 변변한 옷가지 한 벌, 신발 한 켤레 사신기가 버겁다. 옷이든 신발이든 늘 남의 것들을 얻어다 깨끗이 씻어 입히고 또 신긴다. 아이들의 학교에서도 처음엔 아이들의 그런 처지를 눈치조차 못 챘다고 한다. 늘 단정하고 깨끗한 옷차림에 말썽 한 번 부린 적 없으니 그도 그럴 수밖에.

화자씨는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있어선 늘 죄인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학원은 엄두도 못 낼 처지이다. 해서 저녁이면 아이들을 앉혀놓고 손수 가르친다. 그나마 혜진이, 한준이는 학교 공부만 챙겨주면 된다. 그러나 미나와 경자씨는 사정이 다르다.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상태이니 이름조차 쓸 줄 모른다. 형편이 닿는 대로 장애인학교에라도 보내주어야겠다 다짐을 해보지만 마음만 굴뚝같다.

현지의 경우, 건축디자이너가 꿈이다. 그러나 한 달에 20만원을 웃도는 학원비 탓에 그야말로 건축디자인 학원은 그림의 떡이다. 화자씨는 혹, 부족한 뒷바라지 탓에 현지의 꿈이 좌절될까 늘 조바심이 난다.

"배 곯게는 않해도 아이들에겐 늘 미안하죠"

그러나 현지도 현지지만 경자씨에 대한 걱정으로 요즘 화자씨는 밤잠을 설친다. 치아가 다 상해 음식을 씹지 못하는 경자씨는 모든 음식물을 그냥 꿀떡꿀떡 삼키고 만다. 그런 경자씨와 매끼 마주앉아 밥을 먹을 때면 오금이 다 저려온다고 한다.

그렇게 모든 것이 부족한 가운데 자라는 아이들. 그러나 아이들은 늘 하얗게 웃으며 화자씨의 가슴을 파고든다. 그런 아이들을 품으로 보듬어 안을 때면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화자씨의 가슴으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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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준.혜진이 남매와 화자씨 모습. 막내둥이인 한준이는 엄마를 천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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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몸으로, 그것도 결혼 한 번 하지 않은 여자의 몸으로 다섯 자식을 데리고 산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만큼 더 힘들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자씨는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쉽고 어렵고를 단 한 번도 따져 보지 않았다고 한다. 왜? 가족이기 때문이란다. 가족이기 때문에 쉽고 어렵고를 따지는 게 아니라 미안함과 고마움이 늘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웃고, 함께 울고. 다른 가족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요. 다만 제 각각 상처로 인한 생채기 하나씩을 품고 있으니 그 상처를 보듬는 정이 좀 더 필요할 뿐이죠. 한준이나 혜진이는 미나나 경자가 저들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동생 보살피듯 얼마나 알뜰살뜰하게 잘 보살피는지 몰라요. 아이들 스스로 그렇게 형제의 정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참 많은 것을 얻고 있고, 또 배우고 있어요."

어제가 오늘인 것처럼 그렇게 하루하루 아이들과 알콩달콩 달고 싶다는 화자씨. 다만 경자씨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경자씨에게 틀니를 해주기 위해 온 식구가 허리를 졸라매 돈을 모으고 있긴 하지만 언제나 그 돈을 다 모을 수 있을지. 통장 들여다보는 것이 때론 끔찍하단다. 그러나 여섯 식구는 간절히 믿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경자씨가 아삭아삭 맛있게 음식을 먹는 그날이 꼭 오리라는 것을.

아이들이 잠든 시간 화자씨는 아이들 머리맡에서 손을 모은다.

'남보다 못 먹이고, 남보다 못 입혀도, 사랑만은 철철 넘치게 쏟아 부으리라.'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막내 한준이의 말이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 엄마는 천사예요!"

맞다. 화자씨는 천사다. 더불어 화자씨의 다섯 아이들은 천사의 날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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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씨와 화자씨의 금쪽같은 자식들이다.(왼쪽부터 경자, 미나, 화자씨, 한준이, 혜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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