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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시절에 ‘유곽’이 있던 명산동 시장에 있는 군산 화교소학교,
 일제 강점기시절에 ‘유곽’이 있던 명산동 시장에 있는 군산 화교소학교,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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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 군산에는 화교(華僑) 자녀만 다니는 학교가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학창시절 친구들 사이에는 '중국집' 앞에 '우리 샬람 짜자면 마이마이 좋아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지요. '장쾌', '장쾌집'으로도 통했습니다.

중국인들이 가장 듣기 싫어했던 '장쾌'는, 중국어로 사장이나 주인을 뜻하는 "짱콰이"로, 사실은 높임말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높임말이 조롱거리가 된 예는 우리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요. '마누라','아가씨' '노빠' 같은 호칭이 예가 되겠습니다.

중국집을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 운영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아련한 추억들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데다 정부로부터의 차별대우 그리고 추구하는 이상이 달랐기 때문에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중국집을 떠올리면, 자장면 한 그릇 먹고 감격하고, 비싼 탕수육을 시켜 먹고는 못 쓰는 시계 하나 달랑 던져놓고 도망친 일 등 잊지 못할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제가 잘 아는 중국집에서 일어났던 일화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중앙각(中央閣) 짬뽕 국물사건

지금부터 26년 전 얘기인데요. 제가 운영하던 가게 근처에 중앙각(中央閣)이라는 중국집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앙각 주인은 연로해서 아들이 운영하고 있었지요. 이름난 중국집은 손님에게 인정받는 요리 하나쯤은 갖고 있었는데 중앙각은 짬뽕으로 유명했습니다.

저보다 세 살 위인데도 존칭어를 쓰며 깍듯이 대했던 중앙각 아들은 자린고비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저에게는 선물을 보낼 정도로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배 형님의 장난기 발동으로 미안하면서도 그의 처지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결혼한 해이고, 생각날 때마다 웃음이 나오는 일이라서 기억하는데요. 날씨가 더웠던 1982년 6월 어느 날, 짬뽕 국물이 얼큰하고 개운해서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 중앙각에서 선배들과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한참 먹고 있는데, 아버지를 도와 철강사와 주물공장을 운영하는 영철이 형이 들어오며 "핫따! 행님들 나만 빼놓고 댕기기유··· 어디들 가셨나 허고 돌아 댕겼는디 여기서 맛있는 거 먹고 있었네!"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다가왔습니다. 

농담 섞인 투정에 저보다 12년 위인 창기 형님이 "일로 앉어라. 점심이나 먹고 돌아 댕겼냐?"라고 묻자, 영철이 형은 먹었다고 하면서도 두리번거리더라고요. 그러더니 주인 아들에게 짬뽕 국물 남은 거 있으면 조금만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쥔 양반! 나는 점심을 먹었기 때미 밥을 주문허기가 그렇소. 그러니께 짬뽕 국물 남은 거 있으믄 그릇이다 쪼끔만 떠다 주쇼··· 속이, 속이 아닌 걸 봉게 엊저녀그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던 모양인갑네··.·"

점심도 먹었고 전날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는 말에 주인 아들은 서슴없이 주방에 주문했고 서비스가 그만인지라 짬뽕 국물이 그릇의 반절 가까이 담겨 나왔습니다. 퍼주는 인심이 좋기로 소문난 고장이니 이 정도는 흔히 있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국물을 두어 모금 마시던 영철이 형은 뭔가 부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쥔 양반! 국물만 마실라고 허니께 입속이 너무 허전허요. 찬밥 남은 거 있으믄 조꼼만 주쇼··· 어쨌든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 헌당게··"라고 하더라고요. 여기까지도 괜찮았습니다.

찬밥도 좋으니 조금만 주면 좋겠다는 부탁에, 기다릴 것 없이 공기에 반절쯤 담긴 밥이 나왔고, 영철이 형은 밥을 국물에 말아 먹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짬뽕밥이 되어버린 국물을 몇 수저 뜨던 영철이 형이 "밥에는 닥꽝(단무지)이나 다마네기(양파)보다, 김치가 있어야 허는디···"라고 하더니 "쥔 양반! 자꼬 부탁혀서 미안헌디…·이왕 주는 거 배추김치가 없으믄 깍두기라도 쪼꼼 주믄 고맙겠소"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치 아니면 깍두기라도 달라고 하자,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 아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영철이 형을 멍하니 바라보더라고요. 그래도 조금 후에는 작은 그릇에 깍두기가 담겨 나왔고, 영철이 형은 남은 짬뽕밥을 개운하게 먹어치웠습니다.  

식당에서는 주인 아들을 보기가 민망하더니 집에 오니까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범인이 현장검증을 하듯, 중앙각에서 있었던 일을 재연하는 영철이 형을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웃기는 하면서도 "아무리 장난이라고 허지만 영철이가 혀도 너무혔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시에서 소득세 납부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부자이면서도, 점심은 칼국수나 자장면을 먹고 닭다리 뼈 속의 물까지 빨아먹지 않는 사람은 백숙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던 영철이 형,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배달 다니는 아이 부모가 왔을 때 대접한 간짜장 값도 월급에서 떼는 중앙각 주인 아들, 두 자린고비의 대결이었던 것 같아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옛날에 중국집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로 웃고 넘어가기보다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부탁에 표정만 바뀌었지 군소리 한마디  못하고 깍두기를 내왔던 주인 아들 입장을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해보면서, 내 나라 내 고향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지 새겨보자는 것이지요. 

덧붙이는 글 | '<우리 동네(학교) 맛집> 응모글'



태그:#짬뽕, #중앙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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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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