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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갈기 조팝나무꽃
▲ 밥풀떼기꽃 갈기 조팝나무꽃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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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야 가시나야
쌀밭등 사는 가시나야
볼떼기 허이연 버짐꽃 피워놓고
전깃줄로 징징 울던 가시나야

니가 흘린 피
니 어미가 흘린 눈물
허이연 버짐꽃 보릿고개꽃
찔레꽃 가시 되어 솟아나고

봄이 간다고
여름이 온다고
뻐꾹 뻑뻐꾹 뻐꾹
뻐꾹새 되어 훌쩍훌쩍 울던 가시나야

대꽃 피는 보릿고개
절뚝이는 허깨비 따라가다가
앞산가새 붉은 황토
볼 터지게 배 터지게 파먹다가
밥풀떼기꽃으로 피어나는 가시나야 - 이소리, '밥풀떼기꽃' 모두

우리는 조팝나무꽃을 밥풀떼기꽃이라 불렀다
▲ 하얗게 피어난 조팝나무꽃 우리는 조팝나무꽃을 밥풀떼기꽃이라 불렀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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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순이와 빈부 양극화로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허이연 얼굴처럼 피어나는 꽃이 밥풀떼기꽃이다
▲ 조팝나무꽃은 종류가 참 많다 죽은 순이와 빈부 양극화로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허이연 얼굴처럼 피어나는 꽃이 밥풀떼기꽃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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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그기 뭐꼬?"

"쑥털털이다."
"근데, 쑥털털이가 쪼매 이상하게 생겼다. 가만 보자. 이거 밥풀떼기꽃 아이가. 문디 가시나 이기 날 놀릴라카나."

"머스마 니를 생각하는 내 정성을 봐서라도 먹는 시늉이라도 쫌 하모 어디 덫나냐? 이 문디 머스마야!" 

해마다 오뉴월 보릿고개가 다가오는 이맘 때가 되면 나도 몰래 눈물이 글썽거려진다. 1960대 중반,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우리 동네 우물가 주변에서 반주깨미(소꿉놀이의 창원 말)하던 그 가시나의 버짐 핀 그 얼굴, 밥풀떼기꽃(조팝나무꽃)을 쑥털털이라며 내게 건네주던 그 가시나의 허기 진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50~60호쯤 되는 가난한 동산마을(지금의 창원시 상남동)에서 함께 살았던 그 가시나. 그 가시나네 집은 우리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하게 살았다. 특히 보릿고개가 다가오는 오뉴월이 되면 그 가시나네 집에서는 아침부터 저녁나절까지 단 한 번도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밥풀떼기꽃은 우리나라 들과 산자락에서 잘 자란다
▲ 밥풀떼기꽃 밥풀떼기꽃은 우리나라 들과 산자락에서 잘 자란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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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 배 고픈 꽃
▲ 오뉴월 보릿고개에 피어난 꽃 눈물꽃, 배 고픈 꽃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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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시나의 아버지는 몇 해 전 도회지로 쇠 받으러(돈 벌러 객지로 나간다는 창원 말) 나간 뒤 명절 때가 되어도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다. 때문에 그 가시나의 어머니는 이웃집 들일과 밭일을 거들며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오죽했으면 마을 사람들이 매일 돌아가면서 그 가시나네 집에 먹을거리를 갖다주곤 했을까.

"허어 참! 대꽃이 저리도 많이 피는 걸 보니 올개(올해) 농사도 큰 흉년이 들겠구먼. 이를 어쩐다?"
"자칫하다가는 내년 이맘때 쯤 우리도 찔레꽃이나 따먹고 풀뿌리에 황토나 파먹으며 살게 생겼구먼. 그나저나 산수골 순이네 집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것네. 통 사람 사는 온기가 나지 않더구먼."

"아, 며칠 전 순이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소리도 못 들었나?"
"쯧쯧쯧! 그 어린 것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황토를 파먹다가 죽었것어. 그나저나 순이 아베는 제 자식 죽은 줄도 모르고 어디서 뭐하는지 모르것네."

마을 어르신들은 그해 밥풀떼기꽃이 그 가시나네 집 울타리에 하얗게 피어날 때 그 가시나가 황토를 파먹다가 죽었다 했다. 그때 나는 너무도 슬펐다. 그 가시나가 내게 쑥털털이라며 건네주던 그 밥풀떼기꽃을 먹는 시늉이라도 할 걸 하고 후회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밥풀떼기꽃이 피어날 때면 그 가시나의 버짐 핀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쌀밥 한 공기처럼 소복소복 피어나는 꽃
▲ 쌀밥 열렸네 쌀밥 한 공기처럼 소복소복 피어나는 꽃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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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을 바라보며 이 세상 시름 잊으세요
▲ 이 꽃을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 바칩니다 이 꽃을 바라보며 이 세상 시름 잊으세요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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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이 신도시로 탈바꿈한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고향 창원의 들판과 산자락 곳곳에는 조팝꽃이 그 가시나 입술 주변에 덕지덕지 붙은 밥풀떼기처럼 하얗게 피어났다. 나와 동무들은 그 밥풀떼기꽃을 한아름 꺾어 마당뫼에 있는 고인돌 위에 올려놓고 반주깨미를 하며 어서 쌀밥이 되기를 빌었다.   

특히 그 가시나가 죽은 이듬해. 그 가시나의 어머니마저 떠나버린, 흡사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던 텅 빈 그 가시나네 집 울타리에서는 밥풀떼기꽃이 유난히 하얗게 피어났다. 그 가시나의 얼굴 곳곳에 핀 그 허연 버짐처럼. 그 가시나가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그 하얀 쌀밥 한 공기처럼 그렇게.

생필품값을 반드시 잡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물가가 더욱 폭등하고, 빈부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지는 요즈음, 산자락과 들녘 곳곳에 하얗게 피어나는 밥풀떼기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그 가시나의 배 고픈 얼굴이 노숙자와 소년 소녀 가장의 모습으로 살아나 눈앞에 허깨비가 끼는 듯하다.       

햇살이 내리쬐면 눈이 부신다
▲ 밥풀떼기꽃 햇살이 내리쬐면 눈이 부신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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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이 모두 쌀알이라면
▲ 쌀알을 흩뿌린 듯 이 꽃이 모두 쌀알이라면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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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산속에서 뻐꾹 뻑뻐꾹 하고 우는 뻐꾸기 소리가 그 가시나의 그 말, '머스마 니를 생각하는 내 정성을 봐서라도 먹는 시늉이라도 쫌 하모 어디 덫나냐?'라는 그 말이 자꾸만 귀에 쟁쟁거린다. 뻐꾸기 울음소리가 밤 늦게 지하철에서 신문지를 깔고 자는 노숙자와 소년 소녀 가장의 '배고파! 배고파!'라는 절규처럼 가슴을 콕콕 찌른다.

배고파! 배고파!
▲ 밥풀떼기꽃 배고파! 배고파!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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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밥풀떼기꽃, #갈기 조팝나무꽃, #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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