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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팔색조 공연 중 "염양춘"을 연주하는 김준희
▲ 김준희 1 해금팔색조 공연 중 "염양춘"을 연주하는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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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10월 11일 나비 김준희는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공연을 했다. 그때 그녀는 연주에서 껍질을 벗고 탄생한 자신의 내력을 애써 보여주려는 듯했다. 그녀에게서 무엇이 애벌레이고 무엇이 나비일까?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힘들여 보여주는 날갯짓은 무엇일까? 당시 공연은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그리고 있음이었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해금 수석인 그 김준희가 또 다른 공연을 한다고 했다. 서울남산국악당 '해금팔색조'(해금 뉴 프론티어) 프로그램의 7번째 연주자로 나섰다. 4월 18일 저녁 7시 30분 열린 공연은 정악해금 '염양춘'. “줄풍류 ‘영산회상’ 중 하현, 염불, 타령”과 창작곡으로 김대성 작곡의 “해금과 25현 가야금을 위한 <다랑쉬>”, 박영란 작곡의 “사계 중 겨울”을 선보였다.

우선 그녀는 정악 연주에서 담담한 색채를 보여준다. 정악세계를 잘 드러내는 연주를 들으면서 청중은 숨을 죽인다. 나도 감히 사진기 셔터를 누를 용기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정악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연주하는 그녀의 해금으로 나는 깊이깊이 침잠한다.

원래 염양춘(艶陽春)은 국악 가곡 가운데 계면조의 두거 또는 변조 두거, 평롱, 계락, 편삭대엽을 합주하는 곡이며 노래 없이 향피리를 중심으로 대금, 해금, 장구, 북으로 합주하는 음악인데 이날 김준희는 해금으로만 독주했다.

공연 중 “줄풍류 ‘영산회상’ 중 하현, 염불, 타령”을 연주하는 김준희와 거문고의 김준영
▲ 김준희 2 공연 중 “줄풍류 ‘영산회상’ 중 하현, 염불, 타령”을 연주하는 김준희와 거문고의 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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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연주곡 줄풍류 ‘영산회상’은 대표적인 정악 기악곡 영산회상 가운데 현악영산회상인데 이는 거문고 등 현악기가 중심이 되어 선비들이 풍류방에서 즐긴 풍류음악 곧 줄풍류이다. 줄풍류 영산회상은 상영산, 중영산, 세령산, 가락더리, 삼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 군악, 타령 등 9곡이 있지만 이날은 이 가운데 하현, 염불, 타령만 골라 김준영의 거문고와 함께 연주했다.

두 곡의 차분한 정악 연주가 끝나자 김준희의 특징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창작곡 연주 순서다. 먼저 김대성 작곡의 '해금과 25현 가야금을 위한 <다랑쉬>'이다. 곡을 듣자마자 뭣인지 모를 신비한 느낌이 든다. 도대체 이 곡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다랑쉬>는 2002년 해금연구회 정기 발표회를 위해 작곡된 음악으로 임은정의 25현 가야금과 함께 신들린 듯 연주한다.

공연 중 김대성 작곡의 “해금과 25현 가야금을 위한 <다랑쉬>”를 연주하는 김준희와 25현 가야금의 임은정
▲ 김준희3 공연 중 김대성 작곡의 “해금과 25현 가야금을 위한 <다랑쉬>”를 연주하는 김준희와 25현 가야금의 임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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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뒤 김준희는 <다랑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곡을 연습하면서 전 무척이나 힘들었어요. 한번 연습하고 나면 쓰러질 정도였는데 임은정도 같은 현상이 있었지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궁금했던 저는 작곡자에게 도대체 이 곡이 어떤 음악인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랑쉬’는 제주도 구좌읍에 있는 오름 이름이라는 겁니다.

이 곡에서 작곡자는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우리 선조의 고단한 삶 또한 표현해 보고자 했다는 것이지요. 특히 이 아름다운 이름의 ‘다랑쉬’에서 벌어졌던 슬픈 역사 곧 4.3 항쟁은 작곡자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 장소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분들 곧 대부분 노인, 부녀자, 아이들이었던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작곡했다고 말해주었어요.”

결국, 연주자들이 힘들었던 것은 억울한 영혼을 달래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었을 것이라는 그녀의 얘기였다. 슬픈 영혼을 얘기한 작곡가와 또 그를 온 힘을 다해 그려낸 김준희와 임은정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린 보았다.

이어서 박영란 작곡의 “사계 중 겨울”이다. 우린 서양 클래식 비발디의 사계를 즐겨 듣는다. 그런데 이 사계는 우리만의 악기 해금을 위한 사계이다. 그 사계 중 겨울은 어떻게 표현할까?

