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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중국인들의 무서움을 절절히 체험한 하루였습니다. 이날 오후 7시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가 도착하기로 한 서울시청 앞 광장은 중국인들의 해방구였습니다. 서울시청 앞은 중국 국기인 빨간색 오성홍기로 뒤덮였고 중국어로 가득 찼습니다. 중국인들은 자그맣게 오린 중국 오성홍기를 한 쪽 뺨에 붙이고, 오성홍기를 어깨에 망토처럼 둘러메고, 커다란 오성홍기를 휘날렸습니다. 시청 앞에 한국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실 물을 파는 행상도 중국어로 물을 사라고 외쳤을 정도니까요.

 

오후 4시부터 서울시내 한쪽에선 '티베트에게 자유를'이라고 적힌 노란 풍선을 든 '티베트 평화' 시위대가 '티베트 평화의 성화 봉송' 행사를 벌였지만, 이들 누구도 시청 앞 행사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시청 앞에선 노란색 풍선 한 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티베트 평화'를 외친 이들이 모두 집으로 가버려서일까요? 아닙니다.

 

제가 취재하던 '티베트 평화의 성화 봉송' 참가자들이 종로 거리를 걸어 종각에 다다를 무렵부터 길 건너편에 중국인들이 보였습니다. 중국 오성홍기가 휘날렸고, 중국어로 "쫑구요 짜요"(중국 파이팅)를 외쳤습니다. 광화문 사거리에선 더한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교보 옆엔 '티베트 평화'를 외치는 시위대가 머물렀고, 그 건너편인 일민미술관 옆엔 중국인들이 "쫑구요 짜요"를 외치는 중국인들이 머물렀습니다. 경찰들은 '티베트 평화연대'를 막아서서, 또 중국인들 역시 막아내느라 바빴습니다. 티베트 평화연대 시위가 끝난 뒤에도 이 '대치 상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티베트에 평화를' 노란 풍선도, 종이도 중국인에게 뺏기고 찢기고

 

오후 5시 40분, 취재하러 올림픽 성화가 도착 예정인 시청으로 향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경찰들이 마구 우르르 뛰어갔습니다. 갑자기 "펑펑"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어서 경찰들이 막아서서 시민 네 명을 구출해냈습니다. 빨간색 오성홍기를 어깨에 둘러매고 휘두르는 중국인들에게서 구출해낸 차였습니다. 화난 중국인들 사이에서 겨우 빠져나온 시민들은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아. 뭐야?"

 

화근은 '티베트에 평화를' '프리 티베트(Free Tibet)’라고 적힌 노란 풍선이었습니다. 이 노란 풍선을 든 시민들에게 중국인들이 달려들어 풍선을 뺏어 터뜨린 상황이었습니다. 얼굴이 빨개진 시민에게 사복 차림의 경찰이 되레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터뜨리던지 없애던지, (풍선을) 들고 가지 말라고."

 

왜 풍선을 못 드냐고 항의하는 시민에게 경찰이 말했습니다.

 

"그럼 맞았다고 신고할 거냐고요."

 

겨우 건진 풍선도 경찰 손에 넘어가 터졌고, 시민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중국인들을 피해 오던 길을 되돌아서 갔습니다.

 

그 상황은 또 일어났습니다. 조금 더 지나자 노란 풍선을 든 여성 둘이 중국인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 노란 풍선을 보고 중국인들이 몰려드는 차였습니다. 얼른 경찰이 한국인이 손에 든 '티베트에게 평화를'이라고 적힌 노란 풍선을 빼앗아 터뜨렸습니다. 풍선이 "빵" 터지는 소리에 중국인들은 "와!" 소리를 내며 환성을 내질렀습니다. 오성홍기도 마구 흔들었습니다. 몰려든 중국인들을 막아서느라 경찰들은 쩔쩔 맸습니다.

 

한 경찰은 옆에 서있던 경찰에게 투덜거렸습니다.

 

"중국애들은 우리 편이라더니, 아니잖아?"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가 청계천을 지나 시청 앞으로 간다는 소식에 많은 중국인들이 청계천 길을 에워쌌습니다. 성화 봉송로를 메운 중국인들은 목이 터져라 "쫑구요 짜요"를 외쳤고, 다가올 성화 봉송을 기다리며 흥분한 듯 중국어로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느라 바빴습니다. 앞 사람이 귀가 따갑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간혹 보이던 한국인들은 귀가 따갑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다 자리를 떴습니다.

 

 

서울 곳곳에서 일어난 중국인들의 폭력

 

오후 7시 성화 봉송 주자가 당도하기 직전, 시청 앞은 중국인들로 꽉 찼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 한국인이 '티베트 평화'에 대해 적은 커다란 종이를 들었다가 몰려든 중국인들에게 뺐겼습니다. 중국인들은 '티베트 평화'에 대해 적은 커다란 종이를 뺏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박박 찢고 발로 마구 밟았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도 주워들어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박박 찢었습니다. 그리고 한 중국인이 외쳤습니다. "라이어."

 

시청앞엔 "쫑구요 짜요"란 외침과 "One China"라고 적힌 종이를 든 중국인만 살아남았습니다. 시청 앞 광장은 빨간색 오성홍기만 나부꼈습니다. '티베트'의 '티'자만 말해도 살아나가기 힘든 분위기로 보였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취재기자가 투덜거렸습니다. "여기가 중국이야? 한국이야?"

 

올림픽 성화가 도착한 뒤인 오후 8시쯤 '티베트 평화연대'에 참석했던 여성 6명이 광화문에서 촛불 행사를 하려다 중국인들에게 둘러싸여 험악한 분위기 속에 취소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또 오후 7시께 '프리 티베트'라 적힌 티셔츠를 입었던 외국인이 중국인들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했단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오전엔 중국인들이 던진 무언가에 맞아 취재기자가 피를 흘리며 다쳤습니다. '티베트 평화'를 외친 이들을 막아선 건, 경찰이 아니라 중국인들이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아직 통제가 심하고 언론의 자유나 다양성에 척박한 중국에서 교육을 받아서일까요? 왜 그들은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자유를 아예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 주장에 반대한다고, 폭력을 행사할 자유는 누가 준 걸까요?

 

전 세계 화합과 평화를 위해 열린다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성화 봉송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중국인들이 무차별적으로 폭력이라니요. 중국군이 발포해 일어났다는 티베트인 다수를 죽인 유혈 사태가, 문득 어찌 일어났을지 상상이 가게 만든 풍경이었습니다.

 

잘못 알고 '티베트 평화'를 주장한다고 해서, 중국인들 생각과 반한다고 해서 무조건 맞아야 하는 걸까요? 그런 생각을 표현할 자유도 없어야 하는 걸까요? 또 런던, 파리에도 없던 일이 왜 우리나라에선 이리 일어났을까요? 단지 그만큼 우리나라에 중국인들이 많이 있다는 반증이라고 보기엔 왠지 씁쓸했습니다. 저는 맘속으로, 올 가을 가볼까 생각하던 중국 여행을 취소했습니다.

 

게다가 한때 '공산주의' 국가라고 걸리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대상이기도 했던 중국 오성홍기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시청 앞 광장을 점령한 걸 보자니, 기분이 야릇했습니다. 오늘 서울은 빨간색으로 넘쳐났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원조 '붉은 악마'더군요.


태그:#올림픽 성화, #티베트, #중국인, #티베트 사태, #성화 봉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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