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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4월 18일 체결된 한미 쇠고기 협정의 문제점을 인정했음에도 '광우병 발생시' 외에는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즉각적인 재협상'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8일 오전 대국민 담화에서 "광우병이 미국에서 발생해 국민 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되면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고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천 농수산식품부 장관의 발언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정부가 잇달아 입장과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어 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총리는 즉각적인 재협상과 15일로 예정돼 있는 협정문 고시 방침의 변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뼈를 포함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길을 연 이번 협정은 15일이 고시 시한이며, 고시가 이뤄지면 즉각적인 수입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되돌리기 어려워진다.

 

통합민주당을 비롯해 자유선진당까지 포함한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고시 연기와 재협상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의 '광우병 발생시 수입 중단' 방침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닌 미봉책'이라는 것이다.

 

김효석 "15일에 쇠고기 협정 고시하면 정말 가만있지 않겠다"

 

김효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위·농해수위·쇠고기협상특위 연석회의에서 "정부가 '광우병 발생시 수입 중단' 방침을 밝힌 것은 대통령과 장관이 협상이 잘못된 것을 인정한 것"이라며 "잘못을 인정했으면 재협상을 해야 하는 것인데, 재협상 얘기를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15일로 예정돼 있는 장관의 고시를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며 "만약 그대로 고시하면 바로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는데, 이는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경고'했다. 이어 "우리는 정말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며 고시 연기를 안할 경우 법적 조치도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시를 무기한 연기하고, 재협상을 해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못박았다. 원내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우선 중요한 것은 15일의 정부고시를 연기시키는 것"이라며 "고시를 연기한 뒤 국회에서 쇠고기 재협상 결의안을 통과 시켜서 정부의 재협상을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부가 '수입중단 조치'가 가능한 근거로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20조 b항(인간 및 동식물의 생명, 건강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을  제시하고 있는 것에 대해 "특별법이 일반법보다 우선하는 기본적인 국제관례를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합의가 없을 때는 WTO나 GATT  규정을 준용하지만 합의문이 있는 이상 특별법이 우선이고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큰 통상 마찰을 빚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인기 정책위의장도 "들불처럼 일어나는 민심에 정부가 굴복한 결과"라며 "그러나 미국의 무역대표부 대표는 재협상이 없다고 하고 있고 한국의 장관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마찰을 예상하면서도 성난 민심에 부응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야3당 '쇠고기 재협상 촉구결의안', '정운천 해임건의안' 등 4개항 합의

 

쇠고기 문제에 대한 야3당 공동보조도 강화되고 있다.

 

민주당, 자유선진당, 민노당의 원내대표들은 이날 오전 9시 30분 국회에서 만나 ▲ '쇠고기 재협상 촉구 결의안'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 ▲ 15일로 예정되어 있는 쇠고기 협상 장관 고시의 연기 강력 요구 ▲ 통상절차법 통과 ▲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통과 등 4가지를 합의하고 즉각적인 행동에 돌입하기로 했다.

 

야당들은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와 원희룡 의원 등도 재협상을 주장한 바 있어, '쇠고기 재협상 촉구 결의안'에 대해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상당한 찬성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결국 이번 논란은 '즉각적인 재협상'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미국의 광우병 위험관리 수준에 중대한 변화가 없는 한 재협상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박재완 청와대 정무수석도 지난 4일 "재협상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미국과의 신뢰 문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사실상 협상의 문제점을 인정한 뒤로 '재협상' 요구는 더욱 힘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7일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나왔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GATT 20조 b항을 '광우병 발생시 수입중단' 조치의 근거로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은 뒤 "이번 쇠고기 협상은 입법예고할 내용을 정리한 것이므로, 재협상을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입법예고 정리한 수준, 재협상 문제없어... 한미FTA도 재협상했다"

 

그는 "정부가 고시를 하지 않은 상태에 재협상을 하자고 하면 약속위반에 대한 도덕적, 심리적 문제가 발생하는 정도지만 고시를 해서 협상을 발효시킨 뒤에 일방적으로 중단하게 되면 법적인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시를 하지 말고, 재협상을 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쇠고기 협상은 미국에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가 고시를 하지 않으면 미국이 재협상을 하자고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또 "2007년 6월에 한미FTA에 대해 재협상을 한 사례도 있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지난해 한미FTA가 타결된 뒤 미국 측의 요구로 노동환경분야 조항들이 추가된 바 있다. 당시 참여정부는 "원점에서 전체를 수정한 것이 아니므로 재협상이 아닌 추가협상"이라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통째로 다 바꾸는 것만을 재협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최재천 민주당 의원은 "재협상이 맞는 말이지만, 이번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재협상이든, 추가협상이든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2007년 6월에 한미FTA협정에 대한 추가협상이 가능했던 근거는 미 정부와 의회가 합의한 신통상정책이었다"며 "우리도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식품안전정책을 만들어내고, 이를 근거로 추가협상에 나서면 된다"고 주장했다.


태그:#쇠고기 협상, #김효석,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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