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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수 국무총리가 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정운천 농수산식품부 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정운천 농수산식품부 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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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공무원인가

가능한 시정(市井)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자(대부분 부동산 투기 얘기 아니면 정치인 부패 얘기들이라) 강원 산골로 내려왔지만, 워낙 매스컴이 발달하여 내 의사와는 달리 듣지 않고 살 수가 없다. 더욱이 산골에 사는 사람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니까 이웃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엊그제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 시간이 남아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앉아 있는데 미국 쇠고기 수입 청문회 장면이 잠시 비쳤다.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책성 질문에 장관이나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앵무새처럼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말과 근원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우선 빗발치는 소나기성 여론을 피해 보자는 미봉책으로 지루한 말장난만 하고 있었다. 우선 저들이 미국 정부 관리인지 이 나라 공무원인지 헷갈렸다.

나는 순간 이 정부가 출범할 당시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는 말이 떠올랐다.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하는 일이 백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모양인가.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이 난국의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나라 백성들이 이 정부를 믿지 않는데 있다. 출범 석 달도 되지 않아 정부를 믿지 못하고 민심이 떠나고 있는 것은 백성들 탓이 아니라, 이 정부가 그렇게 만들었다.

민심이 떠난 원인

이번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만 보더라도 그렇게 체결을 서둘 일이 아니었다. 방미중인 대통령이 미국인들에게 박수 받으려고 서둘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박수 뒤에는 우리나라 축산 농민들의 피울음이 담겨 있다는 걸 외면했기에 가장 먼저 축산농민들이 등을 돌렸다. 내가 사는 고장은 전국에서 가장 이름난 횡성 한우 고장인데, 이미 이웃 산골사람들은 소를 내다 팔고는 이제 무엇을 해야 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면 취임 후 백성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 그 감동은 말장난으로 되지 않는다. 말없는 실천으로만 백성들에게 감동 줄 수 있고, 백성들의 마음에서 우러난 박수를 받을 수 있다. '영어몰입 교육', '고소영, '강부자' 내각은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대통령의 철학과 정체성을 의심케 했다.

이번 미국 쇠고기 수입만 해도 그렇다. 국제 통상상 부득이 수입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면 차분하게 나라 안 백성들부터 먼저 설득시켜야 옳았다. 그리고 난 뒤 당신들이 미국산 쇠고기가 안심이 가더라도 백성들이 불안해 하니까 최대한 안정장치를 몇 단계 마련하여,  수입해야 했다.

"자리에 앉았을 때 잘하라"

요즘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사 줄 때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사 줘야 한다. 심지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물품도 그들이 원하는 줘야 욕먹지 않은데, 백성들이 주머니 돈으로 사는 상품을 수입하는데 상대방 말만 믿고 들여오고는 안전하다고 사 먹으라고 강요한다면 누가 따르겠는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미 체결된 쇠고기 협상을 개정하라. 그것이 정히 불가능하다면 시행을 최대한으로 늦추고 차분하게 백성들을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설득하라. 문득 나는 그 대안으로 종두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킨 지석영 선생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분은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종두를 얻어와 가장 먼저 두 살 난 처조카에게 접종시켰다. 그런 다음 마을 어린이 40명에게 다시 접종시켜 성공을 거둔 뒤 온 나라에 퍼트렸다. 이와 같이 백성들이 불신할 때는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이 솔선수범해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우선 30월령 이상이 된 광우병 오염된 쇠고기를 수입하여, 청와대, 총리실, 장관실, 그리고 엊그제 청문회 때 안전하다고 말한 이들이 6개월 이상 들고난 뒤 백성들에게 먹어도 좋다고 설득하라. 

더 이상 사태 악화가 된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다.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고 떠난 민심을 되돌리려고 한다면 백성들을 우습게보지 말고 우선 언저리 부도덕한 인사들을 정리하고 새 출발해야 한다. 하나의 예만 들겠다. 기초 질서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이를 법무부장관에 앉히고 백성들에게 국법을 지키라고 한다면 누가 지키겠는가.  

지난 한국전쟁 때 미8군 사령관 벤프리트 장군은 당신 아들이 한국전에 참전하여 전투기에서 떨어져 전사했다. 중국의 모택동 주석 아들도 그랬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들 나라 백성들은 지도자의 말을 따른다. 이 핑계 저 핑계로 군에도 가지 않은 사람이 남의 나라 전쟁터에 내보낸다면, 누가 그를 믿을 수 있는 따를 것인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

"자리에 앉았을 때 잘하라."

언제 물러날 지 모르지 않는가. 길어야 4년 9개월밖에 더 남았는가. 이 나라 백성들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더 이상 대안을 제시하고 싶지만 이제까지 한 말만 귀 담아 듣고 실천해도 이 난국을 다소 진정시킬 듯하여 군말 줄인다.


태그:#광우병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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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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