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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돌 어린이날을 맞아 충북 음성 설성공원에서 11번째로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라는 주제에 '세상을 향해 맘껏 외쳐라'라는 부제로, 소박하지만 속은 꽉 찬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지역신문 명예기자협의회가 주최하고 전교조 음성지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는 공연·체험·놀이마당 등 모두 7마당에 '아동극' '소원나무꾸미기' '과학체험마당' '가족이 함께 하는 보드게임' 등 45가지 꼭지가 준비돼 모처럼 어린이들이 신나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특히 눈감고 걷기, 수화배우기, 휠체어 타보기, 관절 움직이지 않고 걷기 등 장애 체험을 비롯해 사물놀이, 짚공예배우기, 떡메치기 등 우리문화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도 마련됐습니다.

 

제가 속한 음성민중연대(준)에선 이날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생수와 풍선, 삶은 달걀, 솜사탕, 인절미 등을 나눠줬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최고 인기더군요.

 

'대통령이 왜 싫어', "아버지 얼굴에서 웃음을 빼앗아 갔어요."

 

이 날 행사를 준비한 측에선 '어린이들의 마음을 알아 보아요'라는 주제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첫번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은'이란 설문이었는데 ▲편애하지 않는 ▲내말 잘 들어주는 ▲공부 잘 가르치는 ▲책 잘 읽어주는 등 4가지 질문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선생님을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으로 꼽았습니다.

 

두번째는 '좋다, 싫다'는 설문이었는데 ▲학교가 ▲책이 ▲내가 ▲대통령이 등의 질문이었습니다. 질문 위쪽 세 가지는 좋다와 싫다가 박빙이거나 '좋다'가 월등히 많았는데 '대통령이'란 질문에선 '싫다'가 확연히 앞서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좋다고 표시한 것은 4.5점 정도였는데 싫다고 표한 것은 여백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학부모와 학생 대부분이 싫다는 쪽에 포인트를 붙여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였습니다. 붙일 공간이 없어 포인트지 위로 덧대 붙이곤 했습니다.

 

싫다는 쪽에 포인트를 붙인 초등학교 5~6학년 쯤 돼 보이는 아이에게 다가가 "대통령이 왜 싫어?"라고 물었더니 쭈뼛거리며 답하길 꺼렸습니다. 아이와 잔디밭에 말없이 앉았다가 다시 물으니 "우리집은 고추농사도 짓고 송아지를 포함해 모두 17마리의 소를 키워요"라며 말문을 엽니다.

 

이 아이는 어린이날은 항상 고추를 심어 11번째 행사를 하는 동안 처음 이 곳에 왔답니다. 위로 누나와 아래로 남동생이 있다고 말한 아이는 "미국 쇠고기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아버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났어요. 아버지는 텔레비전에 대통령이 나오면 꺼버려요"라며 고개를 떨굽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아이는 동생의 손을 잡고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3시간만 놀다가 온다고 했거든요, 집에 가서 고추 심는 거 도와드려야 해요"란 말과 함께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실린 아이의 발걸음은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기특한 녀석'

 

"아빠 '광우야! 집에가' 이런 건 어때요"

 

이날 행사는 올해로 5번째 운영되는 '아름다운 동요마을'이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우리집 큰딸 슬인(초5) 이는 이 동요대회를 위해 1주일간 3명의 친구들과 노래와 안무연습을 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던지 '저러다 입상 못하면 상처 입지' 속으로 은근히 걱정했습니다.

 

'도라지꽃'이란 동요를 준비했는데 좀 더 강렬한 것은 없냐고 했더니 이게 무난하답니다. 대기실에서 연습하는 아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갔다가 농담처럼 "'광우 없는 세상에 살고 파요' 이런 동요는 없니?"라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광우가 누구냐"고 되묻더군요.

 

"광우 몰라 미국에서 들어오는 미친 소잖아" 그랬더니 "아빠 이건 어때요? '광우야! 집에가'" 아이들이 일제히 까르르 웃어댑니다.

 

아이들은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어 1등에 해당하는 꾀꼬리 상을 받았습니다.

 

"우리 공주님들 연습하느라고 고생했고 상 받은 거 축하하고, 꼭 다음에는 '광우야! 집에가'로 출전해서 좋은 성적 거두렴."

 


태그:#어린이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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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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