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부드러운 하얀 속살과 생긴 모양이 보름달처럼 생겼다 해서 달항아리라 지칭되는 조선의 큰 항아리가 있다.

처음 볼 때는 별스런 멋을 느끼지 못하나 이를 조용히 보고 있자면 볼수록 정감이 간다. 작년 이맘때인가 미국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127만 2000달러에 팔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항아리는 청화백자 접시, 용문항아리 등과 같이 최근 우리 백자 중 높은 값에 매매되는 인기 있는 고미술품이 됐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2억원에 낙찰된 달항아리 높이48cm
▲ 백자대호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2억원에 낙찰된 달항아리 높이48cm
ⓒ 뉴욕 크리스티 경매

관련사진보기


달항아리는 둥근 모양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의 조선 백자 항아리를 가리키며 그 중에서도 높이가 40센티미터 이상인 큰 항아리는 백자대호(白瓷大壺)라고 한다.

높이 40~50cm 정도로 최대 지름과 높이가 거의 1대1 비례를 이루고 몸체가 원만한 원형을 이룬다. 또한 워낙 크기 때문에 둘로 나누어 모양을 이루었는데, 접시 모양의 위쪽과 아래쪽 부분을 따로 제작해 덧붙여 만들어져 몸체의 중앙 부분에 대개 이음자국이 보인다.

달항아리의 비밀은 가운데 이음매에 있다. 예전의 기술로는 높이가 40㎝가 넘는 큰항아리를 물레로 뽑아올릴 수 없었다. 젖은 태토(胎土)가 주저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힘이 좋은 청자토를 섞으면 대형 기물 제작이 가능했을 것이지만 순백의 때깔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발을 포개는 발상의 전환으로 반씩 빚어 이어붙이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겉으론 감쪽 같지만 안쪽에선 도톰하게 덧붙인 흔적이 만져진다. 이러한 이유로 전체적인 모양이 완전한 원형이 아닌 둥그스름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달항아리를 빚어 낸 조선 도공들의 마음이 큰 욕심 없이 무심하면서도 순한 본성이었기에 이러한 형태와 빛깔의 작품이 탄생되었을 것이다. 인간적인 체취와 친근감이 느껴지는 그 모습은 훗날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예찬의 대상이 되었다.

국보262호 높이 49,2cm 우학문화재단 소장
▲ 달항아리 국보262호 높이 49,2cm 우학문화재단 소장
ⓒ 우학문화재단

관련사진보기


국보261호 41,2cm 달항아리(백자대호)  국립중앙박물관
▲ 백자대호(白磁大壺),달항아리 국보261호 41,2cm 달항아리(백자대호) 국립중앙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관련사진보기


이 항아리는 숙종과 영·정조시대인 17세기 말부터 18세기 백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반짝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후 생산이 끊긴 달항아리는 도자사의 계보에서도 그 배경이 명확치 않았다.

고려대 방병선 교수는 <조선후기 백자연구>에서 당시 조선색이 강조되던 문화 중흥기 사대부들의 호방한 심미관을 좇아 주역의 태극을 형상화한 감상용으로 나왔으리란 가설을 내놓았다.

백자 기형 중에 달항아리만큼 상하좌우의 몸체가 천지 음양의 조화를 이룬 것이 드물기 때문에 태극 형상을 입체화하는 데 적합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제작 기법도 서민들이 주로 쓰던 옹기 기법까지 빌려 쓰면서 심미안의 발전 등과 어울려 18세기 대표적 도자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도 명저 <조선과 그 예술>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시대가 내려오면 기교가 복잡도를 더한다…그런데도 실로 흥미 깊은 예외를 조선의 도자기 공예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아룸다움은 단순으로의 복귀다.…자연에 대한 신뢰야말로 조선 말기 예술의 놀라운 예외가 아니겠는가."

달항아리의 이 같은 형태는 은은한 멋스러운 자태와 아울러 느긋함이 풍긴다.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지낸 미술사가이자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고 최순우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백자대호'(국보 261호)를 가리켜 "잘 생긴 부잣집 맏며느리를 보는 듯하다"고 했다. 순백의 색채는 겨울 아침 밤새 내린 함박눈에 밝은 햇살이 비쳐진 것 같다고도 했다.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은 "보름달 같이 환하면서 열사흘, 열이레 달 같은 매력이 있다"고 표현했다.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후덕함"이라고 극찬했던 것처럼 이 항아리의 매력은 깔끔한 정형이 아니라 어딘가 이지러진 듯한 자연미에서 나온다.

또 최순우 선생은 "한국의 폭 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不定形)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고고학자 김원용 선생은 "조선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다"며 "그 아름다움은 그저 느껴야 한다"고 했다.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은 '백자부(白磁賦)'에서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이라고 예찬했다.

서울 종로, 이정용 소장
▲ 보물1438호,백자대호 서울 종로, 이정용 소장
ⓒ 이정용

관련사진보기


44.5cm, 호암미술관
▲ 보물1424호,백자대호 44.5cm, 호암미술관
ⓒ 호암미술관

관련사진보기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조선의 백자항아리들은 사대부나 양반의 안방 또는 서재의 선반이나 부엌, 뒤주, 사방탁자 등에 흔히 장식되었을 것이고, 크고 작은 집안 살림살이 가운데 한 몫을 담당하였다. 이렇게 많은 항아리들 중에는 잘생긴 작품이 매우 많았을 것이고 특히, 달항아리는 장식적 측면과 실용적 측면에서 당시 큰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달항아리는 보는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르겠지만, 추수 끝난 가을 녁 달밤의 보름달 같기도 하고 임신한 여인네의 모습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특히 조선의 여인들은 정원대보름날 달을 보며 소원을 빌던 것처럼 달항아리를 집안이 두고 보름달의 풍요로움과 다산, 그리고 항상 평화가 넘치는 바람도 가졌으리라 본다.

오로지 흰색깔로만 구워진 달항아리는 기하학적 둥근모양이 아니라 약간 이지러진, 어리숙한 둥근 형태가 감상 포인트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우악문화재단 그리고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각각의 달항아리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다음카페 아트옥션_미술품 투자와 감정 경매(http://cafe.daum.net/art-auction)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 류정현

경희대학교 요업공예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학교 예술대학원 졸업했다. 이후 작가로 활동하며 대구공업대학교 도예디자인학과 겸임교수와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겸임부교수를 역임하였고 도예전시 7회와 단체전을 100여 회를 가졌다.

현재 기업교육 전문강사로 활동중이며 고미술감정/경매와 관련한 저서를 집필중이며
다음카페 아트옥션_미술품 투자와 감정 경매(http://cafe.daum.net/art-auction)를 운영중이다. 이메일: clayis@hanmail.net



태그:#달항아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