먼저 타악기의 맑은 소리가 들린다. 원래 작곡자는 아프리카 타악기인 '로그 드럼(log drum)'을 염두에 두었는데 이 악기를 구하기 어려워 대신 서양타악기인 우드 드럼(wood drum)으로 연주한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 25현 가야금의 청아한 소리와 해금의 아름다움이 열린다. 바람은 없고 하늘에선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을까?

공연 중 박영란 작곡의 "사계 중 겨울"을 연주하는 김준희(오른쪽), 양재춘(가운데, 타악기·장구), 임은정(왼쪽, 가야금)
▲ 김준희 4 공연 중 박영란 작곡의 "사계 중 겨울"을 연주하는 김준희(오른쪽), 양재춘(가운데, 타악기·장구), 임은정(왼쪽, 가야금)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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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갑자기 역동적인 음악이 튀어나온다. 아, 이젠 눈보라가 휘몰아치나 보다. 지척이 보이지 않을 만큼 온 세상은 요동친다. 장구와 25현 가야금과 해금이 어우러진 겨울, 겨울이다!

작곡가 박영란은 말한다.

“사계 중 봄은 계절의 시작을 알리고, 여름은 나른한 풍경을, 가을은 대금·저음해금·타악기를 써서 전통적 기법에 의한 정악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리고 겨울은 역동적인 겨울을 그리려 했습니다. 잔잔한 시작도 사실은 나중에 드러날 역동성을 예고하는 있는 것입니다. 간접적인 ‘동(動)’이라 할까요?”

의표를 찌른 것이었다. 바람없는 하늘과 조용히 내리는 눈을 상상했던 내게 박영란은 상처를 주지 않는 작은 폭탄을 던졌다. 그녀의 귀여운 상상을 김준희와 임은정의 가야금, 양재춘의 타악기는 여지없이 아름답게 소묘한다.

해금 연주자 김준희 모습(해금팔색조 소책자 중에서)
▲ 김준희 5 해금 연주자 김준희 모습(해금팔색조 소책자 중에서)
ⓒ 남산국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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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연을 지켜봤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곽태규 교수에게 공연평을 부탁했다.

“김준희는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창작음악까지 완벽히 소화해내는 진취적인 예술인이다. 그 김준희가 오늘 전통음악 중에서도 연주하기 어렵다고 하는 염양춘은 물론 영산회상을 훌륭히 연주하였고, 창작곡 ‘다랑쉬’, ‘사계 중 겨울’을 넓은 사상폭과 진취적인 성향으로 연주하여 많은 청중을 감동시켰다.”

공연이 열린 남산국악당은 중구 필동 남산한옥마을 안에 있는 연면적 2,935m², 330석 규모의 국악 공연장이다. 특히 남산국악당은 전통한옥 형태로 지어져 한옥마을과 조화를 이루고, 궁궐이나 서원처럼 정사각형 구성에 좌우대칭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또 액자형과 원형의 성격을 절충한 돌출무대로 가변성을 확보한 것은 물론 지하 무대이지만 효과적인 채광과 환기를 할 수 있는 “썬큰정원(Sunken Garden)”을 설치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남산국악당 관계자는 효과적인 음향시설로 공연 중 마이크를 쓰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왜곡되지 않는 목소리와 악기 소리를 전달할 수 있어 국악공연에는 아주 적절한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통한옥 형태로 지어진 남산국악당 전경
▲ 남산국악당 전통한옥 형태로 지어진 남산국악당 전경
ⓒ 남산국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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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국악당은 매주 금요일의 해금팔색조(해금 뉴 프론티어)와 함께 요일별 상설 공연 “봄날의 국악여정”으로 매주 수요일엔 “황병기 명인의 산조 이야기”, 매주 토요일엔 “남산에서 놀다” 등이 공연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남산국악당 누리집(www.sngad.or.kr)을 참조하면 된다.

이날 공연에는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정악 연주 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던 김준희가 창작곡을 연주할 때엔 서양옷을 입고 나온 것이다. 그럴 때 한복을 새롭게 변형한 공연용 한복을 창작하여 선보였더라면 더욱 예쁜 모습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는 지나친 욕심일까?

세상은 온통 꽃보라로 일렁이고 그에 따른 꽃멀미에 어지러운 봄이다. 그런 때 나비 김준희는 해금으로 꽃멀미로 어지러운 현대인에게 상큼한 아름다움을 선물했다. 아! 아름다운 한마당 향연이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준희, #해금, #해금팔색조, #남산국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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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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