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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가 부상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인근 주민이 타이어와 프라스틱 의자로 덮어놓은 볼라드
 보행자가 부상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인근 주민이 타이어와 프라스틱 의자로 덮어놓은 볼라드
ⓒ 최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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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는 차도와 보도가 있으나 그동안 정부도 자치단체도 자동차 위주 정책으로 차도 건설과 확장에 중점을 두었을 뿐 시민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보행권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과 목소리에도 사실상 이를 외면하고 있다.

특히 시민 안전을 이유로 도심 곳곳 인도를 점령하며 무분별하게 설치된 설치물들이 보행자들의 통행을 막아서며 오히려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 속에 최근 '볼라드(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로 인한 안전 사고시 관할기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와 경종을 울리고 있다.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보도설치 및 관리지침'에는 보행자 관점에서 일종의 장애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볼라드'는 반드시 필요한 장소에 선택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지침에는 ▲밝은색 반사도료 사용 ▲말뚝높이 80~100cm정도 ▲직경 10~20cm정도 ▲말뚝 간격 1.5m ▲충격흡수 재료 ▲말뚝에서 30cm 앞에 점자블럭 설치 등을 명시하고 있으나 상위법령이 마련되지 않아 지자체가 주먹구구식으로 설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질도 형태도 제각각인 규격 미달의 볼라드
 재질도 형태도 제각각인 규격 미달의 볼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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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고충처리위, 볼라드 설치 관련법 신설 권고

볼라드 안전사고 관할 행정기관 책임이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0단독(판사 이재은)는 지난 12일 안전시설이 미비한 볼라드(이면도로나 보행자ㆍ자전거 도로에 설치된 자동차 진입 방지용 구조물) 때문에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던 시민이 다쳤다면 관할 기관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작년 10월 성산대교 남단 안양천 둔치의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김모(45)씨는 볼라드에 걸려 넘어지면서 무릎 십자인대가 늘어나는 등 크게 다치자 관할 기관인 영등포구청을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 일부승소 판결을 받은 것.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볼라드는 재질과 형태, 용도 등에 비춰 볼 때 도로에 설치하는 경우 사고 발생의 위험이 예견되는 구조물"이라 규정하며 "볼라드를 자전거와 보행자 겸용 도로에 설치하려면 주변에 조명시설이나 안전표지판을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2007년 11월 국토해양부(구 건설교통부)에 '보도설치 및 관리지침'에 의한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볼라드)의 설치기준'을 삭제하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에 볼라드 설치 및 정비(개량) 근거를 별도로 신설하라고 권고했다.

현행 보도 설치 및 관리지침은 도로법 등 상위법령에 근거하지 않아 법규성을 인정할 수 없고 법률상 효력도 없어 볼러드를 설치하고 있는 자치단체 대부분이 해당 지침을 잘 지키지 않고,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시정명령 등도 불가능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고충위가 전국 18개 자치단체 514개 구역의 주요 보도에 설치된 3219개의 볼라드를 조사한 결과 기준을 위반하거나 미흡한 볼라드가 무려 94.2%인 484구역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질이나 규격 등 설치기준을 준수한 것은 5.8%인 30개 구역에 불과했다.

국토해양부가 2007년 각 지자체에 하달한 보도 정비 지침
 국토해양부가 2007년 각 지자체에 하달한 보도 정비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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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정비 지침중 명시된 볼라드 설치 규격
 보도 정비 지침중 명시된 볼라드 설치 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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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랑 진입 방지용에서 '흉기'로 돌변한 볼라드

볼라드의 재질은 더 문제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에 보행자 등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질, 속도가 낮은 차량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구조로만 규정돼 전체 조사대상의 83.5%가 화강암 등 돌과 쇠로 만들어져 있어 부딪힐 경우 부상 위험이 크다.

이는 볼라드에 대한 자체 심의는커녕 도로관리·건축 부서, 구청, 동사무소마다 개별적으로 설치하거나 심지어 건물 신축에 따른 주차장 진입로 등의 볼라드 설치를 건물주에게 맡기면서 크기와 모양, 재질 등 모두가 제각각으로 기준 미달이 대부분이다.

특히 경기 안양시의 경우 안양1번가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자동차 불법주차를 막는다는 이유로 돌로 만든 수십만원짜리 고가의 규격외 볼라드를 수백 개씩이나 설치하자 상인과 시민은 보행자들의 안전 위협뿐 아니라 예산낭비도 엄청하다고 지적했다.

한 시민은 "행정편의상 주정차를 못하게 데서 출발할 것이 아니라 시민의식을 높이는 방향에서 정책을 세워나가야 한다"며 "시가 용역을 통한 사업계획으로 업자들 배불리기보다는 공무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불편을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이라"고 꼬집었다.

차량 주차 방지를 이유로 인도에 마구잡이로 설치된 볼라드의 행렬
 차량 주차 방지를 이유로 인도에 마구잡이로 설치된 볼라드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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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 건물앞에 어김없이 설치되고 있는 볼라드
 신축 건물앞에 어김없이 설치되고 있는 볼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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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차량 진입을 막고자 설치한 볼라드가 본래 목적을 상실한 채 거동이 불편한 시각 장애인 및 노약자들에게 부상 위험을 주고 있다. 게다가 일반 시민들의 이동권까지도 침해하는 등 큰 불편을 주면서 일명 '무릎지뢰'로 불리는 상황이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과 여객시설의 이용편의 및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시행해야 한다."

이는 지난 2005년 1월 제정되고 2006년 1월 시행령이 발령된 '교통약자의 이용편의 증진법' 제4조의 내용으로 보행약자를 포함한 모든 보행자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들 책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사람이 안전하게 걷을 수 있는 기본 보행권을 지켜주어야 함에도 그동안 차량 중심의 정책으로 인해 보도의 단절과 보행권 침해를 가져왔다. 하지만 도시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이제 사람 중심의 보행환경 조성 등 새로운 교통 정책을 펼쳐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최병렬 기자는 안양지역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볼라드, #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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