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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계속되고 있고, 그 중심엔 10대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최재천 통합민주당 의원이 그러한 10대들과 공유하기 위해 '쇠고기 협상과 한미FTA'에 관한 네 편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습니다. 다음은 그 세 번째 글입니다 <편집자주>

"현대 복지국가들에서는 사회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의료수준을 높이며, 국민 모두가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금성출판사, <고등학교 사회·문화>, 246쪽)

 

오늘은 바로 공공복지 정책의 상징인 건강보험 이야기입니다. 건강보험과 한미FTA는 상관이 있을까요?

 

지금 미국은 제44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절차가 한참 진행 중입니다. 핵심 쟁점 중 하나가 건강보험 정책이라는 것, 잘 알고 계시죠?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왜 그럴까요? 무슨 문제가 있어서일까요?

 

정부는 한미FTA와 국민건강보험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우리의 의료보장체계인 국민건강보험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죠. 물론 단기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중기적으로 살펴보면 한미FTA는 우리의 공적 보험 체계인 건강보험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결정타라고 평가해야 합니다.

 

먼저 상식적인 수준에서 확인하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강보험은 첫째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둘째 모든 병원의 비영리병원 지정제, 셋째 전 국민 건강보험 강제가입제도를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건강보험에 대한 원투 펀치, 영리병원 허용과 경제자유구역

 

여기 퍼즐이 하나 있습니다. 첫째는 한미FTA가 존속을 영구보장해 준 '영리병원제도'입니다. 둘째는 참여정부가 도입한 '경제자유구역'입니다. 셋째는 좀 어려운 용어입니다만,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입니다. 넷째는 역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입니다. 이 네 조각의 퍼즐이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를 좌우합니다. 함께 살펴보죠.

 

먼저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각. 한미FTA는 제24장 <최종목록>을 통해 보건정책에 대해서는 국가가 주체적으로 새로운 규제를 추가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보건과 건강에 대한 국가의 정책자주권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인천 송도 등의 '경제자유구역'과 '제주 국제자유도시'에 건립될 영리병원에 대해서는 정부가 어떠한 추가적인 '조치'도 취할 수 없도록 못박아 버렸습니다. 영리병원 제도의 후퇴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영리병원 제도가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결코 이 제도를 철폐해선 안 됩니다. 한미FTA를 비판하는 교수들이 목놓아 외치는 이른바 역진방지조항(ratchet)조항입니다. 참고로 이 지역들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건강보험 환자를 받기 싫으면 거부해도 되는 겁니다. 또는 돈 없는 사람이 쫓겨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문제는 경제자유구역이 마치 지역경제 살리기의 마지막 비상구처럼 취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너도 나도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희망합니다.

 

얼마 후면 경쟁력 있는 병원들이 모두 경제자유구역으로 들어가서 영업하길 희망하겠죠? 동북아의 의료중심이 되겠다며, 중국과 일본의 성형수술을 희망하는 환자들을 유치하겠다며, 그 곳으로 진입하기를 희망하겠죠. 돈이 있거나 별도의 보험가입이 가능한 재력가들은 돈보다는 기술과 서비스를 쫓아 그 곳으로 가서 진료를 받게 되겠죠? 신라호텔에 성형외과 병원들이 들어가 외국인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처럼 유사한 상황이 생겨나겠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강제 가입제도와 비영리 병원제도가 서서히 무너져가는 상황, 상상이 되시죠? 그래도 우리는 영리병원 제도를 후퇴할 수 없습니다. 영리를 향해서는 나갈 수 있지만 공공성을 위해서는 후퇴해선 안 된다는 한미FTA가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보험을 부식시키는 보험상품 탈규제 조항

 

세 번째 조각입니다.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등에서 '실손형 보험상품'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하고 대대적으로 언론에 의한 홍보가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감기로 병원에 가면 본인부담금으로 2500원 정도 내고 나머지 몇천원은 건강보험에서 지급됩니다. 이 2500원을 보장해주는 보험이 '실손형 보험'입니다. 감기를 예로 들어서 그렇지, 암이나 다른 중증 질환을 생각해보십시오. 돈 있는 사람은 당연히 보험에 들겠죠. 그렇지만 보험회사는 보험 가입자를 가려서 받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득을 남겨야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60%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본인이 부담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복지사회'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공공의 책임을 늘려야겠죠. 그런데 개인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이게 억울할 거 아닙니까? 난 보장받을 별도의 장치가 있는데, 건강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면 좋아할 리가 없겠죠. 그리고 이 사람들은 본인부담 또한 부담이 없어졌으니 병원을 더 자주 다니면서 건강보험 재정 전체를 축낼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도덕적 해이가 나타납니다. 외국의 사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공공성보다는 영리성이 판을 치게 될 것이고, 보험회사로서는 당연히 영리의료법인과 계약을 맺고 그곳에서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보험신상품을 판매하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1국가 2의료체계'가 탄생하는 것이죠. 그리고 있는 사람은 개인의료 보장보험으로, 없는 사람은 건강보험으로 서서히 이원화가 되겠죠.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일 게 있습니다. 한미FTA는 보험상품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완전히 풀어버렸습니다. 금융기관은 어떤 보험상품을 출시해도 그것은 상품의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규제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건강보험 제도를 우회하거나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는 신상품의 출시가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겠죠?

 

넷째 조각은 역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입니다. 정부 입장에는 건강과 보건입니다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금융이자 상품이자 산업입니다. 정부가 보건소를 늘리는 등 공공정책을 강화한다고 합시다. 투자자는 앉아서 손해를 보게 되잖아요. 여러분들이 투자자라면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그리고 서울에 있는 아산병원이나 삼성의료원은 "왜 우리만 차별하냐"며, 평등권을 무기로 "우리도 건강보험 환자를 받지 않을 권리를 달라", "우리도 영리병원을 허용해달라" 주장할 것입니다.

 

경제력 있는 시민들은 "난 건강보험보다는 별개의 의료보험을 선택할 권리를 달라" 주장하겠죠. 팔도에 널린 게 경제자유구역이고, 고품질의 영리병원인데 미국까지 고급진료를 받으러 가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건강보험 제도에 만족하겠습니까? 결국 건강보험 재정은 서서히 위축되는 순서를 밟을 겁니다. 국가가 채워넣기에는 너무나 큰 적자가 계속될 것이고요.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개인의 부담을 늘이는 쪽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겠죠.

 

국민건강에 대한 국가의 책무는 어디에?

 

제가 지나치게 비관론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했기를 바랍니다. 비관적인 현실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국가의 책무와 관련된 일입니다. 교육, 의료의 형평은 현대국가의 기초가 아닐까요? 왜 미국에는 5000만 명에 이르는 의료보험 사각지대가 존재할까요? 시장의 원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왜 영국은 보건소라는 일종의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을 고집할까요?

 

투자자에 대한 보호, 필요합니다. 적절한 영리추구, 자본주의의 기초죠. 정책의 일관성, 중요합니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노력, 공공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노력, 이것이 국가의 존재의 의의이고 이 반대편에 한미FTA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한미FTA는 중기적으로 볼 때 단언하건데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치명타'입니다.


태그:#한미FTA, #국민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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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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